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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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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야 다치지 않는다_하루를 위한 시_201006 가라앉혀라 무일 박 인 성 굉장한 소리를 내며 기계가 돌아간다. 가라앉혀라, 마음을 그래야 다치지 않는다. 사악한 소리를 내며 세상이 돌아간다. 가라앉혀라, 거짓을 그래야 흔들리지 않는다. 달콤한 소리를 내며 돈이 돌아간다. 가라앉혀라, 욕심을 그래야 망하지 않는다.
하루의 꿈_하루를 위한 시_201004 하루의 꿈 무일 박 인 성 매일 하고 싶다 땀 흘린 보람을 느끼는 노동을 멋진 노래에 맞춰 피리 연주를 소슬한 밤을 울리는 대금 연주를 가슴이 두툼해지는 근육 운동을 뱃속까지 시원해지는 바다로의 열차 여행을 숨을 몰아쉬며 언덕을 오르는 자전거 여행을 언젠가 본 듯한 생전 처음보는 것들을 보러 다니는 세계여행을 매일 읽고 싶다 세상사는 재미를 주는 책을 깨달음의 기쁨을 주는 지혜로운 이야기들을 진리에 가까운 글들을 조금 멋진 사람들의 수많은 글들을 매일 먹고 싶다 입에 달고 건강한 음식을 배부르지 않는 가벼운 음식을 독한 술과 어울리는 안주를 모두가 마실수 있는 짜이를 내손으로 심고 가꾸고 거두어 만든 음식을 매일 쓰고 싶다 쓰레기를 모면한 글을 내 연인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사를 46억년 지구라는 덩어리의..
하루의 결산_하루를 위한 시_201003_el tres de octubre el sabado_три Октябрь суббота 하루의 결산 무일 박 인 성 꿈이 많은 하루였다 그들의 웃는 모습을 보고 멍하게 따라 웃었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 책을 읽으려 책을 들었으나 무지만 잔뜩 들어 올려졌다 전자책을 읽으려 아이패드를 들었으나 졸음만 잔뜩 들어올려졌다 산책을 하려 몸을 일으켰으나 온몸 구석구석에 쌓인 피로만이 들고 일어섰다 리코더를 불려고 알토 리코더를 들었으나 가족들의 원성만 높아졌다 대금을 불려 정악대금을 들었으나 주독 여파로 입술이 부어 올라 있었다 기차여행을 하려고 행선지를 정했으나 코로나 상황이라 침대 위로 가야 했다 안산 대부도 길을 가려고 했으나 시뻘건 교통상황이 올라와 있었다 영어 공부를 하려고 동영상을 틀었으나 알 수 없는 외계어가 자꾸만 들린다 스페인어 공부를 하려고 실비아샘을 만났으나 알함브라 궁전의 기타소..
부드러워라_하루를 위한 시_201001 부드러워라 무일 박 인 성 부직포를 덮었다. 절대로 풀이 나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하루 이틀 사흘 뜻대로 되었다. 일주 이주 삼주 뜻대로 되었다. 한 달 두 달 역시 뜻대로 되었다. 석달이 지나자 부직포를 뚫고 올라온 풀이 있었다. 풀들이 있었다. 부드러워라. 어떻게 이 두꺼운 부직포를 뚫고 수많은 시도 끝에? 아니다. 단 한 번의 시도로. 그럼 어떻게 ?? 두꺼운 부직포 미세한 조직사이로 바늘 끝보다 얇게 새어드는 빛을 따라 부드러운 팔을 뻗는다. 단 한 번의 시도로 세상과 마주하였다. 부드러움으로 짙은 어둠을 뚫고
사랑을 의심하다_하루를 위한 시_200929 사랑을 의심하다 무일 박 인 성 무릎이 너무 아파, 주물러 줘 언제까지 이래야 해, 농장에 가고 싶어 내려 가, 주물러 줄 필요 없어 다음 날 아침, 잘 잤어? 다리 주물러 줄까? 필요 없어, 늘 그랬어 농담이었어 아니야, 늘 그랬어 저녁 반주에 살짝 취해 귀찮기도 했으니 봐야 할 영화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어서 운명을 가를 정치 토론이 진행되고 있어서 그때마다 사랑은 의심받는다 그때마다 사랑을 의심한다 별은 늘 불타오르는데 사랑은 어찌하여, 타오르다 꺼지곤 하는 걸까
세상이 참 고요하구나_하루를 위한 시_200928 세상이 참 고요하구나! - 조용히 살고 싶다는 모든 사람들에게 바치는 시 무일 박 인 성 어떤 의심도 없는 질서 속에서 알라와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잘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질서 속에서 그렇게 세상은 참 고요하구나. 배고프다는 아이들의 작은 울음소리 덕분에 살려달라는 난민들의 힘없는 외침 덕분에 씻어달라는 지구의 들리지 않는 호소 덕분에 그렇게 세상은 참 고요하구나. 지금 그대로의 세상을 위해서 그렇게 세상은 참 고요하구나. 쏟아지는 거짓들 아래 진실 하나가 묻혀 있기에 화려한 도시들 밖에 소박한 삶이 있기에 무서운 전쟁들 너머 조용한 평화가 기다리기에 그렇게 세상은 참 고요하구나. 사실, 소나무처럼 당당하게 서지 못하는 아침 이슬에도 고개를 숙이는 작은 잎이어서 세상은 참 고요하다.
손톱을 깎으며_봉인근 손톱을 깎으며 봉 인 근 매양 자라오는 나태와 무기력 그리고 반란없는 일상을 이토록 선명하게 절단할 수 있다면 끊을 수 있다면 마음이 가난한 자의 소심과 가냘픈 바람에도 흔들리는 마음을 뒤돌아 볼 때의 부끄러움과 앞을 조망할 때의 불안 마저도 깨끗하게 결별할 수 있다면 하여 스스로 세계의 가운데 설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살아가는 날들의 무의미와 의미만들기라는 삶의 무의미까지도 차갑게 돌려 세울 수 있다면 오래 자란 손톱을 자르듯이. ==================================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오래된 친구의 시다. 굉장히 오래 전에 읽었었고, 오늘 다시 읽는다. 단 한 편의 시지만 마음을 울리는 감동이 있다. 세상 속에 살고 싶은 소박한 욕심도 채우지 못해 미처 삶을 다하지 못한 그..
삶은 먼지다_200207 뺘뜨니차 삶은 먼지다 무일 박인성 삶은 먼지다. 태양과 함께 빛나다가 어둠과 함께 사위어진다. 삶은 밥통이다. 다 채워진 순간부터 비워진다. 삶은 시냇물이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쫄쫄거리며 흐르지만 마침내 거대한 바다가 되고 그리고 사라진다. 삶은 손톱이다. 자란다고 해서 반드시 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