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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서재

[ 마시지 않을수 없는 밤이니까요_정지아_마디북_23년 9월 초판 2쇄 ] 250208

밤 새워 술을 마시다니 -

 

너무 두려워할 일은 아니다. 이책의 모든 이야기는 정지아의 상상력이 보태진 과장 서술이다. 마음에 담아두었던 사실을 바탕으로 술을 맛있게 마시게 된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나도 원래 과장해서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한다.

뭔가 과장을 해야 재미가 있지,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면 밋밋하다. 

 

술 마시기를 좋아하지만 정지아처럼 마셨다가는 술이 나를 끝장낼 것이다.

갑자기 술마시기가 무서워진다. 술 마신다고 나대다가 이런 사람들을 잘못 만나면, 큰일나는 것이다.

즐겁자고 마시는 것인데, 삶을 끝낼수는 없다.

 

그래도 세렝게티 초원의 은밀한 사과나무 아래에서 벌어지는 술잔치는 정말 즐거웠다.

원숭이가 사자의 머리를 밟고 뛰어놀다가 사자의 배를 베고 누워 잠드는 술잔치 -

 

이름없는 작가로만 알고 있었는데, 수많은 경험을 하는 이름있는 작가라는 것에 놀랐다.

작가의 세계가 이렇게 풍성하다니.

게다가 취재라는 이름의 여행도 마음에 든다. 취재여행이라.

 

위법권력에 잡히는 것을 거부하고 도망을 다니는 그 선택도 마음에 든다.

도망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잡혀서 모욕을 당하는 것보다 백번 나은 전술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정지아를 3년이나 숨겨줬다는 이태도.

 

남원역 앞 허름한 술집의 할머니의 한마디도 가슴에 남는다.
원래 공짜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이런 인심은 드문 일이고, 그리운 일이다.

 

"묵다 모지라먼 또 오씨요." (85쪽)

 

셋이서 돌아가면서 3박 4일동안 술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것도 신비롭다. 집으로 가는 중인데, 너무 멀다고 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어쨌든 시인 김사인. 많이 들은 이름인데, 누굴까? "노동과 사랑이, 옳음과 아름다움이, 희망과 슬픔이 통일되는 어느쯤에 서 있으려 한다"는 말이 시처럼 읽힌다.

 

"그러나 저기
  몇 안 남은 잎을 바람에 마저 맡기고
  묵묵히 밤을 견디는 나무들이 있습니다.
  빛바랜 머리칼로 찬비 견디는 
  풀잎들이 있습니다.

  그대로 하여
  저에게 쓰거운 희망의 밤이 있습니다." (김사인, 밤에 쓰는 편지 1 중에서)

 

"예리한 비수로 새파랗게 날 서

  수직으로, 온몸을 던져 수직으로

  솟구쳐

  바람의 멱통을 쪼아, 쪼아

  피투성이 육신으로

  쪼아

  (중략)

  살아

  건널까 작은새” (김사인, 새 중에서)
 
사실 남과 북 사이에 간첩이 오간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북한은 5호담당제다 뭐다 해서 거의 닫힌 공간이니, 북파 간첩을 투입하는 것이 어려울 것이다. 남한은 가능성이 있지만, 자유로운 이땅에 간첩을 내려보내봤자 사상이나 흐려져서 올라갈 것이 틀림없다. 남북 모두 간첩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았다. 아무래도 내가 간첩들의 능력을 너무 우습게 보았나보다.
내란상황에서 북에서 공작을 하는 특수요원들이 있다는 것이 드러남으로써 북파 간첩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오래 있었습네다. 한 칠년 있었나? (중략) 남파간첩이라 표준말도 척척 구사하는 그가 아직 영업중이냐 물은 곳은 나도 자주가는 인사동의 한 카페였다." (232쪽) d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