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는이야기/서재

[ 금지된 일기장_알바 데 세스페데스_김지우 옮김_한길사_25년 1월 1판 ] 내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은 사실이 아닐수도 있다_250318

알바는 24살에 반파시스트 활동으로 투옥되었고, 
32살에는 레지스탕스 활동으로 또다시 투옥되었다.

이것만으로도 그녀를 존경해야한다. 
소설이 지루하다고? 
그래도 어쩔수 없지 않은가?

일기쓰기는 생각하기다. 
발레리아가 다시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삶이 무미건조하게 지나간다는 것을 
느꼈을 때이다. 

깊이 생각하기를 시작하면서 
닥쳐오는 일들을 처리해나갈 힘이 생겼다. 
그래서 일기장을 태워버는게 안타까웠다. 

마치 머리속을 스치는 모든 생각들을 
남에게 내보이는 것이 불필요하듯이,  
분란의 씨앗이 되는 일기장은 
없애버리는 것이 맞다는 말에
가까스로 고끄할 = 고개를 끄덕일수 있었다. 

나는 32세 무렵에 단칸방의 삶이, 
일찍 끝나 버려서 몰랐는데, 
그리미는 58년만인 지난해에야 비로소 
자기만의 공간을 갖고 그림을 그릴수 있게 되었다. 

똑같이 애를 쓰고도, 
그 열매를 가장 늦게 즐기는 것은 아내이며 엄마다. 

그렇다면 가족을 위한 희생은, 
과연 노예의 삶인가? 

그러기를 누구도 원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될수도 있다. 

해결책은? 

엄마들로부터 들으니, 
자신을 소중하게 돌보면서 
알맞게 희생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한다. 

고끄한다 = 고개를 끄덕인다. 
사람의 삶은, 여자든 남자든 엄마든 아빠든, 
알맞게 가족과 공동체에 헌신하는 것이 좋다.

농사일기와 독서일기, 영상일기를 쓰다보니,
모든 하루는 삶을 위한 시간이었기 때문에, 
비록 후회와 반성으로 가득차 있더라도 
기억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그렇게 믿으면서도 
가끔 왜 이렇게 부끄럽게 
나를 돌아보게 될까라는 생각도 일어난다.

돈과 권력과 명예가 없어서, 
삶에 대해 자신감이 없어서 그런가?

그런데, 조선 후기 실학자들이 
이미 답을 내어놓았다.

"후회와 회개가 마음을 기름지게 하는 것은, 
마치 거름이 논을 기름지게 한 것과 같다. 
거름은 부패하고 더럽지만 
논을 기름지게 하고 곡식을 잘 자라게 한다. 

뉘우침은 죄책감과 과오에서 온 것이고, 
이를 잘 함양한다면 덕이 생기게 된다. 
즉 이는 같은 이치이다." 

(다산 정약용, 함재봉의 글 중에서).

내가 생각하는 비밀이란 
범죄나 부끄러운 일뿐인데, 
김장하 선생의 경우는, 
자신의 베푸는 행동을 비밀에 붙였다. 
이렇게 좋은 비밀도 만들수가 있다.

결혼은 삶을 망치는가? 
해도 후회, 안해도 후회여서 결혼하는가?

적어도 처음은 그렇지않을 것이다. 
처음의 마음을 잘 보듬고 가면 좋겠다. 

결혼교육이 필요하다. 
결혼하기 전에 서로를 배려하고, 
다른 가족을 만나는 법, 
이야기를 나누는 법을 교육받은 다음에 
결혼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가족은 서로를 너무나 사랑하면서도, 
원수처럼 상대방에게서 
자신을 방어하는 존재(183쪽)"라는 
무서운 말을 조금이나마 가볍게 
받아들일수 있지 않을까.
 
함사=함께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부부가 함사가 되려면 이나=이야기 나누기를 
멈춰서는 안된다. 

두개의 길말고, 
여러개의 길중에서 
함께 걸어가야 할 길을 찾도록 힘써야한다. 
쉽지않을 것이다. 

이렇게 많은 좋은 생각을 했는데도,
일기장은 태워져야 하는가?

=====================================================================

1950년 11월 26일

 

아, 일기장을 살수가 없는 나라도 있었다니. 믿을수가 없는데, 사실이었다.

겨우 일기장 한권을 보관할, 나만의 공간이 없다는 것도 정말 가능한 일일까. 믿어야 한다.

 

이렇게 써놓았다가 다시 읽으면서 깜짝 놀랐다. 중학교 1학년까지 우리 여섯식구는 단칸방이었고, 중3때부터 2칸짜리 방에서 살았다. 결혼을 해서도 우리 둘이 살게 되기까지에는 3년이 걸렸으며, 둘이 살때도 단칸방이었다. 1997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방이 3칸이 되어 내서재가 생겼다가 아들들에게 한칸씩 줄수 있었고, 2002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내서재가 생겼다. 그리미는 아들들이 모두 나간 작년에야 처음으로 비어있는 아들방(?)을 그림그리는 방으로 쓰고 있다. 내방 한칸을 가지기가 이렇게 어렵구나.

 

"이집에는 나만을 위한 서랍이나 물건을 보관할수 있는 공간이 하나도 없다. 이제부터라도 내 권리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1쪽)

 

12월 10일

 

기쁨과 허전함과 무기력은 늘 이어진다.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를 듣는 순간 너무나 기뻐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중략 / 그러나) 자리를 잡고 앉으면 굳이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고단한 일상외에는 쓸말이 없다는 사실이다." (14쪽)

 

12월 21일

 

비밀이란 무엇일까? 나만 알고 있어야할 그 무엇. 그것은 있을수도 있고, 없을수도 있다. 어쨌든 비밀이 생겼을때, 그것을 지키기 위한 권리, 공간, 수단, 힘이 있어야 한다. 비밀을 지킬수 없다면, 나는 살수없는 것일까? 비밀은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이 나이에 무슨 비밀이 있을수 있겠어? (중략) 그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서글프게 들려서" (22쪽)

 

51년 1월 1일

 

말도 안된다. 노예의 삶이라. 후광이라. 와아의 원천이라.

 

"어떤 면에서 노예의 삶은 나의 무기이자 나의 희생을 빛내는 후광이 되었다. (중략) 저녁에 침대에 눕는 순간 밀려오는 피로감이 평안의 원천이다. 어쩌면 휴식을 거부하는 나의 굳은 의지는 피곤이라는 와아happiness의 원천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에서 오는 두려움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35~8쪽)

 

1월 3일

 

경제독립은 중요하다. 산업사회와 AI 시대로 넘어오면서 적어도 여성이라고 하는 뭇사람의 절반에게 경제독립의 기회가 왔다. 일자리가 늘어났던 산업사회에서는 괜찮았는데, 자동로봇과 AI가 중심인 시대로 들어오니 일자리 경쟁은 점점 심해지고, 경쟁에서 밀려나는 것은, 많은 여자들과 함께 틀림없이 많은 남자들이었다. 남자들의 분노가 여자들에게로 돌려지는 순간이다. 로봇과 AI에게 화를 낼수는 없지 않은가?

 

"경제독립을 한 나는 앞으로 결코 줄리아나나 다른 친구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지 못할것이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순간 서글픔과 엇비슷한 감정이 밀려들었다. 정든 고향을 떠나는 느낌이었다." (47쪽)

 

1월 5일

 

모든 하루는 삶을 위한 시간이었기 때문에 기억할만한 가치가 있다.

 

"하루동안 일어나는 모든 일이 기억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믿게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51쪽)

 

1월 7일

 

가는길이 달라질때, 친구는 친구가 될수 없는가? 만나기가 어려우니 그런가?

 

"평생 친구로 지내기는 힘든 법이다. 살다보면 모두 변하기 마련이니까. 어떤 이는 앞으로 나아가고, 어떤 이는 같은 자리에 머무른다. 가는길이 달라지면 만나기도 힘들고 공통점도 없어진다." (55쪽)

 

1월 9일

 

회의와 반성은 생각을 기름지게하는 거름과 같다.

 

"얼마전부터 내눈에 보이기 시작한 모든 것은 사실이 아닐수도 있다." (59쪽)

 

1월 10일

 

사람은 뇌를 즐겁게 하면 와아하게 살수있다. 이 가족이 그리 힘겹고 가난해 보이지 않는다. 어쨌든 가난때문에 포기하는건 와아happiness가 아니라 사치다. 그것은 부유해도 절제하며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가난하고 힘겹게 살아가면서 모든것을 포기하는 것이 사랑인가요?" (65쪽)

 

1월 14일

 

잊지말아야 한다. 할일과 하지 않은 일. 하고나서 얻은 것 - 느낀 것과 하지 않았을때 가진 생각.

 

"잊어버리지 않으면 사람은 죄다 오점투성이의 존재라는 사실이 밝혀질 것이다. 하겠다고 약속했던 일과 실제로 한 일, 되고 싶었던 존재와 현실과 타협한 실제 모습과의 간극이 큰 모순덩어리라는 사실이 밝혀질 것이다." (71쪽)

 

1월 20일

 

그리미에게도 이런 일이 있었을 것이다. 온갖 짐에 짓눌린 듯한 삶과 그런 짐들을 벗어버리고 밖으로 나갔을 때의 즐거움. 나도 한국을 벗어났을때의 가벼운 느낌이 좋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 평소와는 다른 삶을 사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92쪽)

 

1월 27일

 

그렇고 그런 사소한 일이 계속된다. 지루하지만 편안하고, 아무런 정보도 없는 수다떨기가 이어지고 있다. 그속에서 엄마인 그녀가 뭔가를 찾아가겠지.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가? 집과 옷과 먹을것 때문에.

 

"집과 옷과 먹을것을 제공해준다는 이유로 아빠의 말에 복종을 강요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했다." (112쪽)

 

1월 28일

 

우리는 사람으로서 가정과 사회에서 살아갈수밖에 없다. 누구의 소유는 아니다.

 

"나는 언제나 남편과 아이들 소유였다. 그런데 지금은 가끔 모두의 소유이자, 그 누구의 것도 아닌것처럼 느껴진다. 여자가 행복하려면 반드시 누군가의 소유여야 한다." (114쪽)

 

2월 2일

 

그래, 늘 새로운 것을 찾으러 다녀야 한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은 생각에 강렬한 매혹을 느낄때가 있다. 그럴때면 자유의 몸으로 행복하게 집을 나서는 내모습이 떠오른다." (120쪽)

 

2월 16일

 

결혼이 남녀가 사랑을 시작하면서, 물흐르는듯이 흘러가는 이야기의 중간지점인 것은 분명하다. 결혼이 무엇을 바꾼다기 보다는, 사람의 숫자가 자꾸만 늘어나면서 삶에 필요한 것들이 달라지는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라 봐야할 것이다.

 

자기가 원하는 삶이란게 있었던 사람이라면, 원하는 삶이 잘못 만들어져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뭘 모르고 삶을 꿈꾸었기 때문이다.

 

자기가 원하는 삶이란게 없었다면, 사랑과 결혼을 통해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알아가고 있는 것이다. 삶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내는 사람은 없지만, 그나마 진지한 결혼생활을 통해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다.

 

삶을 망친다고? 글쎄, 삶을 망쳤다면, 이미 살아있지 않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고 행동한 삶이, 지금 내가 살아가는 모습일 것이다.  

 

"결혼하면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 자유를 잃고 인생을 망친다" (155쪽)

 

2월 24일

 

사람과 사룸은 잠시도 가만히 있을수가 없다. 외부로부터 닫힌계로 에너지를 끌어와야하고, 닫힌계의 폐기물들을 몸밖으로 내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누군가가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 받아들일 것과 그렇지 않은것을 구분해야 하고, 나를 움직이게 하려는 의도와 수단이 무엇인지도 중요하다.

 

"사람은 잠시도 가만히 있으면 안된다." (172쪽)

 

2월 27일

 

선의로 하는 일들이 서로에게 독이 되는 일도 있다.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 벌을 키우시겠다고 고집하신 것과 아버지를 걱정해서 벌키우는 것을 계속 반대한 나의 고집. 선의지만 서로에게 독이 되었다.

 

"가족은 서로를 너무나 사랑하면서도, 원수처럼 상대방에게서 자신을 방어하는 존재다." (183쪽)

 

2월 28일

 

그런가?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을 한적이 있었던가? 태어난것 자체가 부끄럽다는 생각이 있었던가? 없었다. 공부하며 놀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는 늘 했었다. 졸업할 때, 취직을 하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 맞아, 그때는 정말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야 가난에서 벗어날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차가운 바람 맞으며 시장통에서 힘겨워하시는 어머니와 가족들과 떨어져 외로이 직장을 다니시는 아버지를 편안하게 해드리고 싶었다. 간절한 것은 아니었다.

 

취업이 간절해진 것은, 서류와 면접을 보고나서 불합격통지서가 자꾸 날아올때, 취업이 안될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점점 사기가 떨어지고, 마음이 초조해졌다. 그것도 잠시, 막상 합격을 하고 나니, 또 별것이 아니었다. 회사생활을 열심히 하겠다는 생각을 한것 같지도 않다. 일도 제대로 배우지 않았다. 그냥 내생각에 빠져살면서 월급을 받았다. 시키는 일중에서 재미있는 일들을 만들어가며, 점점 부자가 되었을 뿐이다.

 

무능하다는 생각은 했었다. 그래서 성공은 할수 없으니, 평범하게 살수 있도록 노력했다. 필요한 것과 사치스러운 것을 구분하게 되었다.

“자식들은 때로는 태어난 것 자체를 부끄럽게 생각하기도 해요. 부모님 돈으로 입고 먹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요.” (187쪽)

 

3월 7일

 

무엇을 감추고 무엇을 드러내야할까? 쉽지 않은 일이다. 다 드러내는 것이 도움은 되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감춘것은, 언제 드러내야 하는가? 어렵다.

 

“내가 시어머니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남편에게 숨기려고, 시어머니와 사는 것에 익숙해지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른다. 나는 수년 동안 시어머니를 돌봤고, 장례도 내가 치렀다. 미켈레는 떨리는 촛불 아래 검은 옷을 입은 채 딱딱하게 굳어버린 시어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성녀셨어."

미켈레는 슬픔에 사로잡혀 어머니의 손에 입을 맞추었다.

 

"당신은 어머님께 참 잘해주었지."

그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 어떤 시점에 가서는 가족 간에 어디까지가 친절함에서 나온 행동이고, 어디까지가 잔혹함에서 나온 행동인지 구별하기가 힘들어진다.” (213쪽)

 

사람은 늘 자기와 함께 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생각이든 행동이든. 

비슷할 필요는 없지만 
소통하면서 보완할수 있는 
함사 = 함께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친구로는 부족하다. 
친구가 아주 많은 시간을, 
거의 매일을 나와 함께 할수는 없기 때문이다.

5분의 1쯤 맞는 이야기. 

"남자를 자극할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랑하는 여인뿐이라고 했다. 
남자란 사랑하는 여인을 갖고 싶고 
정복하고 싶은 마음에 
강해지려 하는거라고 했다. 
(중략) 여자의 사랑을 차지하고픈 욕망" (232쪽)

 

엄마와 아들의 관계도 틀림없이 교육 - 사회가 주도하는 세뇌의 결과다.

 

"리카르도가 남자와 여자사이에 우정이란 있을수 없다고 주장했다. 남녀사이에는 공통관심사가 없어서 남자는 여자와 할말이 없다는거다. (중략 / 논거를 바탕으로 진지하게 반대하던 미렐라가 리카르도가 남자의 우월감을 드러내보이자) 오빠는 그런 여자들만 만나고 다니니까 그런식으로 생각하는 거 (중략) 미렐라가 제 오빠보다 강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리카르도가 아니라 미렐라를 한대 쥐어박고 싶었다." (233~4쪽)

 

3월 18일

 

오래전부터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서
작년에 10만원을 주고 당근에서
낡은 디지털 피아노를 사다 놓았는데,

안되더라.
건반을 치고 있으면, 
쓰지않던 다른 근육들이 힘들게 움직이면서 아픔이 몰려오나봐.

온몸이 너무 아프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일 대신에 또다른 함사를 찾는 모양이다.

향기나는 예쁜 색의 독배를 마시고 싶은가?

 

"봄의 매력이 나를 향해 성큼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를 만나야 한다. 그와 대화를 해야 한다." (238쪽)

 

농약에서는, 토할것같은 지독한 냄새가 난다. 원래 그런 냄새가 나는 것이 아니라, 혹시라도 마시고 싶은 유혹을 느낄까봐 지독한 냄새를 섞는다고 한다. 그런데, 또다른 사랑은, 온갖 좋은 냄새와 멋진 목소리, 아름다운 모습이 강렬하게 유혹하고 있을뿐, 파멸을 막아주는 어떠한 제어장치도 없다.

 

왜 그럴까?

또다른 사랑도 사랑이기 때문이다.

 

이제 다시 묻는다.

향기나는 예쁜 색의 독배를 마시고 싶은가?

 

3월 20일

 

처음부터 끝까지 엉터리 같은 말을 하면, 엉터리다. 쉽다.
그런데, 엉터리 - 좋은 말 - 이도저도 아닌 말이 마구 섞여있으면,

엉터린지 아닌지 헷갈리는데, 그냥 엉터리다.

 

엉터리 생각을 그럴듯하게 보이기 위해 온갖 분칠을 해대는거다.

사람이든 사룸이든 타고난 권리는 같다.

 

"각자의 타고난 가치에 따라 누릴수 있는 권리도 다른 법이야. 그러니 어떤 사람이 하면 잘못인 것도, 다른 사람이 하면 잘못이 아닌거지. 사람이 성숙하면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해. 그 역시 사람의 도리지." (240쪽)

 

4월 16일

 

과연 이해하는데 인정하기 두려운 사실이 있는 것일까? 사회에 널려있는 온갖 소수자의 문제. 이해한다, 그래서 인정한다. 가족들 사이에 사랑때문에 벌어지는 온갖 부딪힘들. 이해한다, 그리고 인정한다. 스무살 가까운 나이차를 뛰어넘는 결혼. 이해가 안된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하니 인정한다. 오히려 인정하는 것중에서 이해가 안되는 것들이 있다.

 

"이해하지만, 단지 그 사실을 인정하기를 두려워하는 것뿐이다." (314쪽)

 

4월 17일

 

매우 실망스러운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다. 하나마나한 이야기들, 마음이 움직이는 이야기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우리 모두가 독이든 잔을 마셔야 한다는 말인가? 그대나 맛있게 드시면 좋겠다.

 

"그동안 내가 죄악으로 여겼던 일들에 나자신이 어떻게 서서히 빠져들게 되었는지 기록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이 일기장 없이 살수 없듯이 그런 일을 저지르지 않고서는 살수 없게 되었다." (315쪽)

 

4월 18일

 

살기 위해 사람은 일한다. 그런데, 더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더 열심히 일하는 이유가, 다른 사람때문일까? 부모들은 자식들이 있기 때문에 더 열심히 일하는 것일까?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 중에 자식이 없는 사람들은 없을까? 어렴풋하게만 맞는 말이다. 이런 말에 고끄하지 = 고개를 끄덕하지 = agree하지 않는다면, 틀린 것일까?

 

“집안일에 직장까지 모든 짐을 네가 지고 있다는 걸 알아. (중략) 어쩌면 우리는 혼자일때는 강해질 수 없는 걸지도 몰라. 다른사람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확신이 우리를 억지로 강한 존재로 만드는 거야.” (328쪽)

 

4월 24일

 

우리의 생각이라고 말하게 되는 것은, 이야기를 나누고 난 다음의 일이다. 이나 = 이야기를 나누다 = communication은 처음에 되었으니까 나중에는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이나는 언제나 이루어져야 한다. 힘들면 잠시 쉬었다가 이나 = 이야기를 나누면 된다. 그래서 이나가 끊겼다는 말은, 우리의 생각이 없어졌다는 이야기다. 우리의 생각이 사랑을 만드는 좋은 재료라고 생각한다면, 이나가 없으면 결국 사랑이 점점 식어간다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도 = 이나가 없는데도 사랑한다고 말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두렵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이라는 보호막이 사라진다는 두려움이 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신혼 초에는 모든 생각이 우리의 생각이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는 침묵의 힘을 빌려 여전히 우리의 생각이 일치하는 것처럼 연기했다. (중략) 나는 아직도 남편을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심지어는 귀도에게도 자주 그런 말을 한다. 그렇게 말하면 나 자신을 보호하는 느낌이 든다.” (334쪽)

 

5월 10일  

 

이해하지 못하는 것 = 악마성 = 매료. 뭔가? 이해하지 못했으니, 느낌이 좋다는 것이다. 그런데, 악마성은 뭘까?

 

“나는 방안을 왔다갔다하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의 모습에는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약혼 시절에도 그랬다. 그는 나를 위해 쓴 시를 낭독해주곤 했는데, 나는 그 시의 의미를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 불가해성 속에서 느껴지는 악마성에 매료되었다.”(384)

 

5월 22일

 

죽음이 이루어지는 때를 알겠다. 세상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알고 싶지않을 때, 죽음이 다가온 것이다. 몸밖의 세상에 대해 알지 못하면 사룸은 죽는다. 세상을 다시 만들려는 사람들은 늘 있다. 그래서 세상이 변한다. 다시 만들려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의 어려움을 겪게 될것이다. 세상은, 아주 조금씩 바뀌니까, 조금씩만 힘들도록 해야한다. 그것이 현명한 삶이다.

 

"내가 세상이 얼마나 변했는지 어머니는 모르신다고 하자 굳은 표정으로 "굳이 알고싶지않다"고 했다. (중략) 내가 낡은 전통과 새로운 요구 사이에서 불안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408~10쪽)

 

5월 24일

 

나를 지키지 못한다면, 나는 없으므로, 냉철하든 고약하든 지켜야한다. 그것이 선량한 움직임이라고는 말할수 없다.

 

"미렐라가 자신의 삶을 보호하기 위해 취하는 냉정한 태도가, 내삶이 휩쓸려가도록 내버려두는 나의 나약함보다 차라리 더 선량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416쪽)

 

깨끗한 종이에 멋진 만년필로 길이길이 남겨둘만한 글을 짧게 썼다. 그런데, 한글자가 틀렸다. 어떻게 할까? 새종이에 처음부터 다시 써야할까? 또 틀리면 또 다시. 그런 것말고, 틀린글자를 깔끔하고 멋있게, 예쁘고 귀엽게 처리하는 방법은 없을까?  

 

사악한 빚. 왜 사악하다는 꾸밈말을 붙였을까?

 

“그날 이후 나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기억력이 좋지 않았다. 어쩌면 타고난 방어기제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삶이란 결국 길고 힘겨운 산책일 뿐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사는 편이 낫다. 때때로 희망이 가는 길을 동반해주지만, 결국 누구도 그 희망을 실현시키지는 못한다.

(중략) 더 늦기 전에 와아=happy해지고 싶다. 이 일기장의 두께만큼 다른 사람들을 위한 삶을 살았다. 종이의 무게와 빽빽한 나의 글씨는 그러한 나의 삶을 실물로 보여준다.

내가 혹사당하는 것을 즐긴다는 귀도의 말은 사실이다. (중략) 사실 나는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의무감에 그렇게 강하게 구속받지 않는다. (중략) 내 유일한 두려움은 그동안 좋은 마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인내심을 가지고 쌓아온 자산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내 삶을 바쳐 희생한 사람들이 내게 조금씩 갚아야 할 사악한 빚이었다.

다행히 지금은 이런 내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안다. 나자신을 방어해야한다.”(420쪽)

 

5월 27일

 

살기위해 온갖 생각과 느낌, 움직임들이 수십년동안 벌어지는데, 그것을 다 아는 것은 정말 끔찍한 일이다. 사람은 먼지와 같다라고 하는 말이, 오히려 사람을 지나치게 높게 평가하는 말처럼 들린다. 그렇다면 쓰이지 않은 일기장을 가지고, 몸안의 감옥속에서 우리는 살아야하는 것일까? 일기장을 없애버려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일기장을 떳떳하게 확 펼쳐놓고, 부끄러움을 참아가며 그렇게 살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일기를 쓰고, 서로의 일기를 보지않는 것으로 하고, 일기장을 갖고 있는 것이 좋을까?

 

어렵다.

 

"판사가 되고 싶었는데, 죄인이 된것같다. (중략)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챌 것이다. 결국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까만공책, 금지된 일기장을 숨기고 있으니까. 모두 그 일기장을 없애버려야 한다. (중략) 앞날에 올 나의 나날들은 아무것도 쓰지않은 이 흰종이처럼 하얗고, 매끈하고, 차가울 것이다. (중략) 주변에 오직 가벼운 탄냄새만 남을 것이다." (428~3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