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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서재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_231119 el domingo, diecinueve de noviembre_Воскресенье, девятнадцать ноябрь

1999년 4월 20일, 미 중부 콜로라도주 리틀턴의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에릭과 딜런이 학생과 교사 13명을 죽이고 자살했다. 두 아이의 가족들은 얼마나 고통스런 시간을 보낼까? 상상하기조차 두려운 일이다. 이 책은 딜런의 엄마가 딜런의 사고 이후 16년간의 세월을 정리한 기록이다. 그 고통의 기록을 내가 공유해야 할까? 그녀를 위로하기 위한 일이라면 어느 정도 필요하지만, 그 필요를 위해서 나또한 고통을 겪어야 한다. 힘든 일이다.

 

모든 뇌질환자가 폭력과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다. 시민 중의 4%가 범죄자이면, 뇌질환자 중의 4%도 대체로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높다. 시민 중의 4%는 몇가지 원인이 결합되어 범죄자가 되지만, 뇌질환자의 4%는 뇌건강이 1차 원인이 된다. 시민 전체를 관리해서 4%의 폭력을 줄이기는 어렵지만, 시민 전체에 비해 소수인 뇌질환자의 4%는, 관리할 수도 있고 잘만 관리하면, 최소한 뇌질환으로 인해 발생하는 4%의 범죄는 대폭 줄일 수 있다.

 

"정신병이 폭력의 요인인 경우는 전체의 4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정신병이 다른 위험요인(약물과 알콜 남용)과 결합되면 그 수치가 올라간다. (중략) 뇌건강 문제와 총기난사사건 사이에 접점이 있다. (중략) 37건의 학교총격사건을 검토하여 (중략) 범인들 대부분이 자살을 시도했거나 자살충동을 느낀 이력이 있으며 극도의 불안 혹은 좌절을 경험했다. (중략) 뇌건강상태 진단과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 폭력을, 그리고 자살(중략) 십대들이 마주한 여러 위험을 예방하는데 핵심이 될 수 있다." (250~1쪽)

 

'비인간화도 가속된다'는 말은 의미가 모호하다.  내가 받는 정신의 고통과 소외감이 클수록, 다른 사람을 '사람이 아닌 사물'로 바라보거나, 나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세균과 같은 원인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로 해석하였다. 한자어와 '아닐 비'자가 난무하는 글쓰기가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너무 많은 어려움을 준다.

 

"정신의 고통과 소외감이 심해질수록 타인에 대한 비인간화도 가속된다." (265쪽)

 

토머스 조이너(258쪽)의 벤 다이어그램을 추정해서 그려보면(검색으로 찾지를 못했다), 초록색으로 칠해진 부분이 자살충동(자살욕구)다. 자살충동이 커져서 자기보존본능을 넘어서게 되면 실제로 자살이 실행된다고 한다. 자살잠재력은 자기보존본능의 반대욕구로, 자살잠재력이 커지면 자기보존본능은 작아진다. 소속감을 잃어버리고, 자신이 짐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커지면서, 자살욕구가 자기보존본능을 넘어서는 단계에 이르면, 자살이 실행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철자 수정 : belongingness / 토머스 조이너 자살충동 벤 다이어그램 Venn Diagram / created by muil

 

공포영화를 보는 듯 가볍게 긴장한 상태에서 책을 읽는다. 무엇을 느끼려고 이 책을 읽는지를 다시 묻게 된다. 자살한 아이의 부모를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살인자의 부모도 살아가야할 이유가 있다는 것을 공감하기 위해서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로해주지 못해서 가장 나쁜 구렁텅이에 빠뜨린 것에 대해 무한한 죄책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 죄책감을 어떤 방식으로든 - 다른 사람의 사룸life을 구해내는 방식으로라도 달랠 수 있다면, 고통의 시간이 조금은 줄어들 수 있을까?

 

"넌 딜런이 한 일을 용서할 수 있니? (중략) 딜런을 용서한다고? 내 자신을 용서하는 게 내 일이야. (중략) 날이면 날마다 그렇게 하지 말았더라면 하는 석들 수백가지를 되새기며 지냈다." (397~409쪽)

 

모든 행위의 결정이 이루어지는 곳이 뇌이다보니 이런 추정이 가능하고, 많은 뇌 자료를 수집하다보면 밝혀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통해 비극을 막고, 소중한 사룸 life을 보존할 수 있다면, 멋진 일이다.

 

"아랑고 박사 등의 연구를 통해 자살로 죽는 사람과 아닌 사람의 뇌에 분명한 차이가 있음은 밝혀졌다. 켄트 키엘 박사등은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뇌도 뚜렷한 차이를 보임을 입증했다." (416쪽)

 

일단 뇌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을 알아챌 수는 있을 것이다. 삶을 파괴하려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뇌에 병이 생긴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이 없다면, 그것 또한 위험신호다. 그럴 때 가족, 친구,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왜 그런 생각이 일어나는지 자기자신에게, 친구에게, 전문가에게 물어야 한다.

 

그리고 뇌의 물리상태에 어떤 변화가 생겼을때, 정신작용에 이상이 생기는지도 알아내야 한다. 뇌 형상의 손상이나 혈액의 흐름이 끊기는 등 분명한 변화를 발견해서 치료하거나 예방할 수 있을까?

 

"불안장애에 시달리며 나는 망가진 정신 속에 갇힌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뇌에 이상이 있을 때에는 자신의 생각을 통제하지 못한다. 생각의 균형을 잡기위해 아무리 애를 써보아야, 사용할만한 도구가 없다. 내뇌를 통제하지 못한다는게 어떤 의미인지, 그때 처음으로 알게되었다. (중략) 슬프고도 무서운 진실은 언제 우리가(혹은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이) 심각한 뇌건강 문제를 일으킬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중략) 의사결정기능장애 (중략) 어떻게 사람이 양심을 잊게 되는가? (중략) 뇌건강과 폭력이 합쳐지는 지점을 편견없이 터놓고 논할 방법이 필요하다. (중략) 아이들에게 자기 뇌의 건강을 잘 살피라고 가르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자기 뇌건강을 건사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나는 몰랐다. 내 삶에서 가장 큰 후회는 딜런에게 그걸 가르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433~442쪽)

 

자살하고 싶은 충동을 이겨내지 못한 사람이 왜 다른 사람을 죽이는지에 대한 분명한 답을 얻지 못했다. 소외된 자아가, 죽고 싶은 자아가, 다른 사람을 죽임으로써 이름을 얻는 것까지는 알겠다. 그런데, 왜 자살하는가?

 

자살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소외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자신의 훌륭한 모습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자신을 둘러싼 세상이 모두 자신을 외롭고 힘들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기 이외의 세상에 대해 격렬한 분노를 터뜨리고, 세상을 이겨내지 못하는 자신을 한탄하며 죽어간다. 그래서 자살이 살인의 원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리라.

 

이 책은, 살인-자살에까지 이르게 하는 뇌건강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자고 말한다. 누군가 뇌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은, 굉장히 힘든 병에 걸렸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위로와 격려와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가슴에 새기자는 책이다. 아울러 우리 모두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도, 뇌건강에 이상이 있을 수 있으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애나 어른이나, 어려움을 극복하고 홀로서기에 성공해 본 사람들은 자신의 가능성을 잘 알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만들고, 그 일 속에서 어려운 고비를 만들고 이겨내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홀로서기를 꾸준히 연습하자. 나이가 들었든, 어리든.

 

힘들었지만 무사히 읽기를 끝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