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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서재

세계문화의 겉과 속_231016

강준만이 2012년에 쓴 책이다. 요즘 들어 그의 글이 총기가 떨어지고 있는 것같아 답답해지고 있는데, 10년 전에 쓴 책에서 그의 변화를 읽을 수 있을까. 그 변화의 원인은 무엇일까. 생각을 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들을 때, 가장 나쁜 일이 내 생각과 같은 이야기만 듣는 확증편향의 의견들이다. 강준만이 나의 확증편향을 바로잡기 위해 편견과 싸우고 있는 것일까.

 

[ 제1장 ] 맥락, 개인주의, 집단주의

 

1. 왜 한국인은 영어를 몰라도 아는 척하나

 

독일 사람이 제기한 재미있는 주제다. 나도 영어를 못하지만, 정말로 알아들을 수 없어서 문제가 될 수 있겠다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므로 지나가면서 잠깐 인사를 나누는 정도의 영어는 가능하겠지만, 대화다운 대화는 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언제나 대화를 하고 싶어해서 알아들으려고 애쓰다가 결국에는 포기한다. 이럴 경우 대화상대방은 오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강준만의 결론은, 위선이나 체면치레가 아니라 대충 미루어 짐작하며 넘어가는 대화를 하는 것(대화의 의례성, 겉치레 대화, 가벼운 배려)이, 한국사람의 행동 형태라는 최상진의 말을 인용한다. 덧붙여서 한국이 꼬치꼬치 자세하게 말하는 저맥락의 대화 보다는 고맥락의 대화를 좋아한다고 설명한다.

 

당위를 소리높여 외치는, 의례하는 비판에 대한 지적은, 공감이 가는 이야기다. 교과서나 이상사회에서나 가능한 것을 전제로 한 비판만이 계속된다면 조금씩 나아가기가 어렵다.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해 멀리 있는 북극성을 바라보고 나아가되, 굳이 북극성에 도달할 이유는 없다.

 

"공공 담론이 당위 일변도로 나가면, 비판의 전문성도 존중받지 못하고 책임지는 문화도 정착하기 어렵다." (31쪽)

 

2. 왜 일본인은 집단을 위한 거짓말에 당당한가

 

일본은 1955년 이후로 아주 짧은 민주당 집권기 이외에 정권교체를 해내지 못하고 있다. 일왕을 중심으로 한 일당독재의 전체주의 국가 체제가 성립된 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로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는 일본의 준법정신과 질서의식이 무지에서 깨어난 시민정신이 아니라 집단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평가다. 그런데, 이런 집단주의는 왜 발생했을까? 섬나라는 대륙과 달리 도망칠 곳이 없어서 집단의 흐름에 따를 수밖에 없다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일본에서는 단체의 이익을 위해 거짓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기만 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이 아니다"는 한 일본인의 말을 소개하면서 (중략 / 일본 전문가 알렉스 커는, 일본이 '정보쇄국'이라는 세간의 평가에 동의하고) 인터넷이 일본을 개방시키지 못했다는 사실은 이 나라의 장래에 먹구름을 드리운다. (중략) 지구 상에 남아있는 유일한 사회주의 국가 (중략) 전 인구의 90퍼센트가 스스로 중산층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나라 (중략) 일본 사람들은 집단 속에서 인정받고 탈락하지 않기 위해서 자기 자신보다는 남을 의식해 행동하는 게 몸에 배어 (중략) 집단에서 벗어나거나 집단 간의 할거에서 벗어나면, 구심력을 잃어버리고 고삐 풀린 망아지가 돼 약자에게 이지메를 가하고 횡포를 부린다." (34~47쪽)

 

3. 왜 일부 한국인은 '가족은 흡혈귀'라고 하나

 

이 책이 쓰여진 지 10년이 지났는데, 이런 이야기를 처음 듣는다. 끔찍한 문장이다. 그러나 이 문장이 현실을 반영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가족은 점점 쪼개져 1인 가구가 30%를 넘어가고 있고, 결혼도 드물게 하고, 출산도 하지 않는다. 병든 부모는 요양원에 보내진다. 이 모든 것이 그 문장에 대한 증거이자 결과가 아닐까. 인구가 줄어들고, 가족공동체가 깨지면서, 다시 가족공동체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험한 세상에 나아가느니 안전한 가족 울타리에서 살자는 생각도 다시 퍼지기 시작한다고 한다. 캥거루족의 등장이다. 무엇이 정상이라고 말하기 힘들다. 세상이 사람을 그렇게 진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은 행복의 근원인 동시에 구속과 스트레스와 고통의 근원이기도 하다 (중략) 한국에서 개인은 혼자 뛰는 것이 아니라 가족의 대표선수다. 개인은 출세하기까지 가문의 적극 지원을 받으며 그의 출세는 가문의 영광으로 간주한다. (중략) 가족주의가 민주주의 밑으로 들어가지 않는 한 사회의 민주화는 요원한 것이다. (중략) 대안으로서는 개인주의가 있다. 개인의 양심, 개인의 주인의식, 개인의 주체성이 기준이 될 떄 가족주의는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52~3쪽)

 

부부교육 -> 부모교육 -> 가정교육 -> 학교교육이라는 단계를 짜서 부부교육과 부모교육을 이수하지 않으면 결혼과 출산에서 실패한다는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다. 과거 공동체에서 이루어졌던 교육이 사라져버림으로써 부부교육과 부모교육, 가정교육이 모두 무너진 상태다. 다행히 가족이 해체되고 다시 복원되고 있는 것을 보면, 부부교육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족주의의 폐해를 공부한 부부들이 새로운 부모와 가정을 만든다면, 다시는 가족주의로 인한 부패로 나라가 망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기대한다.

 

"가정교육 이전에 부모교육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부모교육이 안된 상태에서 가정교육은 더 퇴행을 낳기도 한다. 부모나 자식이나 자율인격체로 독립해야 한다. (중략) 가족주의가 강한 나라일수록 부정부패가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54쪽)

 

[ 제2장 ] 차이, 관용, 신뢰

 

1. 청결강박증

 

파스퇴르는 1895년에 죽었다. 평화를 파괴하는 세균같은 존재였던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민비를 시해했던, 을미사변. 그의 가장 큰 업적이 '질병이 세균에서 유래한다'는 것이다. 이 발견이 프랑스 부르조아들을 깨우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을 정도로 청결 노이로제를 일으켰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그 화살이 향한 곳은, 가난한 노동자들의 삶의 터전이다. 그들의 주거환경을 개선하여 함께 살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일제와 서양인들이 식민지 조선의 시민들을 불결하다며 손가락질했다. 야만의 시대였다.

 

참고로 연도를 기억할 때, 참고할 60갑자의 앞부분이 연도의 끝과 똑같이 반복된다. 갑4 을5 병6 정7 무8 기9 경10 신1 임2 계3 / 오농민전쟁(1894) 미사변(1895) 자호란(1636) 미7조약(1907) 오사화(1498) 미독립만세운동(1919)  술국치(1910) 미양요(1871) 진왜란(1592) 축옥사(1613) / 무오사화는 연산군, 계축옥사는 광해군 때의 일이고, 계축옥사 5년후,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키고 예조판서에 올랐던 허균은, 시류를 거스르며 살다가 역모혐의로 몰려 능지처참을 당하였다. 

 

"(인류학자 라투르에 따르면, 파스퇴르의 발견에 영향을 받아 프랑스 정부가 벌인 세균과의 전쟁은, 사실 세균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법에 의해 빈민들의 생활 터전을 박탈하고 신흥 부르주아지가 개발하고 있던 파리에서 내쫓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통제할 수 있게 됐다 (중략 / 더글러스는) 한 문화의 도덕성이 내부모순으로 위험이 발생할 때, 더러움에 대한 불안감이 발생한다 (중략) 위생관념은 언제나 이민족을 바로잡는 만만한 회초리였다. 모름지기 이방인은 더러운 족속이기 마련이다. (중략) 나치는 유대인이 더렵다는 관념을 조장했다." (84~5쪽)

 

2. 왜 관용은 권력의 논리인가?

 

관용은 강자가 약자에게 베푸는 것이어야 한다고 믿어왔다. 약자가 강자에게 베푸는 것은, 관용이 아니라 아부다. 그런데, 강자가 울타리를 쳐놓고 그안에서 마음대로 뛰놀라고 한다면, 그것은 관용인가 억압인가? 데리다의 이 문장에 고개가 끄덕여지기는 하지만, 울타리가 쳐진 곳에서만 놀라는 것은, 강자의 착각에 의한 억압이다.

 

그런데, 우리는 늘 '강자의 집'에서 '우리집처럼 뛰어놀아서' 그런지, 강자들이 '내집에서 나가'라고 할 때, '이게 왜 네집이야, 우리집이지'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강자들은 역시 관용이 없다'라고 생각한다. 강자들이 생각하는 집의 울타리가 우리에게는 없고, 그들이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을 우리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재용이 삼성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을, 우리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삼성은 노동자들의 기업이고, 이재용도 노동자의 한명에 불과하기 때문에, 삼성은 우리의 것이다. 마음놓고 놀아도 되고, 노동자의 편에서 의사결정을 하면 된다. 이재용이 노동자의 편을 드는 것이 관용이다. 그런데, 이재용은 노동자의 편을 들지 않으니, 그는 관용이 없다. 즉, 모든 강자들은 관용이 없다.

 

아, 이것은 비극이다. 강자가 관용을 베풀어야 평화가 가능하다. 강자가 끝까지 가려고 한다면, 전쟁이 터진다. 우리들은 일시 후퇴할 수는 있지만, 굴복하지 않는다. 사람사는 세상이 평화가 드물고, 전쟁이 끝나지 않는 이유다.

 

"(데리다) 관용은 늘 '최강자의 논거' 편에 있습니다. (중략) 주권은 오만하게 내려다보면서 타자에게 이렇게 말하죠. '네가 살아가게 내버려두마. 넌 참을 수 없을 정도는 아니야. 내집에 네자리를 마련해두마. 그러나 이게 내집이라는 건 잊지마." (93쪽)

 

강준만은, "관용은 당신이 승자가 아니거나 낮은 곳에 임하고 있을 때에도 작동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진정한 관용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94쪽) 이라고 한다. 나는, "관용은 당신이 약자가 아니거나 높은 곳에 올랐을 때에도 작동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진정한 관용은, 자기 자신의 울타리를 넘어서는 타인의 요구에도 마음을 여는 것"이라고 말한다.

 

[ 제3장 ] 시간의 문화정치학

 

1. 왜 미국인과 유럽인은 서로 경멸하나

 

오, 이미 100년 전에 이런 생각을 해낸 사람이 있다. 라파르그, 훌륭하다. 사람은, 가능하다면 하루 3시간만 일하고, 쉬면서 사람과 세계를 즐겨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을 '반노동주의자'라고 한다면, 기꺼이 그 딱지를 이마에 붙이고 다니고 싶다.

 

"프랑스의 반노동주의자들이 자주 인용하는 책은 카를 마르크스의 사위인 폴 라파르그가 1883년에 출간한 '게으를 수 있는 권리'다. 지금까지도 널리 읽히고 있다. 프랑스 노동자계급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 이책에서 라파르그는 인간소외를 없애기 위해 노동자는 하루 3시간만 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게으름뱅이 철학의 기본원칙은 노동과 놀이를 통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133쪽)

 

2. 왜 중국은 '만만디'에서 '콰이콰이'로 가는가

 

이런 말도 안되는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은 괴롭다. 게으름과 가난이 보호막이라니? 정조 사후 1800년부터 100년 동안 계속된 부패한 세도정치가, 민란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고, 반개혁과 외세의존으로 나아가다 결국에는 일제 식민지로 이어진 것이다. 식민지 상황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본 사람들도 농민들이었다. 그들에게 '가난'이 보호막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고통스럽게 살다가 돌아가신 농민들을 두 번 죽이는 지적이다.

 

"그렇지만 가난이 항상 농민들의 삶에 질곡으로 작용한 것은 아니었다"며 "가난은 탐욕스러운 관리들로부터 농민들을 보호할 수 있는 최고의 방어막 구실을 했다. 이런 모습이 낯선 이방인의 눈에 '안락함'으로 비칠 정도로 조선 농민들은 가난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면을 보여주었다. (중략) 같은 시기에 가난과 학정과 수탈을 못이겨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 간도와 연해주, 이어 해외로 이주한 조선인들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부지런하고 빨랐다는 사실이다." (153쪽)

 

3. 왜 한국엔 전근대-근대-탈근대가 공존하는가

 

문화지체가 어떤 문제를 야기할 수 있을까? 

 

"개마고원 갑산에서는 가을에 피는 메밀꽃이 여름에 피는 감자꽃과 동시에 핀다 (중략) 한국사회의 특징을 비동시성의 동시성으로 설명한다. (중략) 세계 최고의 세마 합리성과 경제 효율성을 자랑하는 삼성전자가 세습을 통해 경영권을 유지하는 전근대 현상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중략) 전근대의 불합리한 제도와 관행이 특정 세력에 의해 재생산되고 있다. (중략) 비동시성의 동시성은 '문화지체'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중략) 변화속도가 빠른 순서대로 보자면, 기술 technology -> 경제 -> 사회조직-> 가치 순이다." (168~9쪽)

 

 

[ 4장 ] 공간의 문화정치학

 

1.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플까

 

부의 불평등이 작은 사회는, 능력에 따른 평등을 존중하는 우리 사회에서, 도달하기 힘든 경지다. 우리 세대는 지금 정도의 분배구조를 유지하면서 부패 구조를 조금씩 더 청산해 나가는 것이 와아happiness의 최고점일 것이라고 믿는다. 더 원하는 것은 아와unhappiness로 가는 길이다. 그래도 이런 나라들이 있다는 것은, 우리의 나아갈 방향이 아주 불가능하지 않다는 증거일 것이다.

 

"부의 불평등이 가장 작은 사회가 가장 와아할 것이다. 이것은 정말로 타당할까? 그렇다. 복합 복지척도의 꼭대기에 있는 나라들 - 아이슬란드, 네덜란드, 덴마크, 스위스, 핀란드, 스웨덴, 아일랜드, 노르웨이 - 은 모두 공공연하게 재분배주의 세금정책을 갖고 있고, 소득분포가 협소하다." (230쪽)

 

[ 제5장 ] 감정, 관습, 인생관

 

1. 한국인의 행복지수

 

착각이든 뭐든 잘 살면 좋다.

 

"자기통제권 또는 통제력 착각이 있는 사람들이 스트레스도 덜 받아 와아감을 더 많이 느(낀다. 중략) 자기의 통제력을 사실보다 과장해 지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도박이나 주사위 던지기 또는 복권당첨과 같은 순전히 운으로 결정되는 사건도 자신이 선택했다든지 (중략) 자기의 미래를 타인의 미래보다 더 나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비현실 낙관주의 unrealistic optimism (중략) 이런 긍정 착각은 정신건강의 지표이며, 긍정착각을 많이 느끼는 사람일수록 와아감도 더 많이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249~51쪽)

 

2. 한국의 술문화

 

경범죄처벌은 그렇다치더라도 중범죄의 경우에는 가중처벌까지 검토해야 한다. 음주운전에 대한 벌금이 계속 높아지고 있는데도 3진 아웃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면, 처벌로 음주습관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음주했기 때문에 중범죄에 대한 처벌을 약하게 해 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

 

"미국의 엄격한 음주관련법 (중략) 술에 취해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감형이 되지 않을뿐더러 경우에 따라 술을 마셨기 때문에 오히려 사건이 더 불리하게 진행될 수도 있다. (중략) 음주한 상태로 자신의 몸을 도구로 사용한 것으로 간주해 술을 핑계로 법망을 빠져나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있다." (255쪽)

 

3. 아일랜드

 

술 마시고 떠들기 좋아하는 아일랜드에는 세 번의 어려움이 있었다. 1640년대 영국의 가톨릭교도 학살, 1840년대 감자기근으로 100만명 아사,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의한 부동산 폭락과 재정위기로 구제금융. 이런 고난들을 통해 그들은 내부의 화합만이, 생존과 번영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깨닫고 실천한다. 양보와 타협으로 신뢰를 쌓아가는 노사대화합과 공동체의 번영을 위한 의사결정을 하는 집권층의 노력이 돋보이는 나라다.

 

"아일랜드의 국토면적은 남한의 80% (중략) 19세기 중반에 아일랜드 인구는 700만명이었지만, 1840년대 감자기근으로 100만명이 죽었고, 100만명은 살길을 찾아 아일랜드를 떠났다. 그뒤에도 인구는 계속 줄어 (중략) 식량이 수입되기는 커녕 정반대로 아일랜드에서 부유한 영국으로 식량이 수출되는 현상이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아일랜드에선 돈이 없으니까 식량이 있어도 살 수가 없었던 것 (중략 / 가톨릭교도가 95%인 아일랜드에서 신교를 강요한 영국은) 1641년에 시작돼 10년 동안 벌어진 폭동에선 60만명이 죽었다. (중략) 크롬웰은 일기에서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해 아일랜드인에게 고통을 가하는 즐거움을 표현했다." (262~3쪽)

 

4. 통곡 문화

 

우리는 비통한 심정을 그대로 표현한다. 그리고 떠들석하게 논다. 괴로운 일이지만 축제처럼 흘려보낸다.

 

"(서양은 물론이고)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우리나라와 같은 통곡 장면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중략) 조선총독부는 상여로 운구할 때 상여소리를 못하게" (273쪽)

 

5. 이란의 립스틱

 

모든 여성들이 모든 억압으로부터 해방되기를.

 

"이슬람은 여성의 상속권 뿐만아니라 여성의 사유재산 소유권과 여성의 부동산소유권도 이슬람 초창기부터 인정하고 있었다. 때문에 당시 서구에서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로 인정하던 관행에 비추어 이슬람 여성들은 이미 엄청난 권리를 누리고 있었다." (이희수 / 287쪽)

 

충격이다. 쿠란에 근거했다고는 하지만 팔레스타인을 비롯해 많은 이슬람의 나라들이 여성 참정권을 인정하고 있는데 말이다. 권력자들의 후안무치는 사람의 상식을 초월한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여성의 월경이 정치 판단을 흐리게 할 수 있다'는 이유로 여성의 정치참여를 봉쇄하고 있지만, 그런 억압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292쪽)

 

다행히 2015년에 투표권과 참정권이 모두 인정되었다."사우디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여성 후보자들은 남성 옆에 서서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 여성 후보자들은 대면 유세가 아닌 텔레비전에 프로그램 등 전파를 이용한 선거 유세만 할 수 있다. 텔레비전 유세를 할 때도 남성 대변인을 통해 의사소통 할 수 있다. 다만 소셜 미디어를 통한 유세는 직접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여성 후보들은 소셜 미디어와 인터넷 사이트를 통한 온라인 홍보에 집중하고 있다. (중략) 여성 후보라는 이유만으로 그를 지지하겠다는 유권자들도 나타나고 있다. 사우디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는 한 여성은 "지방의회 후보로 출마한 여성 후보에게 표를 행사하겠다"며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투표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말했다.

 

한편 사우디의 여성 참정권 보장은 2011년 압둘라 국왕의 결정에 따라 이뤄졌다. 2011년 9월 국왕 최고 자문기구인 슈라위원회 연례 연설에서 "2015년부터 여성이 지방의회 선거에 출마할 수 있고 투표할 수 있다"고 밝혔다." (지방의회발전연구원, 2015년)

 

[ 제6장 ] 권위, 서열, 차별

 

1. 아이비리그의 경쟁력

 

인맥은 계급이다. 이렇게 이해하면 되겠다.

 

"아이비리그 대학의 교육이 다른 곳보다 뛰어난 점이 있다면, 웅장한 도서관이나 교수들의 능력보다는 대학에서 얻게 되는 인맥 쪽일 것이다. (중략) 아이비리그 대학의 학비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하도 계속 학생이 몰리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중략) 베이징대학교 재학생의 10퍼센트가 공산당원인데, 이는 1991년 5%에서 증가한 것이며 입당지원자도 계속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중략) 인맥은 '위장계급'이다. 실제 계급인데도 계급문제를 인간관계 문제로 돌림으로써 사회의 불평등에 대한 불만과 저항을 무력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350~3쪽)

 

[ 7장 ] 수치심, 죄의식, 극단주의

 

1. 투기대국

 

쓰고도 남는 돈이 있으니 무언가를 해야 하는데, 그돈으로 먹고 놀 수만은 없다. 자비를 베푼다면 좋을텐데, 그런 마음을 먹고 실천하는 것은 너무 어렵다. 모든 사람들은 더 큰 돈을 벌기 위해 자산투기를 감행한다. 자산가치는 인구가 늘고 경제가 팽창하면서 계속 상승했지만, 코로나로 인구가 줄기 시작하면서 거대한 변곡점이 왔다.

 

"1630년대 튤립 열풍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흑튤립 구근 하나로 암스테르담 운하에 인접한 5층짜리 주택을 구입 (중략) 1720년 영국에 불어닥친 투기열풍에서 큰 손해를 본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은 '천체의 운동을 계산할 수 있는 나도 인간의 광기는 도저히 계싼할 수 없다.' (중략)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을 비롯해 벤저민 프랭클린, 패트릭 헨리, 토머스 제퍼슨, 알렉산더 해밀턴 등 내로라하는 지도자들도 모두 땅 투기로 큰돈을 벌었다. (중략) 북부의 투기꾼들은 이익을 위해서라면 남군의 승리도 환영했다는 이유로, 반역자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376~8쪽)

 

2. 들쥐 떼

 

들쥐떼는 한국의 평범한 시민들이 아니라, 권력을 향해 뛰어다니는 사람들이다. 위컴도 그 사실을 지적했다. 시민들은 공동체를 파괴하는 도적떼들과 싸우기 위해 수없이 어깨동무를 해 왔다.

 

"동물 보호론자들인 레밍 에이드가 들쥐를 구하기 위해 갖가지 장비를 갖추고 스칸디나비아 바닷가 절벽을 향해 질주하는 들쥐를 막아보려 안간힘을 다했지만, 실패했다. (중략 / 1980년 8월 위컴은) 각계각층 사람들이 마치 들쥐(레밍)떼처럼 전두환의 뒤에 줄을 서고 그를 추종하고 있다 (중략 / 전 사령관을 위한 개신교 기도문) 이 어려운 시기에 막중한 직책을 맡아서 사회 구석구석에 존재하는 악을 제거하고 정화할 수 있게 해준 데 대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중략) 허화평은 위컴의 들쥐떼 발언이 '한국 정계의 지도층 인사들'을 겨냥한 것" (403~4쪽)

 

[ 제8장 ] 인종, 민족, 다문화주의

 

1. 프란츠 파농과 노예무역

 

팔레스타인의 상황을 보면서 파농의 분석과 울분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알제리는 프랑스로부터 독립했으나 여전히 원격지배를 받고 있다고 한다. 400년간 계속된 유럽의 아프리카 식민지배는 대륙 전체를 지옥으로 만들었다. 회복하려면 파괴당한 시간 이상이 필요해 보인다. 팔레스타인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죽으나 사나 지옥인 것이 마찬가지라는 그들의 울부짖음이 가슴 아프다. 가만히 있으면 노예처럼 짓밟고, 저항하면 벌레처럼 짓밟는다.

 

"파농은 폭력은 사람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유일한 희망이라고 역설 (중략) 파농의 폭력론은 그의 머리에서 나온 게 아니라 그의 가슴에서 나온 것 (중략) 나는 흑인이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중략) 문제는 사람의 해방" (418~20쪽)

 

노예무역. 400년 동안 자행된 끔찍한 폭력과 야만행위.

 

"포르투갈이 처음으로 아프리카 흑인을 상품으로 삼은 건 1444년이었고 (중략) 1501년에 처음으로 아프리카 노예가 서인도제도에 도착했다. (중략) 1619년 남아메리카와 카리브해에 있는 포르투갈 스페인 식민지의 광산이나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할 흑인 노예 100만명이 아프리카에서 끌려왔는데, 1/3 가량이 항해 도중 사망했다. (중략 / 그런 희생을 치렀는데도) 미국연방대법원이 '다른 인종 간의 결혼을 금지한 모든 법조항은 위헌이다'라는 판결을 내린 건 1967년이다." (423쪽)

 

[ 제9장 ] 정체성의 문화정치학

 

1. 연합왕국 united kingdom

 

연방국가라는 국가체제가 잘 유지되는 것은 우리에게 좋은 참고가 될 수 있다. 분리되면 전쟁이 날 확률이 높고, 통합되어 있으면 분쟁이 전쟁으로까지 연결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어차피 세계는 하나다. 기후위기를 포함한 핵전쟁과 같은 중대한 문제들은 세계가 공동으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영국은 잉글랜드를 중심을 1536년에 웨일스를, 1707년에 스코틀랜드를, 그리고 1801년에 북아일랜드를 각각 흡수 (중략 / britain은) 잉글랜드-스코틀랜드-아일랜드를 통치한 올리버 크롬웰이 세지역을 뭉뚱그려 부른 이름이다. (중략) 잉글랜드 고등학생 1,500명에게 어디에 살고 있는지를 물은 결과 88퍼센트가 잉글랜드라고 대답 (중략) 런던 인구 730만명 중 1/3이 외국태생" (475~7쪽)

 

2. 터키와 튀지지의 세속주의

 

세속주의에 대해 고려 성종때 최승로가 시무 28조를 건의하면서 명쾌하게 결론을 내린다. 불교는 수신의 근본이고, 유학은 치국의 근본이다. 그래도 터키 공공기관에서 히잡을 쓴 여성들을 해고한 것은 심한 조치이고, 마찬가지로 수녀복이라는 차도르를 작업복이라고 주장하며 히잡과는 달리 유연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과하다.

 

"(독일) 연방 행정재판소는 공립학교에서 이슬람 교사에 대해 히잡 착요을 금지한 주법은 가톨릭 수녀에게도 적용돼야 한다고 판결했다. (중략 /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수녀들이 쓰는 베일은 종교를 상징하는 의복이 아니라 군복이나 경찰복처럼 유니폼으로 봐야 한다." (533쪽)

 

[ 10장 ] 주체성의 문화정치학

 

1. 언어 제국주의

 

말은 있지만 글이 필요하지 않았던 아프리카에서 너무 빨리 1444년부터 유럽에 의해 침략을 당했다는 것이 이런 비극의 시작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흐르면, 아프리카의 글이 나올 것이다. 영어가 되든 아프리카의 글이 되든. 우리가 한글을 가진 것도 1446년의 일이다. 말이 살아있으면, 적당한 글은 만들어질 수 있다. 그전까지는 영어를 이용해서 아프리카를 표현하고 계몽해 나가면 될 것이다.

 

"네그리튀드 negritude ; negro + attitude는 1930년부터 1950년 사이에 프랑스어권 아프리카와 카리브 지역에서 활동하는 흑인 작가들이 추진한 정치문화운동을 의미한다. (중략) 집단과 부족의 단결, 예술과 종교에서의 리듬과 상징, 평화로움과 자연과의 친화라는 아프리카의 가치를 내세웠다. (중략) 아직까지도 다수 아프리카 국가들이 상호 의사소통 수단으로 식민주의자들의 언어를 사용한다. 식민주의자들의 언어를 폐기하는 것은 실제로 불가능하다." (547~550쪽)

 

언어가 사라지는 것의 심각성을 느낀 적이 있던가. 없다. 한가지. 우리 조상들이 한자로 써놓은 것을 읽고 이해하지 못한다는 아쉬움은 크다. 무수한 과거의 저작들을 통해 깨달음의 기쁨을 얻는데, 우리 조상들로부터 얻는 것이 너무 적다. 우리 조상들이 쓰던 한자는 이미 사라지고 있고, 한자어도 의미전달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 우리나라의 말과 글로 풍요로운 문화를 즐기 수 있다는 것이 축복이다. 

 

"세계 인구가 500만~1천만명이었던 1만년전에는 사용 언어가 12,000개였지만, 현재 살아남은 언어는 약 6,800개에 불과하다. 세계 228개국에서 통용되는 언어 6,800개 중 절반 이상이 2050년 안에 사라질 것이라는 예견이 나오고 있는가 하면, 80~90퍼센트 정도가 100년 안에 사라질 것이라는 추정도 있다." (555~6쪽)

 

2. 학문 주체성과 사대주의

 

좋은 스승이 있다면 좋겠다. 가끔 생각나는 선생님들이 있는 것만으로 만족한다.

 

"그들은 진짜 스승이 없거나 있더라도 외국에 있으며, 이곳에 있는 스승은 다른 용도로 필요하다. 이들은 설날에 스승에게 세배를 드리러 가고 충성을 수시로 확인해가면서 안정된 연줄 결속망에 들어간다. 이땅의 스승은 학문 영감을 주는 존재라기보다 기득권층에 속하기 위해 필요한 연줄로서의 의미가 더 큰 것이다." (585쪽)

 

다시 김대중으로 돌아가야 하나? 깨시민들이 21세기를 새롭게 만들고 있는데, 부엉이는 아직 날고 있지 않은가? 사대주의라는 괴로운 단어는 사용하지 말고, 평화를 지향하면 된다. 중국이나 미국이 우리를 이용해 얻으려 하는 것은, 각자의 평화다. 그것을 이용해서 우리도 평화를 얻어야 한다. 말로는 쉬운데, 세부 내용으로 들어가서는 쉽지 않다. 전시작전권은 어떻게 할 것인가? 자주국가로서 당연히 우리가 가져와야 한다. 미군은? 동북아의 균형을 위해 일정 규모로 주둔시키는 것이 나쁘지 않다. 북한은? 경제를 무기로 남북화해와 평화를 구축해야 한다. 일본은? 반성이 없는 정권들이 계속되고 있는 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미 경제관계가 얽혀 있으므로 평화가 쉽게 깨지지는 않을 것이고, 아베를 통해서 한 번 혼이 났기 때문에 한국을 만만하게 건드리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 민족은 비록 겉으로는 사대를 했지만, 내부에서는 특히 국민 대중은 자기의 주체성을 튼튼히 유지했습니다. 중국 문명의 월등한 영향 속에서도 문화 전반의 뚜렷한 자기 특색을 보존해왔습니다. 의복, 음식, 언어, 주거 등 전체 생활이 분명한 특색을 간직했으며, 경제면에서는 저 유명한 화교의 침투와 지배를 완전히 봉쇄했습니다." (김대중, 596쪽)

 

[ 제11장 ] 국가, 국경, 세계화

 

1. 디즈니와 맥도널드

 

디즈니의 해악들 중에서, 인공체험을 실제와 혼동하는 '디즈니랜드 효과'는 마약같은 유혹이다. 활자의 시대에서 동영상의 시대로 완전히 접어든 현재, 과연 디즈니라는 괴물 제국을 견제하거나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우리 아이들이 가질 수 있을까? 숲속에서 꽃피는 모습을 보여달라는 어린 소녀의 소망을, 어떻게 이루어주어야 할까?

 

"월트 디즈니는 39세때인 1940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미국 연방수사국에 할리우드 동향을 정기보고하는 비밀첩보원이었다. 그는 스튜디오의 노동자들이 산별노동조합에 가입하려고 하자, 그들을 해고하면서 공산주의자, 공산당 동조자들이라고 비난하는 등 노조 파괴에도 앞장섰다.

 

(중략) 디즈니랜드의 역사 모형들은 과거를 미화하고 낭만화하는 반면, 관람객들을 기분 나쁘게 하고 혐오스럽게 만든다는 이유로 역사의 좋지않은 부분은 완전히 제거해 역사를 왜곡

 

(중략) 저작권과 관련해 악명이 높다. 창작자들의 권리를 전혀 인정하지 않고 모두 디즈니로 귀속시킨다. (중략) '피터팬'은 제임스 배리경의 작품이 아니라 디즈니 자신의 피터팬이 되었고, '피노키오' 역시 콜로디의 작품이 아니라 바로 디즈니의 피노키오였다. (중략) 1980년대 후반에 디즈니는 저작권 침해소송을 연평균 500건 이상이나 제기했다. 이 소송은 디즈니에 대한 비판 비평 풍자를 원천봉쇄하는 무기로 활용됐다." (627~9쪽)

 

"맥도널드의 보편성은 맥잡Mcjob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용어를 낳게 만들었다. 맥잡은 실패한 사람들이 하던 일을 대체하는 새로운 형태의 일을 의미하게 됐다. 소매 요식 업종에서도 맥도널드의 임금은 하위 25%에 해당하고, 업종평균에 견줘 20~50% 높은 이직율을 보였다. 또 경영자쪽은 계속 취업규칙을 위반하고, 종업원들이 '극도의 흥분' 상태로 있게 하며, 초과수당 지불없이 연장근무를 요구하고 노조활동을 하면 해고하며, 최신 전술로 노조설립에 대응하는 걸로 악명을 얻었다." (640쪽)

 

왜 디즈니와 맥을 합쳐 놓았나. 강준만의 대답.

 

"디즈니식 관리법도 비판의 대상이다. 통제, 효율성, 예측 능력, 단일화라는 원칙으로 사람을 관리하는 것 (중략) 이는 맥도널드의 특징이기도 한데, 흥미로운 사실은 디즈니와 맥도널드 황제 레이 크록이 모두 일리노이주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알고 지냈으며, 제1차세계대전 당시에는 야전 의무대에서 함께 복무한 적도 있을 뿐만아니라 나중에 사업을 할때도 내내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는 사실이다. 둘다 고등학교 중퇴자이며, 후에 자기 회사에 '대학'이라는 이름을 붙인 직원교육기관을  세웠다는 것도 똑같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마케팅에 주력" (627~8쪽)

 

2. 월마트와 나이키로 대표되는 천민자본주의

 

사람이 생각하는 천국의 공통환경은 풍요롭게 노는 것이다. 부유하게 노는 것을, 삶의 목표로 하지 않는 것은, 본성에 대한 배반이다. 그것이 충족되어야 공동체에 대한 헌신, 자비, 공감, 배려 등등의 것들이 가능하다. 다만, 부유하게 노는 수준이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고, 큰 차이가 날 수도 있다.

 

"미국 땅으로 몰려든 이민자들이 못내 부러워한 것은, 교실과 공식석상에서 찬양하던 시민참여의 이상이 아니라 탐나는 물건들이 잔뜩 쌓여있는 궁전처럼 으리으리한 백화점에 가서 원하는 물건을 마음껏 사는 것이었다. 참여는 정치영역의 고매한 횃대에서 굴러떨어져 상업영역에서 소비자로서 마음껏 선택할 수 있는 기회로 격하됐다." (647쪽)

 

모든 상품을 한자리에서 구매할 수 있고, 접근성이 좋은 도시 외곽의 넓은 매장에서 쾌적하게 구매행위를 즐길 수 있게 하는 등 월마트의 여러 혁신을 가리는 끔찍한 행동들은, 삼성을 떠올리게 한다.

 

"월마트의 소비자 지상주의 (중략) 이면에 희생당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중략) 영세납품업체들이 죽어난다. 착취한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사원 인건비도 박하다. 노조는 절대금기다. (중략 / 사장 리 스콧) 높은 노조 가입율과 임금수준을 유지하는 미국 자동차업체들의 낮은 경쟁력을 보라. 월마트가 미국경제 전체를 책임질 수는 없다." (647~8쪽)

 

조던과 우즈가 더 잘 해야 했다. 그들의 실력에 비해 그들의 의식은 너무 빈곤했고, 너무 큰 짐을 져야했다.

 

"1998년 나이키 최고경영자인 필 나이트는 '나이키 제품은 노예 임금, 강제초과노동 그리고 노동착취 등의 동의어가 됐다.'고 시인했다. (중략) 1990년대에 10대들은 나이키 에어조던 운동화나 운동복을 얻으려 총을 쏘았고 때로는 살인을 저질렀다. (중략) 마이클 조던이 받는 광고 협찬료 2천만 달러 (중략 / 타이거 우즈) 나이키 로고를 착용하는 대가로 향후 5년간 1억 달러라는 거액을" (659~60쪽)

 

3. 기독교 근본주의와 이슬람 근본주의, 그리고 제국주의 패권

 

제국에 의한 평화라도 평화로울 수 있다면 좋지 않겠는가? 전쟁이 사라지는 것까지는 참 좋다. 그런데, 계급이 나뉘고, 계급에 따라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자유와 권리가 달라져버린다. 선을 지키는 사람들도 무시하며 탄압하고, 저항하는 사람들은 악마나 벌레로 만들이 잔혹하게 살해한다. 그래서 제국에 의한 평화는 꿈이다. 미국이든 패권을 지향하는 정치 단체들은, 지독한 우월의식에 사로잡혀있다. 스스로 존중받고 싶은 것처럼 다른 사람을 존중하지 못하니, 제국에 의한 평화는 불가능하다.

 

"타임"의 리처드 번스타인 전 베이징지국 등 언론인 두 명은 (중략) 중국의 최종목적은 아시아에서 미국을 몰아내고 이 지역 국가들이 중국의 동의없이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강력한 국가를 만드는 것 (이라며 중국의 패권주의를 경고했다. / 중략) 헌팅턴은 '황화론' 정서에 그럴듯한 - 문명의 충돌이라는 이론을  제공 (했다. / 중략) 미국은 중국을 포위하는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데, 이는 헌팅턴의 이론이 현실이 되었음을 말해주는 것" (696쪽)

 

예수님은 젊은 시절에 돌아가셨으니, 부활할 때 팽팽한 젊음으로 부활하셨다. 나는 이미 머리가 희고 머리가 빠져서 보기 흉하고, 영어도 못해서 세계인들과 소통할 수도 없는데, 이런 모습으로 부활해서 무슨 기쁨이 있겠나. 부활하지 말고 차라리 윤회하고 싶다. 육체의 부활이라니, 엉터리다. 성경이 잘못이 없다고 믿어서 그런지 일부 몰지각한 신도들의 행동은 끔찍한 불륜과 학살의 기록을 재현하는 듯하다.

 

"근본주의의 원조는 미국의 기독교 근본주의로 여겨지고 있다. 근본주의는 1920년 미국의 전투복음주의자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고안됐다. (중략) 교회안에 침투한 자유주의 신학파나 세속 인문주의와 관련된 문화의 가치 또는 도덕의 변화에 싸움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반대하는 복음주의자로 정의한다. (중략) 미국의 공립학교에서 이뤄지는 진화론 교육에 격렬하게 반대했다. 여기서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근본주의의 단순함이 먹히는 역설이 발생했다. (중략) 성경의 무오류, (중략) 예수의 육체 부활과 재림 (중략) 1980년대부터 네오콘(신보수주의)과 동맹 관계를 맺고 이스라엘을 무조건 지지하는 반면, 팔레스타인과는 대화조차 거부하는 노선을 취해왔다." (698~9쪽)

 

선택받은 소수가 되고 싶은 열망이라. 세상 모든 사람이 부자가 될 수 없으니, 소수의 부자로 살고 싶다는 열망은 이해가 간다. 그렇다고 핵전쟁을 통해 자신들이 살아남는 소수가 될 것이라는 믿음은, 너무 어리석지 않은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모두 근본주의자들이라고 믿는 모양이다.

 

"머지않은 장래에 엄청난 재난이 닥쳐서 죄인인 대다수 인간은 죽어 멸망하고 자신들의 종교에 헌신하는 극소수는 살아남아 영생을 누리는 것 (중략) 그처럼 다수의 멸망과 소수의 영생으로 통하는 역사의 대사건으로는 흔히 지구를 뒤흔드는 불기둥이 거론되며, 그것은 곧 핵전쟁의 발발로 연결된다." (700쪽)

 

강준만은 도덕 근본주의도 광범위하게 존재한다며,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당위를 추구하는 속성과 복잡한 것에서 벗어나려는 의지 때문에 근본주의를 지향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마구잡이로 떠오르는 단순한 편견을 늘 살펴서 도그마와 광신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시공간이 압축되었다는 말은, 변화가 너무 빨라서 사람들이 변화에 적응할 시간이 부족해진다는 의미다. 빨리 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세월과 인식의 변화에 천천히 적응해야 하는 사람들이 많다. 변화를 빨리 일으키는 사람들로부터 오는 압박감이 두려움과 거부감을 일으키고, 변화이전의 과거로, 근본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런 사람들이 근본주의에 매달린다.

 

변화가 빠른 사람들도 근본주의에 빠질 수 있다. 시대를 읽지 못하는 낡은 사고방식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자신의 변화에 시비를 걸고 있는 것에 대해, 불안과 경멸이 생긴다. 자신들의 변화를 근본이라 생각하고 근본주의에 매달린다. 결국 변화의 속도가 다른 사람들이 공존하는, 시공간 압축의 시대에는 여러 근본주의가 충돌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해결방법은, 상대에게 숨쉴 공간을 넉넉히 만들어줘야 한다.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해서 다양한 시도를 해야 한다. 미국의 진화론 수업의 경우, 세마science의 근거가 분명한 내용들을 중심으로 연간 수업시간을 조금씩 시간을 늘려나가면 된다. 창조론 만큼이나 어느날 갑자기 빅뱅이 일어나서 무에서 유가 만들어졌다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시공간 압축은 자신마의 전통과 정체성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는 미국에서건 아랍세계에서건 (중략) 자신들의 전통과 정체성에 가해지는 압박과 그 압박의 주체에 대한 저항과 투쟁, 이게 바로 근본주의의 탄생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중략) 공동의 역사 그리고 일상의 삶에서 여전히 굳건한 가치들로 되돌아가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근본주의는 대중을 선동하고 정당성을 마련하는데 특히 적합하며, 그럼으로써 또한 적절한 통치기술이다. (중략) 모호함, 무질서 그리고 혼돈에 대한 깊은 두려움이 근본주의 신념체계를 관통한다." (704쪽)

 

4. 유교와 아시아의 가치

 

과도하면 문제지만 이정도의 전통유지라면 나쁘지 않다. 가족공동체의 해체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는 지금, 깊은 뿌리에서부터 나오는 공동체 의식을 강조함으로써, 소외와 고독을 이겨낼 수 있는 바탕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민주주의가 허용되지 않는 중국에서, 유교의 백가쟁명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공맹의 이야기의 힘이 커지길 기대한다.

 

"공자 탄신 2,555주년을 맞이한 2005년 9월 28일 베이징에 있는 한 호텔에선 부부 180쌍이 공자의 초상 앞에서 혼인의 순결성을 영원히 유지하겠다고 서약했다. (중략) 사회주의 건국 이래 줄곧 봉건잔재의 대표 상징으로 매도했던 공자에 대한 완전한 복권 (중략) 경제성장과 함께 서양의 성개방 풍조가 밀어닥치면서 자칫 중국의 전통은 사라질 위기에 놓이자 대책을 마련하는 차원에서 유교문화의 복원이 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707쪽)

 

제사와 봉분이 사라지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이것들을 유지하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다. 제사는 성묘로 대체되어야 하고, 봉분은 화장후 산골하는 수목장으로 대체해야 한다. 그리고, 여민동락을 근간으로 하는 위민사상과 인의예지를 뿌리로 하는 평화와 공존의 정치가 펼쳐져야 한다. 마치 무릉도원처럼 가지 못할 나라의 이야기인데, 완전히 도달할 필요도 없다. 그리로 향해 천천히 걸어가자.

 

"(함재봉은) 유교의 정치사상이 추구하는 것은 위민이다. 그리고 유교의 위민사상 또는 민본주의는 진보사상의 민중주의와 매우 흡사한 요소를 갖고 있다. (중략) 유교민주주의는 인의예지를 추구하는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중략 / 미네르바의 부엉이처럼) 유교의 덕목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된 바로 그때가 돼서야 유교의 가치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711~3쪽)

 

공맹사상을 읽다보면 자유와 민주주의가 넘쳐 흐른다. 서로 토론하고 이의를 제기하며 각자의 길을 간다. 민주주의다. 황제에서부터 말단 관리까지 시서화에 능하고 법을 안다. 부패한 권력계층에 의해 능력있는 사람들의 토론이 제한될 때 아시아는 침체했고, 민중들에 의해 전복되었다. 아시아의 가치는, 개발독재에 봉사하는 가치가 아니라, 여부동락(부와 함께하는 즐거움을 시민과 더불어 즐기는 문화가 정착되면서 자본주의 성장을 이끌어갈 때 발현되는 가치다. 리콴유나 마하티르, 박정희나 시진핑이 잘못 가져다 쓰고 있다. 개발독재는 자유 민주주의가 사라진 독재체제일 뿐이다. 개발독재시대에도 자본주의 성장의 씨를 뿌린 아시아의 가치는, 정경유착이 아니라, 시민들이 피땀흘려 모은 자본 - 먹을 것을 줄이고 잠을 줄여가며 문맹에서 벗어나고야 말겠다는 지식 교육에 대한 열정이었다.

 

"(리콴유는) 대중보다 앞서가는 사고와 식견을 갖춘 엘리트를 중심으로 깨끗하고 능률좋은 현대 국가를 건설(중략) (유교문화에 바탕을 둔 경제발전 (중략) 엘리트주의에 가부장제가 결합된 것이다. (중략 / 1994년 김대중은) 아시아에도 민주주의 철학과 전통이 풍부한다. 서구 민주주의보다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로 발전할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있다. (중략) 새로운 세계경제 질서아래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유가 보장되고 정보가 물흐르듯 흐를 수 있어야 하며, 창의력이 억제됨이 없이 발휘돼야 한다. 이같은 것들은 민주사회에서만 가능한 것" (916~7쪽)

 

스티븐 핑커는, 힌두교도 - 유교도 - 불교도들의 나라가 발전하는 것을 보면, 프로테스탄트가 자본주의 발전에 적합한 윤리가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었다고 주장한다. 다만 시간이 다소 늦었을 뿐이고, 이들 나라에서 자본주의가 융성함으로써 세계는 평화를 향해, 적어도 더 많은 것을 착취하기 위한 약탈전쟁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성실한 자세로 깨달음을 얻기 위해 공부하는 자세라면, 동양 사람들이 전세계 어느 사람들과 비교해도 떨어질 수가 없다. 그런 바탕이 있으니, 늦게 들어온 자본주의와 산업혁명을, 엄청난 착취와 폭압을 견디면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다.

 

"막스 베버는 유교전통에서는 이익단체간의 경쟁과 마찰이 없어 자본주의 발전에 필요한 합리 전쟁의 출현을 막았다고 주장 (중략) 가족중심주의, 사회기강의 유지, 건전한 노동정신 등은 중국의 전통사사인 유교의 영향권에 속하는 태평양 연안국들의 장점 (중략) 개신교의 합리주의가 세계에 대한 지배라면, 유교의 합리주의는 세계에 대한 적응이었다. (중략 / 유교자본주의의 독특한 장점은) 전통의 유교 도덕율이 전체 사회에서 힘을 갖고 있는 한국에서처럼 잘 적용된 예도 드물 것" (725~32쪽)

 

5. 유대인과 홀로코스트

 

유대인은, 탄압받는 천사에서 살육을 서슴지 않는 악마로 전환했다. 스스로의 힘과 의지로. 유대인을 탄압한 것은, 수많은 백인들이었다. 유대인을 친구로 받아들여 함께 살았던 아랍인들을, 적으로 돌리고 살육했고 살육하고 있는 것은 유대인이다. 말이 필요없는 타락천사다.

 

주류가 되려고 했던 유대인은 미국에서 드디어 WASP(백인 앵글로색슨족 개신교도)가 되는데 성공했다. 그래서 더욱 성공을 거두는 바람에, 미국뿐만아니라 전세계 핍박받는 시민들의 공공의 적이 되어버렸다. 평화로운 세계가 유대인으로서는 매우 바람직한데, 이슬라엘을 주요변수로 해서 매우 위험한 국면으로 나아가고 있다. 유대민족주의의 비행기가 아무리 유대인으로 가득찬다 한들, 팔레스타인과 수많은 탄압받는 사람들의 가슴에 새긴 상처를 치유하지는 못한다. 위기를 벗어나려면 평화로워야 하고, 평화로우려면 평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3미터짜리 전기철책이 둘러쌓인 콘크리트 장벽은 언제든 허물어질 수 있다는 것이, 이번에 증명되었고, 중국의 만리장성에서도 이미 증명되었다.

 

"(스필버그는) 나는 항상 주류 미국인에 속하기 위해 일해왔다. (중략) 유대계 부모들이 성을 바꾸는 경향을 가장 앞장서 실천한 사람들이 배우들이었다. (커크 더글라스, 딘 마틴 등 / 중략) 유대인이 미국에서 행사하는 막강한 영향력 때문에 여러 제3세계 국가에선 '유대인 음모론'이 인기 상품이다." (738~40쪽)

 

쉰들러리스트 이후로 홀로코스트에 대한 과잉추모가 되고 있다는 생각을 해왔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이스라엘 유대인들이 저지르는 악마같은 행위들은 이미 70년째 계속되고 있다. 반성하지 않는다. 독일과 유럽과 미국은 유대인들에게 끝없이 사죄하지만, 아프리카와 아시아 인도에서 벌인 400년간의 약탈은 제대로 반성하지 않는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추모가 중요하다면 좋다, 600만명의 희생에 대해 사죄와 반성이 필요하니까. 그렇다면 한국과 중국에서 벌어진 학살과 약탈에 대해, 아프리카와 아시아 아메리카에서 벌어진 잔혹행위에 대해서도 일본과 미국과 유럽의 끝없는 사죄와 반성이 있어야 한다.

 

"구약성서에서 희생물을 통째로 태워버리는 특별한 제사를 뜻할 때 쓰이는 홀로코스트 Halocaust란 말은 한동안 주로 핵전쟁으로 인류가 멸망할 가능성을 가리키는 단여나 대량학살의 일반명칭으로 사용됐지만, 오늘날엔 유대인 학살만을 가리킨다. (중략) 홀로코스트는 신성하다. 미국의 대형 홀로코스트 박물관이 일곱군데 있으며 미국의 홀로코스트 단체는 100여개에 이른다. (중략) 홀로코스트를 다른 고통과 비교하는 것은 유대인 역사에 대한 배신행위라고 주장" (744쪽) 

 

"핀켈슈타인이 2000년 6월에 출간한 '홀로코스트 산업 : 홀로코스트를 초대형 돈벌이로 만든 자들은 누구인가?'는 홀로코스의 그런 신성화에 정면도전하고 나섰다. 홀로코스트 생존자부모를 둔 펜켈슈탄인은 이책 때문에 유대인 사회로부터 엄청난 박해를 받았는데, 그만큼 내용이 충격이다. 핀켈슈타인은 홀로코스트를 이용해 돈과 '윤리라는 자본'을 얻고 있는, 유대인 엘리트를 중심으로 한 여러단체와 기관들을 고발한다. (중략) 홀로코스트의 불합리성은 자신의 유일성을 고집하는 것이다. (중략) 이스라엘 시온주의 지도자들은 팔레스타인에 가서 이스라엘 건국에 참여하려고 하지않는 비민족주의자들이나 팔레스타인에 와봐야 도움이 안되는 노년층 등을 전혀 배려하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그들이 학상당하는 것을 방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이다. (중략) 유대인 구출에 적극 반대하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중략) 강제수용소에 갇힌 홀로코스트 생존자는 대략 10만명인데도 이젠 나치의 박해를 교묘히 피한 사람들까지 홀로코스트 생존자로 불리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살아있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이 거의 백만명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핀켈슈타인은 그런 부풀리기가 600억달러 규모에 이르는 독일의 배상금을 겨냥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744~8쪽)

 

[ 제13장 ] 언론과 정치

 

1. 거대언론

 

민주주의 체제 아래서는 정권의 변동이 일어난다. 그때마다 공영방송이 휘둘리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방송의 공공성이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미국에서는 이미 공영방송이 사라지고 기업방송체계가 잡혀있다. 이들이 공익 또는 기업의 사익에 얼만큼 기여했는지에 대한 평가결과를 보고 싶다.

 

"1996년 2월 미국의 새 통신법 Telecommunication Act (중략)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소유규제를 완화하고 신문과 방송의 교차소유를 부분허용했으며, 케이블 티브이와 방송의 겸영을 허용하는 등 미디어 업계의 합병바람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중략) 통신인프라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공익이 아니라 시장이 결정하도록 허락함으로써 기업의 승리를 확인시켜주었다. (중략) 부시 행정부때 5개 미디어 복합기업으로 통합됐다. 이들이 일간신문 1,500여개와 잡지 6,000개, 라디오방송국 1만개, 텔레비전과 케이블 방송사 2,700여개, 출판사 2,600여개 등 미국의 주류 미디어들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756~60쪽)

 

엘리트들에 의하지 않고는 국가나 기업이 운영될 수 없다. 부패하지 않은 엘리트들이 많은 기업이나 나라가 번영한다. 기업이나 정부, 언론에서 엘리트를 빼버릴 수는 없다. 무능한 사람들에게 공동체를 맡길 수는 없다. 부패와 거짓, 반인륜 행위를 조장하는 것을 시민과 소비자의 힘으로 막아내면 된다.

 

"놈 촘스키는 미국은 세계에서 여론조작산업이 최고로 발달한 나라 (중략) 다른 회사들처럼 그들도 생산품을 시장에 내다판다. 그 시장이라는 것은 광고주, 즉 또다른 사업체들이다. (중략) 기업과 정부, 언론의 고위직은 같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서로 돌아가면서 맡고 있는 실정이다." (762쪽)

 

시대정신을 발굴하여 시민들의 마음을 모아내는 것이 포퓰리즘이라면, 그것은 유용하다. 군중들의 입맛에 맞춰 교언영색하는 정치가들은, 획득한 권력으로 자신의 사익을 추구한다. 포퓰리즘과 포퓰러리즘을 구분해서 생각해야 할 이유이다.

 

"리더들은 너무 많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느라 이 목소리의 노예가 돼가고 있다. (중략) 포퓰리즘이 대중 영합주의라면 표률러리즘popularism은 트위터 페이스북 등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대중의 입맛에 맞춰 연예인처럼 그때그때의 인기를 좇는다는 의미다. (중략) 요즘 정치인들은 블로그를 검색하고 트위터 반응을 기록하면서 대중을 이끌고 가야할 곳이 아니라 대중이 지금 모여있는 곳에 집중하고 있다. 리더십이 가장 필요한 시대임에도 '팔로우'하는 사람만 있을뿐 이끄는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 (771쪽)

 

[ 제14장 ] 대중문화

 

1. 고급문화와 대중문화

 

대중문화에 대한 저평가는, 오류라고 한다. 읽어보니 그럴 듯하다. 한국 노래에 대한 세계의 열광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저급한 대중문화의 확산이라고 비판해서는 안된다는 말로 들린다.

 

"비관주의의 오류가 발생한다 (중략) 과거의 문화 업적은 계속 쌓이는 반면, 현재는 언제나 문화 성과물이 미미한 역사의 한 단면에 불과(하다 / 중략) 현존하는 몇몇 작가를 과거의 뛰어난 선배들 모두와 비교하는 것만큼 경솔하고 부당한 일 (은 없다 / 중략 / 니체는) 역사의 기념비라는 서술은, 현대의 힘있는 자와 위대한 자에 대한 증오를, 과거에 대한 어낌없는 찬미로 가장하는 위장술에 불과하다. (중략 / 접근하기 너무 쉬운 양의 문제도 있다) 텔레비전이 수요일에만 방송된다면, 그건 기가 막히게 좋을 것이다." (812~4쪽)

 

자유로운 예술 행위에서 빛나는 독창성과 예술성이 드러나고, 세계의 대중문화로 뻗어나갈 수 있다. 문화예술지원이라는 명목으로, 돈을 매개로 해서 예술의 주도권을 가지려는 정책은, 실패하고 만다.

 

"프랑스 문화부는 연간 예산으로 30억 달러를 쓰며 고용한 관리도 12,000명에 이른다. 그런데도 프랑스는 세계문화를 주도하는 위치를 잃어버렸고, 미국의 대중문화를 수용하는데 어느 나라 못지않게 열심이다. (중략) 문화를 보존하는데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세금부담 이상의 직접 손실을 자아낸다. 국가의 지원은 예술에 관료주의 성격을 깃들게 하고, 그 역동성을 억누른다. 정부는 손이 큰 고객의 역할을 할 때 시장에 좋은 영향을 끼친다." (815쪽)

 

2. 할리우드 방식

 

지식이 자본주의에서 갖는 힘이 대단한 모양이다. 알면 힘이 생기고, 모르면 이용당한다. 무지에서 깨어나 더 많은 것을 알아감으로써 자아를 지키고 공동체를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많이 벌어서 많이 쓰고 잘 쓰면 좋은 일이다. 잘 쓰는 일이 중요하고, 개인마다 자신의 철학에 따라 사용하면 된다.

 

"잠비아는 연간 22억달러를 벌어서 2,500만 국민이 나누어쓰는 나라고, 골드만삭스는 26억달러를 벌어서 161명이 나누는 투자은행 (중략) 분석가들이 사이버공간에서 일하면서 그돈을 정정당당하게 벌었다 (중략) 문제는 할리우드식 승자독식 이념의 상례화와 그것의 전사회로의 확신일 것이다. 지식을 인간의 내면세계와 관련된 것으로 국한해, '지식의 신비화'를 시도했던 지식 엘리트층의 지식독점에 맞서, 지식의 실용성과 현실적용에 초점을 맞춘, 지식혁명은 평가가 좋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지식혁명이 도박에서의 행운까지도 지식의 범주에 포함시킴으로써 지식의 목적을 지식 그 자체에만 국한한 소크라테스 시절보다 훨씬 더 심한 '지식신비화'를 범하고 있다는 비판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가." (825~6쪽)

 

2. 작가주의와 볼리우드

 

영화의 독특한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 작가주의 감독이다. 작가주의 감독의 대표가 김기덕이라고 한다. 헐. 야만스러운 감독 아닌가. 내 평가는 박하지만 그의 영화를 여러편 궁금해서 볼수밖에 없었다. 지루한 프랑스 영화보다는 스필버그의 재미있는 영화가 더 좋기는 하다. 작가주의는 쉽지 않은 세계다. 그 중간에 봉준호나 이창동 감독의 영화가 놓여 있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즐거움과 고통을 느끼게 한다.

 

"프랑스인은 영화감독을 작가로 보는 관점을 발명했다. 영화감독은 자기가 본 세상을 영화에 옮겨놓기도 하지만, 영화에 대한 자기의 생각을 세상에 전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중략 / 시드니 폴락은) 항상 내가 유럽, 특히 프랑스에서 놀라는 것은 사람들이 내 작품들을 심각하게 분석하고, 또 있지도 않은 깊은 의도를 찾아내는 것이다. (중략 / 스필버그는) '레이더스'는 팝콘이다. 팝콘은 아무리 먹어도 배가 부르지않는다. 게다가 소화도 잘되고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는다." (831쪽)

 

영화가 현실을 잊게 한다는 분석에 동의하기가 매우 어렵다. 현실을 위로하는 것까지는 가능하다. 영화는 오히려 선동이지 않을까. 영화에서 본 사랑의 아름다움이나 해결해야 할 과제를 가슴에 간직하고 있다가, 행동이 필요할 때 드디어 표출해 내도록, 감정을 진하게 응축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헤어날 길이 없는 계급과 가난의 굴레와 고된 현실. 인도인들은 영화를 보면서 자신의 고통을 잊고 영화에 나온 주인공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보며 대리만족을 얻는다. (중략) 만일 인도에 영화가 없었다면, 하층계급이 폭동을 일으켰어도 수백번은 일으켰을 거라는 한 영화감독의 말이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중략) 볼리우드는 체제유지의 수호신인가? (중략) 그렇게봐도 무방할 것같다. 게다가 인도에는 부유세와 상속세가 없어 항상 억만장자들로 넘쳐나며 젊은 의원 대다수가 아버지나 가까운 친척한테서 의석을 이어받은 세습의원이라고 하니 볼리우드가 제공하는 위로마저 없다면, 그런 현실을 어찌 감내해낼 수 있으랴." (849쪽)

 

3. 키치의 제국, 한국

 

키치는 싸구려지만 편안한 예술품이다. 고급은 사치스럽다. 사치스러운 소비가, 과잉 부자들의 재산을 재분배하는 효과를 주기 때문에, 나름의 가치가 있는 것처럼, 키치도 시민들의 문화향유의 장벽을 제거해 준다.

 

"1910년대에 이르러 국제용어가 된 독일어 키치kitsch가 (중략) 영어의 sketch에서 유래한 것으로, 뮌헨의 예술가들이 이를 잘못 발음해 멋대로 여행자들, 특히 영국계 미국인들이 기념품으로 사는데 적용해 생긴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중략) 살만한 그림이 없을 경우 싸구려 스케치화를 사들이길 좋아했는데, 이와 관련해 키치가 안목이나 경험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싸구려 예술품을 지칭하게 됐다는 것이다." (867쪽)

 

뭐 이렇게까지 비판해야 하는지. 각자의 능력에 맞게 만들고 즐기은 문화와 경제의 수준이 있다.

 

"에코는 '감동의 사전 조작과 주입'에 주목하면서 '쉽게 소화할 수 있는 예술의 대용품인 키치는 어렵게 이해하려고 애쓰기보다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 미의 가치체계를 즐길 수 있기를 바라는 게으른 청중에게는 좋은 음식이다' 고 말한다." (871쪽)

 

한류의 성공은, 문화의 융합이다. 한류가 키치라면, 전세계가 키치라는 편안하고 값싼 문화를 즐기는 것에 환호하고 있다. 키치의 힘이 대단하다.

 

"한류의 성공은 키치의 제국에 드리운 명암 중 명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수있다. 한류는 문화의 혼성화가 성공한 대표사례라고 하는 점에서 말이다. (중략) 한류는 온전한 한국의 콘텐츠로만 채워진 것은 아니며, 지역과 수용자의 취향에 맞게 글로벌하고 동시에 지역의 향기가 나는, 즉 글로컬한 요소를 배합하고 뒤섞은 이종교배,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짬뽕 혹은 가든 샐러드의 요소를 지니고 있기에 가능한 것." (875쪽)

 

캠프로서 이책의 마지막이 장식된다. 현재도 이런 개념이 쓰이는지 알 수 없지만, 모르고 지나간 문화현상들을 다시 되짚어본다는 생각에서 시간에 쫓기며 읽는다. 촌스러워도 즐거우면 괜찮다. 

 

"키치와 더불어 짝을 맞춰 자주 쓰이는 개념으로 '캠프camp'가 있다. 영어 사전을 찾아보면, '케케묵거나 속된 것을 오히려 멋있게 보기', '기상천외한 것이나 케케묵은 것 또는 속된 것의 좋은 점을 인정하기(살리기), 그런 태도, 행동, 예술표현'이라고 나와있다. (중략) 캠프는 장난기가 넘치고 진지함에 반대한다. 캠프애호가는 통속성의 진가를 인정한다. 캠프의 경험은 고급문화의 감성만이 세련된 것은 아니라는 대발견을 기초로 한다. (중략) 캐프는 지식인들이 그동안 경원시했던 하위문화를 포용하면서 정당성을 찾아가려는 과정" (8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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