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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혹시 모도 먹어버렸니, 서로 걱정이다_180531 취띠예르그

밤 늦게까지 책과 대금을 가지고 놀다가 한 시 넘어서 잠이 들었다.반주에 맞춰 연주하는 것이 어려워서 새로운 도전과제가 되고 있다.  8시가 다 되어 일어나서 아침을 먹었다. 눈이 까끌까끌하다. 부직포 작업이 어제로 끝났기 때문에 오늘 아침은 새로운 운동(일)에 도전할 수 있다. 고추 지지대를 박는다. 무거운 철근과 망치를 이리저리 옮기고 두들겨야 하는 일이다. 두 시간 정도에 끝냈다.


손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오른손과 왼손을 번갈아 써야 한다. 모든 운동처럼 단순한 행동이지만 서서 하는 것이라 허리와 무릎이 아프지 않아 좋았다. 그러나 끝나고 나면 분명히 팔이 무척 아플 것이다. 오랜만에 밭 그늘에 앉아서 셋이서 어머니표 샌드위치를 먹으며 쉬었다. 즐거운 일이다. 라디오에서는 베르디의 오페라가 유령처럼 흘러 나온다. 휘파람새도 멀리서 존재를 과시한다.


11시가 넘어서 지주대 박는 일을 끝내고 논으로 간다. 물만 대고 그냥 올까 하다가 어제 봐 두었던 메벼 논 모 떼우기를 하기로 했다. 논까지 달려 가다가 마을 어머니들을 만났다. 땡볕에 일하러 가느냐며 걱정하신다. 금방 끝내고 점심 먹으러 갈 것이라고 했더니, 조금만 하고 얼른 돌아가란다. 그러시는 어머니들은 아침 내내 텃밭에서 일을 하신 모양이다. 서로 걱정이다.


두 대의 모터를 돌려 논에 물을 대고 모 떼우기를 했다. 바닥이 깊어서 길게 자란 새로 심은 모도 물 속으로 많이 잠긴다. 살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논바닥의 흙을 끌어 모아 높여 가면서 일을 한다. 모는 가볍게 얹듯이 살짝 꽂는 방식으로 일했다. 시간이 금방 흘러서 어느 덧 한 시간이 지났다. 논바닥이 높아서 물 밖으로 드러난 부분에는 작은 풀이 돋기 시작했는데, 물에 잠긴 논바닥에는 풀이 하나도 없다. 열심히 일하는우렁이들아, 혹시 모도 먹어 버린 것 아니니. 어째서 죽은 모들이 이렇게 많냐. 대충 일을 정리하고 씻고 났더니 1시가 다 되어 점심을 먹었다. 잠깐 쉬다가 부천으로 출발한다.

부천에 가려고 했더니 아버지가 푹 쉬고 오란다. 나는 두 개의 직업을 갖고 있다. 음성에서는 농부, 부천에서는 주부다. 음성으로 내려 가려고 인사를 하면 집안일 안 하고 노니 일 잘하고 오라 하고, 부천으로 가려고 하면 아버님이 잘 쉬다 오라 하신다. 그런 측면도 있지만 부천에서는 가사 노동, 음성에서는 육체 노동으로 하루도 쉴 틈이 없다. 특히 5월과 6월은 두 개의 노동에 향악당 공연까지 준비해야 해서 여간 힘드는게 아니다.


땡볕에 헤르메스를 타고 와서 너무 목이 말라 고량주와 복분자 식초와 물을 타서 한 잔 마셨더니 왜 술을 자꾸 마시느냐고 아들이 따진다. 이제 술도 마음대로 먹지 못하는 나이가 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