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벌을 피해서 새벽 일을 하셨다 하는데 정신없이 자고 눈을 떴더니 9시가 다 되었다. 아침 일을 한 시간이라도 할 작정이었으나 무거운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어제 오후에 일을 끝내고 향악당에서 한 시간이 넘도록 공연 연습을 한 것이 주요 원인이었을 것이다. 새벽잠이 없어진 줄 알았더니 전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헤르메스를 타고 음성에 다녀왔다. 대기록을 눈 앞에 두고 있고, 목요일에 달성할 것이 확실하다. 날이 너무 뜨거워 도저히 일을 할 수가 없다. 푹 쉬다가 다섯 시가 넘어서 예초기를 매고 논둑으로 갔다. 또 새로운 작업이다. 매번 똑같은 작업을 하면 피곤하고 괴로운데 이렇게 작업 내용이 달라지면 쓰는 근육도 달라지고 일 하는 재미도 있다.
아니었다. 한 시간 정도 예초기를 돌리고 났더니 오른손 엄지 손가락이 아프다. 작업 자세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 수 없으나 예초기 작업을 하면 언제나 나타나는 증상이다. 2미터 높이의 논둑의 풀을 베기 위해 다리와 허리를 굽혀서 작업을 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해가 다 넘어가는 8시까지 작업을 했으나 전체 논둑의 3분의 1을 했다. 논둑 베는 시간은 총 10시간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약간의 꼼수. 우리 아랫논은 반장네 논인데 제초제를 뿌리면서 우리 논둑 아래 아슬아슬하게 뿌린다. 무농약 무제초제 농사를 지으면서 주변 논에서 제초제를 뿌리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데, 언제부터인가 은근히 환영하게 되었다. 일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주변 논에서 제초제를 뿌리기 전에 내가 먼저 작업을 하게 되면 작업량이 20%는 늘어난다. 작년에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 주변 논 상황을 보니까 아랫논에 제초제가 뿌려져 있어서 그쪽부터 작업을 했다. 좁은 문으로 가야 하지만 넓은 문으로 갔다.
우리 논 사이의 논둑도 작업을 했다. 풀을 깊이 깎지 않는 것이 오히려 풀이 덜 난다고 한다. 믿기 어려운 논리지만 일을 조금이라도 쉽게 하기 위해서 약간 덜 깎았다. 긴 풀이 논으로 쓰러지면서 논가의 모를 덮치기도 한다. 논으로 내려가서 모를 덮은 풀을 걷어내야 하지만 지친 몸은 그냥 가라 한다. 그냥 두었다. 풀이 마르면 모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것이다.
풀을 베고 집으로 돌아왔더니 어머니는 다섯 시간의 일을 마치고 씻고 계신다. 여든 넷의 연세에 아직도 이렇게 긴 시간을 노동하신다. 논가에 앉아 쉬면서 오리농법을 하던 수년 전이 생각이 났다. 2003년부터 두 분은 일흔이 넘은 연세에 오리를 쫓고, 풀을 뽑고, 끝이 보이지 않는 노동을 하셨다. 그래도 언제나 즐거우셨다고 한다. 논둑에 앉아 두 분이 농사짓던 광경을 떠올린다. 끔찍한 모습이다. 나는 삼 년 만에 그런 노동을 거부했다. 자연농법을 주장하는 일본의 농부들을 쉽게 믿어서는 안된다. 재현불가능하다. 그들은 아무 것도 모르는 도시인들에게 농사가 별 것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준다. 그것만이 미덕이다.
이미 귀농한 나에게 농사를 포기하는 것말고는 극한 노동의 대안은 없었다. 올해 처음으로 우렁이 농법의 기본 과정을 이해했다. 제초제를 뿌리지 않고도 우렁이 농법을 해낼 수 있다. 그것은 써레질의 반복이다. 볏짚을 태우지 않는 것이다. 소맥으로 갈증을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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