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이맘 때 논일은 똥구덩이에서 구르는 것과 같다_180530 쓰리다

5시를 전후해서부터 계속 잠이 깬다. 부모님이 움직이시는 소리가 들리기 때문이다.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잠들고는 했는데. 그래도 계속 자다가 열차 예약 때문에 7시에 일어났다. 넷이서 5만원 하는 표는 구할 수가 없어서 9명이 예약하면 20% 할인해 주는 표를 예약했다. 아침을 먹고 8시가 다 되어 논으로 나가는데, 어머니는 벌써 나가셨다.


라디오를 들고 나가서 논둑에 틀어놓고 일했다. 외롭지 않아 좋았다. 먼저 메벼논 모떼우기를  한다. 듬성듬성 뚝뚝 떼어 물에 깊이 잠기지 않도록 했다. 해 놓고 나니 훨씬 보기에 좋았다. 11일에 모내기를 했으니 오늘로 19일째다. 조금 있으면 새끼치기(분얼)를 할텐데, 오늘 옮겨 심은 녀석들은 뿌리를 활착하지 못하여 혼자 크기도 바쁠 것이다.  논바닥에 풀이 없다는 것에 대해 우렁이와 트랙터, 그리고 8일의 나에게 고맙다. 오늘의 나를 편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봄에서 여름까지의 논에서는 똥냄새가 난다. 유박 퇴비를 뿌렸으니 분뇨 냄새가 나는 것이 당연하다. 어떤 글에서 논에서 구수한 밥냄새가 난다고 하여 그런 줄 알았다. 아니다. 9월달이 되어 벼가 패기 시작할 때 비로소 구수한 밥냄새가 난다. 구수한 냄새가 나기 전까지 논에서 일하는 것은 똥구덩이에서 구르는 것과 같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논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 뿌리를 열심히 내려야 하는 모들도 내가 들어오는 것을 환영하지 않는다. 오직 사람의 눈만이 똥냄새 나는 논으로 나를 밀어넣는다. 여기 저기 사람 손이 갈 곳이 있다는 것을 계속 지적한다.


메벼논에서는 똥냄새를 맡을 겨를도 없이 일이 끝났다. 설겅 설겅 해도 일한 표시가 확 난다. 찰벼 논이 문제다. 제일 깊은 곳의 모들은 다섯 평 정도가 전멸했다. 여유 분의 모도 없다. 메벼 모를 옮겨다 심어놓고 가을에 낫으로 베어 분리 추수를 할까 생각해 보았다.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논둑을 거니는데, 유레카. 찰벼논 동쪽 부분에서 밀식된 모들을 발견했다. 제법 잘 자라고 있어서 옮겨 심기도 좋았다. 그래, 힘 좀 쓰자.


밀식되어 있는 논에서 네 개 또는 다섯 개씩 뽑아다가 물에 잠겨 죽어버린 깊은 논에 옮겨 심는다. 처음 두 번은 힘이 있어서인지 괜찮았는데, 세 번째 옮길 때부터 기운이 쪽 빠져 나간다. 아, 귀찮다. 벌써 두 시간이 넘는 시간을 논에서 허리를 굽히고 일했다. 집에 가자고 한다. 고급스러운 눈은 아직 일 끝나려면 멀었다고 하는데, 피곤에 지친 허리와 다리는 내일도 있다고 주장한다.


아래 것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쉬엄쉬엄 달래가며 옮기기를 계속했다. 비료 포대 위에다 모를 듬뿍 떠서 다섯 개씩 옮겨 심었다. 다리가 천근 만근이 될 때 쯤해서는 이미 12시가 넘었다. 그래도 일한 표시가 나기 시작한다. 쉬기도 할 겸 절집 펌프는 메벼논에 물을 대고, 우리 펌프는 찰벼논에 물을 대었다. 그리고 두어 번만 더 하면 되겠다고 아래 것들을 다독이고 있는데, 멀리서 어머님의 외침 소리가 들린다. 분봉났다.


한 번 더 모를 옮겨 심은 다음에 지친 발걸음을 터덕터덕 옮겼다. 집 앞 목련나무에 분봉이 난 벌들이 붙어 있었다. 아버지가 벌복을 입고 기다리고 계셔서 나도 벌복을 입고 벌 상자를 들고 나무 아래에 대기했다. 탁탁. 벌 무리가 벌통으로 떨어지고 수많은 벌들이 날아 오른다. 요란한 소리가 나서 약간 겁이 난다. 그래도 무사히 분봉난 벌들을 잡아 가뒀다. 샤워를 하고 천천히 점심을 먹었다. 몸이 조금씩 가벼워진다. 강릉 숙소의 예약도 마쳤다. 좀 쉬다가 오후에는 부직포를 쳐야겠다.


어머니는 장에 가셨다. 모시고 가야 하는데, 오전 네 시간이 넘는 작업이 무리가 되어 쉬어야 한다. 농사일기도 쓰고 책도 보면서 시간을 보내었다. 허리와 무릎이 회복되는 느낌이다. 4시 반이 되어 밭으로 갔다. 짜투리 이랑까지 포함해서 10이랑이 넘는다. 못하면 내일 하자는 심정으로 하나 하나 해 간다. 2년 째 사용하는 부직포를 이용했더니 터진 곳이 없어서 일이 잘 진척이 된다. 그래도 다 하고 났더니 6시가 넘었고, 해도 거의 다 떨어져 간다. 논으로 간다. 가는 길에 성 선생을 만났다. 해 떨어지는데 무슨 일을 또 하느냐고 한다. 쉬엄쉬엄 한다고 했다.


밀식된 모 중에서 상태 좋은 것으로 12개 떠서 수레에 실었다. 8개를 깊은 곳에 심고, 흑미 논으로 이동해서 4개를 심었다. 물이 찰랑찰랑하다. 다음 주에 와서 20개 정도만 흑미논으로 옮겨 심어도 논의 모양이 나겠다. 우리 논둑으로 드디어 오리가 두 마리가 날아들었다. 얼른 쫓아버렸지만 이제는 움직이는 허수아비의 정체를 눈치챈 모양이다. 위치를 바꿔야 하나. 스무 날은 잘 넘겼다. 앞으로 한 달도 중요하다. 이삭 거름을 뿌릴 때까지 풀이 없어야 최선인데 말이다. 다시 기도하는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서 씼었더니 8시가 넘었다. 정신없이 저녁을 먹고 향악당에 가서 한 판 뛰고 왔다. 달리고 왔더니 오히려 허리가 덜 아프다. 가벼운 달리기가 노동 후 허리 운동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