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를 들고 나가서 밭둑에 올리고 김어준의 뉴스공장과 93.1 클래식 방송을 듣는다. 조용한 밭에서는 별도의 장치 없이도 라디오 청취가 가능하다. 저 위 늦은 논에서 트랙터 작업이 시작되자 방송이 잦아든다. 먼지 묻은 손으로 라디오를 만지자 때가 타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밭 일 하면서 라디오를 들을 방법을 조금 개선해야겠다. 워낙 산골이라 전파 수신도 문제가 있다.
몇 개의 이랑을 했는지 모르겠으나 부직포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서 시간이 몇 배로 걸린다. 아무래도 돈이 들더라도 새 부직포로 교체해야겠다. 펼쳐보지 않으면 상태를 알 수가 없어서 계속 사용하게 되는데 거의 넝마 수준이다. 진도가 나가지 않으니 해가 너무 뜨겁다.
밭둑 그늘에 앉아 물을 마시며 앞으로의 경작 계획을 의논한다. 농약을 쓰지 않고 재배 가능한 작물이 들깨, 참깨, 쥐눈이콩, 감자, 강낭콩, 완두콩 등이다. 이중 감자는 보관이 어려워 생산을 많이 할 수가 업다. 쥐눈이콩과 강낭콩은 잘 말리면 오래 보관할 수 있으니 좋다. 쥐눈이콩으로 메주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면 농약 없이 키울 수 없는 메주콩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 것이다. 1차년도에 참깨 들깨 이모작을 하고, 2차년도에 강낭콩과 쥐눈이콩을 생산하면서 한쪽에 마늘을 키우면서 김장용 채소를 심으면 밭은 충분히 활용 가능하다. 벌통 옆의 텃밭에 감자, 고추, 호박, 토마토 등등을 기르면 아쉬운 대로 맛은 볼 수 있을 것이다. 단일 작물 재배로 일손이 줄게 되면 오히려 텃밭에 더 신경을 쓸 수 있어서 좋을 수도 있다.
8시부터 11시까지 부직포 작업을 하다가 논으로 갔다. 논바닥이 드러난 부분에 풀이 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끔찍한 수준은 아니다. 아직도 모떼우기를 한 깊은 곳의 모는 제대로 뿌리를 정착시키지 못했는지 키가 더 크지도 않았다. 겨우 사흘이 지났으니 무슨 변화가 있겠는가. 일단 찰벼논의 펌프를 돌려 천천히 물을 채우기로 했다. 우렁이들이 계속 활약을 해 주기를 기대한다.
흑미논도 일단 물을 틀었다. 점심 먹고 나서 잠그더라도 조금은 물을 채워도 괜찮을 것같다. 이미 죽은 모들은 거의 부활이 힘들다. 살아 남은 벼들이라도 풀이 없는 환경에서 자라면 훨씬 수확은 좋을 것이다. 어차피 수확량은 하늘 - 비, 바람, 햇살, 우렁이, 오리, 풀 등 - 이 정하는 것이다. 그저 운동한다 생각해야 한다.
트럼프가 정상회담을 취소하면서 한반도의 분위기는 다시 싸늘해졌다. 전과 후를 비교해 보면, 마음이 얼마나 불편해졌는지를 알 수 있다. 평화를 향한 전진은 이렇게 힘이 든다. 실망하지도 말고 큰 기대도 하지 말고 그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묵묵히 기도하며 나아가야 한다. 다음 주 월요일이 기대가 된다. 논의 모들에게 잘 있으라고 기원을 겸한 인사를 했다.
'사는이야기 > 농사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겨운 작업은 한 줄만 하기로 한다_180529 프또르닉 (0) | 2018.05.29 |
---|---|
새참에 휘파람 새의 소리에 취하다_180528 빠니질리닉 (0) | 2018.05.28 |
죽은 허수아비가 산 고라니를 쫓다_180524 Четверг (0) | 2018.05.24 |
믿는 이에게 희망이 있다_180523, 쓰리다 (0) | 2018.05.23 |
웃으며 일하라_180522 프또르닉 (0) | 2018.05.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