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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죽은 허수아비가 산 고라니를 쫓다_180524 Четверг

6시에 눈을 떠서 뒹굴거리다가 아침 식사를 하고 7시 50분에 밭으로 나갔다. 밭에 두고 온 작업 바구니를 찾는다고 하우스와 창고를 왔다갔다 하다가 십 분여를 흘려 보냈다. 나이 탓이기도 하고 너무 일찍 일어나 잠이 덜 깬 탓이기도 하다.


바람에 벗겨진 부직포에 고추가 눌려서 위험 상태에 빠진 것을 살려 놓았다. 고라니가 와서 고추싹을 잘라 먹었다. 하필이면 생장점을 잘라 먹어서 예닐곱 포기는 이리저리 제멋대로 성장할 것이다. 논가에 설치한 움직이는 허수아비 덕분에 고라니가 오지 않은 것을 보면 밭둑에도 설치해야겠다. 죽은 제갈공명이 산 사마중달을 쫓아내듯 허수아비의 활약이 돋보인다.


오늘 아침 작년 농사일기를 뒤져보니 5월 12일 써레질, 16일 모내기, 18일 우렁이를 살포했으나, 5월 30일에 이미 논바닥에 풀이 가득하다고 했다. 두 가지 문제점을 발견했다. 첫번째는, 전해 가을 볏짚 자르지 않은 것이 너무 많아서 봄에 불을 놓아 태웠더니 남은 재가 논물을 잿물로 만들어 우렁이가 살기 힘든 물이 되었던 것이다. 두번째는 써레질을 너무 쉽게 끝내버려 풀이 너무 쉽게 자랐다. 올해는 볏짚을 태우지 않고 걷어내었고, 써레질도 네 번(실제로 여섯 번) 이상을 했다. 좋은 결과를 기대한다.


그제 깔아놓은 밭의 부직포들은 밤비에 잘 씻겨내려져서 깨끗하다. 올해부터는 아주 깨끗한 부직포 위에서 작업할 수 있게 되었다. 밭의 특성에 맞춰 내리막 경사를 만들었더니 부직포 위에 흙이 쌓이는 것이 없어서 좋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반복된 로터리 작업으로 풀이 제대로 자라지 못한 면도 있어서 부직포 효과도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현재로서는 희망을 가질 만하다. 무거운 트랙터가 흙을 밟아서 곤죽을 만든다는 자연농법의 이야기는 맞는 말이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 트랙터가 땅을 더 많이 밟더라도 제초제 안 뿌리고 고통스런 노동에서 해방되고 싶다. 그리고 농법은 재현가능해야 한다.


일의 진척은 빨리 되는 반면에 계속해서 쪼그리고 앉아 작업을 해야 해서 힘이 든다. 그래도 합계 1.5 man-day(12시간) 정도 되면 밭에 부직포를 치는 일은 끝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현재와 같은 추세대로 부직포가 유지되면 걷는 시간도 줄어들고 손상도 덜할 것이다. 여러 가지로 좋은 징조들이 보인다.


11시 20분. 3시간 반만에 작업을 종료하고 밭둑에 앉아 커피와 빵으로 간식을 먹었다. 돌을 줍다가 부직포를 나르다가 쪼그리고 앉아서 핀을 꼽다가 풀을 베기도 했다. 농사일은 과잉 행동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는 도움이 된다. 이것 하다 지치면 저것 하면 되니까 말이다. 세 시간을 넘어가면 작업 효율은 뚝 떨어진다. 넘기지 말자.


낫을 갈아서 말리고 씻고 들어오니 11시 50분. 피리와 오카리나, 대금 연습을 하지 못해서 마음 먹고 불다가 점심을 먹고 또 불고 있다. 세 시가 되어 밭으로 나갔는데 강풍이 분다. 일부 부직포가 바람에 날려 핀이 뽑히고 고추를 덮쳤다. 핀을 좀 더 촘촘하게 박고 구멍난 부분을 메꾸고 다시 부직포를 깔려고 하는데 바람이 더 강해진다. 안되겠다.


마침 아버지께서 좀 더 강한 난황유를 만드셨다고 해서 논으로 갔다. 이동 허수아비 두 개 중 하나가 바람에 날려 논바닥에 떨어졌다. 물장화를 신고 오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늪에 빠지며 허수아비를 구출해서 다시 줄에 매달아 놓았다. 어제 뿌린 난황유가 효과가 얼마나 있는지 알 수 없으나 논바닥을 뚫는 물바구미가 곳곳에서 보인다. 여기저기 다시 난황유를 뿌렸다. 아무래도 다음 주에 한 번 더 뿌려야 할 모양이다. 매우 강력해 보인다. 물바구미 주변에 하루살이들이 떼를 지어 날아다녀 하루살이의 유충이 물바구미인가 찾아 보았더니 아니다. 우리 논에 바글거리는 작은 벌레들은 아무래도 물바구미가 아닌 하루살이의 유충인 모양이다. 크기가 3mm라고 하는데, 1mm 정도 밖에 되지 않는 벌레다. 다시 확인해 봐야겠다.


난황유를 페트병에 담기 위해서 어제는 작은 바가지로 일일이 퍼 담았는데, 오늘은 마지막 두 번을 제외하고는 난황유에 담궈서 담기를 했다. 시간과 힘이 절약된다. 다섯 시가 넘었다. 낫을 들고 흑미논 논둑에 걸터앉아 풀을 베었다. 예초기로 돌리면 훨씬 쉬운데, 아직 모가 자리를 잡지 않은 상황에서 풀을 날리면 피해가 생길까 걱정이 되어 낫으로 벤다. 더불어 오리들이 오지 못하게 지키고 있다. 우리 논에서 놀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히 오리 두 마리가 우리 논 위를 비행했다. 허수아비 하나가 물에 쓰러진 사이에 침투했을 수도 있다.


여섯 시 반이다. 합계 7시간을 일했다. 목표로 한 부직포 덮기는 완수하지 못했지만 할 일은 했다. 노동 시간이 한 시간 초과되니 몸도 그만큼 피곤하다. 햇마늘과 낚지 볶음에 소주 한 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