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 피해를 막기 위해 두 개의 허수아비를 세우기로 했다. 비닐로 만들어졌으니 바람에도 잘 움직이고 작은 빛에도 반응한다. 오리들이 겁이 많으니 효과를 기대한다. 날이 추워서인지 8시의 논바닥에는 우렁이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흙탕물이 가라앉은 것을 보면 아무래도 어제 오전에 아버지가 작업을 하신 모양이다. 오늘은 물이 제법 깨끘하다. 물이 높아서 모떼우기가 어려운 부분들이 있어서 물을 빼기 위하여 물꼬도 낮추었다. 여섯 개의 물꼬로 작업을 했는데, 제대로 작업했는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오후에 물높이를 확인해 보아야겠다. 이렇게 물을 빼고 나면 밤사이에 다시 비가 내린다고 한다. 내일 오전에는 밭작업이 불가능하므로 논에서 모떼우기 작업을 하기로 했다.
산소밭에서 걷어 온 부직포 두 개를 걸머지고 밭으로 이동했다. 부직포를 치더라도 그 위에 흙이 쌓이면 풀이 돋아나서 밭은 곧 풀밭이 되곤 한다. 그래도 부직포가 70프로 이상의 제초를 해 주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고 돈이 드는 일이지만 게다가 밭의 모양도 예쁘지가 않지만 계속해서 부직포를 치고 있다.
첫 부직포를 치기 시작하면서 밭을 돌아보니 오늘 하루에 절반이나 부직포를 깔 수 있을까 하는 좌절감이 든다. 눈은 언제나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약하게 한다. 특히 육체노동을 앞두고 서는. 마늘밭을 매러 오신 아버지가 허수아비가 잘 서 있느냐고 물으시면서 미소를 보내 주시는데, 내 얼굴에서도 저절로 웃음이 나면서 일할 힘이 생긴다. 그렇게 12시가 다 되도록 여덟 이랑에 부직포를 깔았다. 아직도 스물 다섯 개의 이랑이 남았다. 되도록이면 오후에 다 할 수 있도록 속도를 좀 내어 보자.
부직포를 깔면서 자갈들을 주워서 배수로 주변에 쌓아두었다. 이렇게 작은 돌담을 쌓아두면 흙은 빠져 나가지 않고 물만 내려가면서 자연스럽게 평탄 작업이 되지 않을까. 아무 검증도 되지 않은 일인데, 이런 희망을 갖게 되자 역시 기운이 난다. 점심 식사를 하고 한 잠 자면서 쉬다가 두 시가 되어 몸을 일으켰다.
부직포를 덮는 일은 진도가 잘 나간다. 행주산성의 여인네들처럼 옷 앞자락에 돌을 가득 담아 배수로의 담장을 쌓아가면서 천천히 하는데도 이랑이 하나씩 줄어간다. 두시 반부터 다섯 시까지 다섯 개의 이랑을 덮었는데 비가 쏟아진다. 작업을 멈추고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그치기를 기다려 본다. 도저히 그칠 기미가 없어서 들어와 씻고 휴식 모드로 들어간다. 아직 해가 지려면 멀었기에 비가 그치면 다시 작업을 할 예정이다. 물꼬를 보러 갔다 오신 아버지가 괜찮아 보여서 그대로 두셨다 한다. 내일 아침까지 물이 잘 빠졌으면 좋겠다.
결국 비는 그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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