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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믿는 이에게 희망이 있다_180523, 쓰리다

어제 저녁 열 시경부터 시름시름 피곤에 지쳐 잠이 드는 바람에 6시가 넘어서자 마자 잠이 깼다. 컴퓨터를 끌 여력도 없어서 밤새 시끄러운 팬소리에 간간이 잠을 깨기도 했으나 이내 잠이 들었다. 책을 보면서 여유를 부리다가 아침을 든든하게 챙겨 먹고 8시부터 논으로 달려 간다. 앞의 논은 수렁이 심해 이앙기가 빠지고 고장나서 사흘쨰 악전고투하며 모를 심고 있다. 그래도 시간이 흐르자 일은 끝이 보인다.


허수아비의 덕분인지 오리들이 근접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버지께서 아이디어를 내서 두 개의 기둥 사이를 왔다갔다 하도록 재설치해 놓으셨다. 새벽부터 나가셔서 아프실까 걱정이 되는데, 이 아이디어를 실현해 보려고 몸을 돌보지 않고 왔다갔다 하셨단다. 어쨌든 바람의 힘으로 5미터를 좌우로 움직이는 허수아비가 우렁이들을 잘 보호해 줄 것이다.


흑미논의 물이 빠져서 모 떼우기를 했다. 찰벼 논까지 떼우면서 든 생각인데, 기왕에 물이 깊어서 듬뿍 모를 잡아 떼우기를 할 것이면 모 사이의 간격을 충분히 두었어야 했다. 모가 부족해서 일부 논은 구멍이 난 듯 비어 있는데, 여유있는 간격으로 모 떼우기를 했으면 모도 부족하지 않고, 벼의 생육에도 좋고, 논도 훨씬 보기에 좋았을 것이다. 좋은 경험을 했다. 그래도 중간 중간 고속도로가 나지 않았기 때문에 모심은 양은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


11시가 되어 집으로 돌아가서 부모님을 모시고 치과에도 다녀오고 하나로마트에도 다녀왔다. 점심으로 어머니표 짜장라면을 먹고, 이명박이 구속되어 재판하는 것을 보았다. 여전히 잘못이 없다고 한다. 그의 얼굴에 정말 죄의식이 없다.  조선을 말아 먹은 세도가들의 기름진 얼굴이 저랬을 것이다.


세 시가 다 되어 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난황유를 들고 논으로 다시 갔다. 1.5리터 음료수 병에 한 가득 들어 있는 난황유를 20리터의 물통에 풀어 논의 가장자리에 뿌리면 물바구미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열심히 뿌려도 논가에 기름자국이 뜨지 않아서 제대로 만든 것인지 물이 너무 많은 것은 아닌지 자꾸 의심이 든다. 그러니 일하는 발자국에 기운이 없다. 한참이 지나서야 물과 기름이 분리되어 기름이 뜬 부분들이 생겨난다. 검증되고 재현 가능한 작업은 믿어야 한다.


찰벼논과 흑미논의 높은 부분 두 군데를 손으로 떠내어 수평작업을 했다. 찰벼논을 할 떄는 전진하면서 했는데, 발자국이 남아서 다시 골라야 했다. 흑미논에서는 후진하면서 작업을 했다. 훨씬 깔끔하게 작업이 된다. 그 대신에 손을 더 열심히 놀리게 되어 작업의 강도는 더 세다. 모 떼우기를 할 떄는 전진하면서, 수평 작업을 할 때는 후진하면서 하자. 잊지 말자.


흑미논의 물꼬가 비닐을 제대로 설치하지 않아서 흙이 많이 쓸려 나갔다. 다시 비닐 포대를 제대로 대고 물높이도 적당하게 가늠해서 재설치를 했다. 이 정도 높이로 물을 대면 딱 좋겠다. 작년까지만 해도 우렁이 그물과 물꼬를 어떻게 할 지 난감했는데, 이제는 완전하게 이해했다. 다정한 선배 농부가 있어서 이 모든 일을 2~3년 안에 전부 자세하게 설명해 주면 좋았을텐데.


5월 8일 11시 40분부터 9일 10시까지 써레질을 하고, 11일에 모를 심었다. 이 주일이 지난 오늘 현재 논은 대체로 풀이 없는 상태다. 우렁이의 제초가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여기 저기에 풀싹이 올라오고 있기는 한데, 분포가 심하지 않다. 긴장은 풀지 않되 우렁이와 써레질을 믿자. 믿는 자에게 희망이 있다. 씻고 나니 여섯 시 반이다. 오전 오후에 각 세 시간 합계 여섯 시간을 일했다. 아주 적당한 노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