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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논이 붙잡고 놔 주지를 않는다_180516 среда

6시 50분에 일어나서 사과 세 쪽을 먹고 예초기를 메고 벌통 옆의 풀들을 베었다. 비가 온다고 해서 얼른 일을 끝내려고 서둘렀다. 따뜻한 비를 맞는 것이 큰 문제는 아니겠지만, 비까지 맞으며 노동하는 것은 너무 처량하다는 부모님의 항변이 있을 것이다. 잘 끝내고 어머니는 동네 상가에 가기 위해서 서울로 가셨다.


밭으로 가서 풀을 벨까 하다가 어깨가 아파서 논으로 가기로 했다.  장화를 신을까 물장화를 신을까 고민했다. 혹시 일이 있을 수 있으니 물장화를 신고 낫을 들고 논으로 갔다. 손에는 고무장갑과 그 위에 면장갑을 꼈다. 시작은 편안했다. 오리들은 나타나지 않았고, 우렁이들은 넓은 논을 제 마당 삼아 부지런히 기어 다닌다. 녀석들도 나처럼 다이어트를 하는 모양이다. 풀잎 한 쪽에 처음으로 알을 낳은 녀석도 있다.


우렁이 구경도 하고 논둑의 풀도 베면서 슬슬 일하다가 점점 논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첫번째 유혹은 흑미논의 깊은 곳. 모가 물 속에 잠겨서 녹고 있다. 새로운 모를 가져다가 손으로 심었다. 일한 표시가 금방 난다. 커다란 구멍이 난 것처럼 휑하게 비어있던 논에 어린 모가 하늘하늘 반짝인다.


그 반짝이는 모습이 좋아서 찰벼논으로 메벼논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일을 한다. 찰벼 논의 한 쪽에서는 조금만 치우면 될 것 같은 흙언덕도 있어서 부지런히 두 손으로 퍼 내어 수평을 잡았다. 어제 저녁에 열 삽을 퍼 날라서 튼튼하게 만든 논둑을 밟아보니 아직은 약하다. 열 삽은 더 퍼다 부어야 할 모양이다. 아직도 손 봐야 할 곳이 많다. 낫을 든 오른 손과 논바닥에 던져져 있는 모판들이 자꾸만 나를 끌어들인다. 네 시간이 넘도록 일을 했더니 온몸이 다시 무거워진다. 무리해서는 안되는데 내린다는 비가 내리지 않아서 내 몸이 녹아 내린다.


비가 자주 내려서인지 물바구미는 없다. 오늘 비가 오면 난황유를 만들어 뿌리려 했는데, 아직은 기다려 봐야 할 모양이다. 사이렌의 노래 같은 논의 유혹을 뿌리치고, 진흙 구덩이에서 빠져 나왔다. 온 몸은 진흙으로 덮여 있고, 관절은 쑤신다. 터벅터벅 논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와 소맥 한 잔을 시원하게 들이켠다.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잘 있다고 한다. 나도 잘 있다.


너무 무리했더니 몸이 더 가라 앉는다. 절대로 세 시간 이상 노동하는 일은 없어야겠다. 두 시간이 적당하다. 다섯 시가 다 되어 몸을 일으켰다. 논에서 일하며 튄 물이 오른쪽 눈에 들어갔는데, 세 번째로 안약을 넣었는데도 여전히 불편하다. 세수를 하고 다시 논으로 갔다. 쉬는 사이에 비가 제법 많이 내려서 논들이 뿌옇게 물에 잠겼다. 저 위쪽 논에 오리들이 앉아 있다가 하늘로 휘익 날아 오른다. 뒤늦게 날아오른 녀석까지 모두 네 마리다. 다행이 우리 논에는 아직 접근하지 않은 모양이다. 삼십 분 가까이 물꼬와 논을 바라보며 걸었다. 우렁이들은 건강해 보인다. 오늘이 사흘 째다. 잘 적응하기를 기도한다.


밭으로 갔더니 경사진 이랑을 타고 밭흙이 도로로 조금 밀려 나왔다. 다음 주에는 부직포를 전부 덮어야 할 모양이다. 위쪽 배수로는 흙으로 가득하다. 아무래도 배수로 주변은 조치가 필요하다. 장마가 오기 전에 처리해야 한다. 오른 손바닥이 부은 듯 열감이 느껴진다. 찬물에 담그고 잠깐 시원한 맛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