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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볍씨 소독과 싹 틔우기 준비를 하다_180402~05

지난 월요일(2일)에는 아버님 진료를 위해 병원을 다녀 왔다가 오후 네 시간 동안을 이랑 곧게 펴기 작업을 했다. 어머니께서 주말 동안에 일부 이랑에 비닐을 씌우시고 감자와 완두콩을 심으셨다. 농사일에 은퇴를 선언하신 아버지의 도움이 없으셨으니 얼마나 힘드셨을까. 그런데도 오늘 또 쉬지 않으시고 아들이 해야 할 이랑 만들기 작업을 호미로 하고 계셨다. 덕분에 일에 대한 부담이 확 줄어들었다.


밭의 모양과 구조가 좋지 않아 트랙터와 배토기로 완벽한 이랑을 만들기 어렵다. 관리기를 빌려다가 작업을 할까 하다가 그냥 삽과 괭이로 작업하기로 했다. 어머니는 여전히 일할 준비를 하고 계신다. 왜 그러시냐 했더니 아들 혼자 애쓰는 것을 생각하면 안쓰러워서 돌멩이 하나라도 옮기고 싶으시단다. 여든 넷의 어머니는 여전히 내 어머니시다.

이랑 곧게 펴기의 가장 어려운 작업이 남았다. 7개의 길고 경사진 이랑을 곧게 펴는 작업이다. 이랑이 똑바르지 않으면 비닐을 잘 씌우기도 어렵고, 농작물을 관리하기도 힘들다. 어떻게든 이랑을 똑바로 만들어야 1년 농사가 편하다. 시간을 들여서라도 이랑을 펴야 한다. 흙이 많은 위쪽은 그런데로 일이 쉬운데, 아래쪽은 흙이 부족해서 수레에 흙을 퍼 날라다 이랑을 직선 이랑을 만든다. 윤영이에게 힘을 낼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일을 하다 좋은 점을 발견했다. 이랑과 이랑 사이에 쌓여 있는 흙은 농작물에 직접 관련이 없어서 나중에는 장애물이 된다. 이 흙들을 전부 지대가 낮거나 흙이 부족한 아래쪽으로 퍼 내리면 밭의 낮은 부분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원래 트랙터로 이 작업을 하려 했는데, 쉽지 않았다. 포크레인이나 불도저가 있으면 좋지만, 하루 일당이 70만원이란다. 비용을 줄여야 살 수 있다. 결국 삽으로 퍼서 수레에 실어 나르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다. 일을 하다 보니 숨이 턱에 차고 팔이 덜덜 떨릴 정도로 힘이 들었다. 그렇지만 다이어트를 위한 근력운동이다 생각하고 열심히 일했다. 어머니께서 미진한 이랑을 정리해 주시니 일이 한결 수월하다.

세 시간 동안을 작업해서 모든 이랑을 완성했다. 그러고 났더니 갑자기 일 욕심이 생긴다. 아직도 이랑 사이에는 많은 흙들이 남아있고, 흙이 부족한 곳도 많이 있다. 오늘은 비닐을 씌울 수 없으니 흙을 더 퍼 나르자는 생각이 들었다. 수레를 옮겨서 나머지 한 시간 동안 흙나르기 작업을 했다. 점점 밭의 모양이 좋아지기 시작한다. 다 끝내지 못했지만 여섯 시간 정도만 더 일하면 훨씬 더 밭의 모양이 좋아지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그리하여 지난 수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작업계획을 세워 두었는데, 계속해서 비가 내린다. 일을 끝내려고 아버지 진료도 동생에게 맡겼는데 말이다. 역시 계획대로 되는 일은 없다. 밭작업은 할 수 없어서 예초기와 제초기를 수리하러 갔더니, 예초기는 폐기해야 하고 제초기는 캬브레이터를 교환해야 하는데, 농협에는 부품이 없다고 한다. 15년이 넘게 사용한 예초기니 폐기해도 아깝지 않다. 실제로 지난 2년 동안 수리만 열심히 했고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

모든 기계들이 그렇지만 농기계들은 고장이 자주 난다. 작업환경도 거칠고 관리도 잘 되지 않으니 당연한 일이다. 제초기도 고민하다가 사지 않으려 했는데, 오리들의 전멸로 논이 풀밭이 되어 가는 모습을 볼 수 없어서 구매한 것이다. 90만원을 주고. 결국 제초기는 1년 쓰고 창고에서 썩게 되었다. 되도록이면 농기계는 사지 않으려 하는데, 트랙터 한 대 쯤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논과 밭에서 유용하게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참자. 다 짐이다.

5일(목) 오후 3시에 병원 진료를 가셨던 부모님이 돌아오셨다. 서울대병원이 어찌나 붐비던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으셨다고 한다. 검사와 진료는 다음 주에 본격 시작된다. 큰 이상 없이 잘 치료되시기만을 간절히 빈다. 

일단 다음 주에 모판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볍씨 담그기를 시작한다. '삼광' 볍씨를 종자원에서 40kg 사왔다. 찰벼 씨앗은 작년에 추수해서 15kg을 준비해 두었다. 찰벼에 대해 어머니는 부족하다 하시고 아버지는 충분하다고 하신다.

먼저 삼광 볍씨 30kg을 물에 담갔다(남은 10kg은 소독약이 묻어 있어서 버렸다). 안내에 따르면 볍씨에서 기포가 생기지 않을 때까지 상온의 물에서 충분히 저어서 담가 두도록 되어 있다. 소독된 종자이지만 추가 소독을 해야 키다리병을 예방할 수 있다고 한다. 흠, 이 소독 문제 때문에 농약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가 없다. 받아 들이자.

찰벼는 물을 받아서 위에 뜨는 볍씨들은 걸러내고 가라 앉는 튼실한 종자만 골라서 물에 담갔다. 소독을 하기 위해서는 30도 이상의 물에 소독약(저농약)을 풀고 이틀 정도 담가 둬야 한단다. 내일 아침에 이장에게서 소독약을 받기로 했으니 우선은 찬물에 담가 두기로 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우비를 입고 작업했더니 제법 쌀쌀하다. 눈을 맞으며 부모님과 김장 준비를 했던 작년 겨울이 생각난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다음 주 일정까지 계산을 해서 정리를 해 두었는데, 다음 주에 동생이 병원에 갈 수 없다고 한다. 일단 다음주 화, 수요일에 할 일들을 내일과 월요일에 당겨서 한 다음에 병원에 다녀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