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50마력 트랙터와 놀다 무릎 관절이 나가다_180328~29

살짝 긴장은 되었지만 작년 보다는 훨씬 마음이 편했다. 오후 3시 40분에 트랙터와 로터리를 달고 집으로 돌아왔다. 임대료는 12만원. 집 문턱에서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야 할 작업은 로터리와 이랑만들기인데 오로지 로터리만 달고 온 것이다. 급히 전화를 했다. 신청을 그렇게 했고, 아까 물어 보았을 때도 로터리 작업을 한다고 했지 않느냐는 답이 돌아온다. 맞다. 로타리 친다. 그리고 이랑 작업도 한다. 그럴려면 로터리 기계 위에 배토기를 달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으면서도 1년 만의 일이라 그만 실수를 했다. 일단 변경이 가능한 지 확인해 달라고 하고 다시 음성군 농기계임대센터로 트랙터를 몰았다.


오랜만에 잡아 보는 트랙터라 천천히 몰았는데 실수없이 잘 했다. 아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잘한 게 아니다. 나중에 보니 4륜 구동을 넣고 주행하였다. 주행할 때는 4륜 구동 선택 버튼을 애매한 중립 위치에 놓아야 하는데, 아래로 내리면 되는 줄 알고 화끈하게 눌러 놓았다. 여전히 4륜 구동 표시등이 들어와 있어서 그런가 보다 했다. 실수를 하고도 실수한 것을 모르는 무지의 상태다. 언제 이 무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주행연습 잘 하고 센터에 도착하니 성실한 직원들이 열심히 작업기를 교체해 준다. 일 두 번 시켜서 미안하다고 했더니 미소를 띠며 괜찮다고 한다. 고마운 사람들이다.


밭으로 들어가 바로 작업을 시작한다. 7시 반까지 헤드 라이트를 켜고 2시간 반을 작업했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하나로 합쳐진 밭의 수평을 어느 정도 잡아 보려고 흙을 열심히 끌어내렸지만 쉬운 작업이 아니다. 불도저로 해야 할 일을 트랙터로 하니 될 수가 없는 일이다. 그저 했다는 표시가 나는 정도다. 그래도 사고 없이 잘 해서 저녁에 향악당에 가서 장구와 꽹과리를 신나게 두드리고 왔다. 잠이 오지 않는다. 중용 강의를 들으며 잠들기를 빌었다.


벌개진 눈을 비비고 일어나 7시 50분부터 작업을 시작했다. 원 마름모 꼴을 중심으로 자유스런 모습의 밭은 생각대로 의지대로 작업할 수 없었다. 남쪽과 동쪽으로 흐르는 이중의 경사도 문제다. 몇 번이나 그림을 다시 그려가며 이랑만들기 작업을 시도했으나 애만 쓴 느낌이다. 그러나 모든 과정은 성공으로 가는 길이다. 오후 1시가 다 되어서야 드디어 만족할만한 그림이 완성되었다. 기름 40리터를 사용했다. 점심도 거르고 빵과 커피와 따뜻한 물로 목을 축여가며 작업을 했다. 만족할 수 없었지만 일을 끝내야 하기 때문에 더 이상 고민할 시간도 없다. 오후 2시 50분. 7시간 만에 드디어 작업을 끝냈다. 


트랙터를 씻어서 반납하고 늦은 점심을 먹고 4시 20분에 다시 밭으로 갔다. 이번에는 삽과 괭이로 무장하고비뚤어지고 덜 만들어진 이랑을 손본다. 7시가 넘어 해가 지도록 일했다. 세 시간의 노동이었지만 이게 진짜 일이었다. 팔과 손목, 허리가 아프다. 10시간의 트랙터 작업은 왼쪽 무릎 관절을 고통스럽게 하고, 완성되지 않는 그림으로 안타까운 시간이었던 반면에 삽질과 괭이질은 후끈 열을 올려준다. 돈 벌며 한 다이어트 다.


아직도 하루 분량의 일은 남아 있지만 더 이상 일을 하면 몸살이 날 것이 틀림없다. 사흘 동안의 도시 생활로돌아간다. 헤르메스를 타고 22시의 안양천길을 달리는데, 아름답다. 뿌듯하다. 나로부터 소외되지 않은 노동은 기쁨이다. 자전거를 타고 오며 시리와 놀았다. 그리미에게 문자도 보내고, 새로 온 문자도 읽어 달라고했더니 열심히 읽어준다. "как вас зовут(what's your name?)"이라고 물었더니, 그런 랩은 하루 종일도 할 수 있다면서 '붐치기 둠치기 어쩌고 저쩌고' 신나게 떠들어 댄다. 무일농원의 대표로서 비서 하나를 제대로 두었다. 역시 기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