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포근하여 일하기에도 놀기에도 좋았다. 윤도현의 '흰수염고래'에 맞춰 장구를 두들겨 보았는데, 한참을 해도 박자가 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 장구를 정확하게 치지 않았거나 노래의 맛을 내기 위해서 약간씩 박자가 늘어지는 것일 수도 있다.
떡볶기와 도너츠로 점심을 먹고 밭으로 갔다. 세 줄 남은 콩을 뿌리채 뽑았다. 콩깎지가 제법 통통해서 까 보았는데 콩은 익지 못한 상태에서 썪어 있었다. 허리가 빠지도록 농사를 지었지만 결국 쓰레기 처리를 위해 다시 허리가 아파야 했다. 다른 밭의 콩들도 절반도 수확을 못했다고 한다. 허리를 펴고 숨을 고르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농사란 이런 것이다. 예쁜 것들만 보고 깨끗한 것만을 만질 수 없다. 대가를 장담할 수 없는 육체 노동이다.
수확량 제로인 콩대를 뽑아내면서 마음을 정리하고 나니 일은 잘 진행이 된다. 부모님까지 나오셔서 일을 하시니 뭔가 막 정리되는 느낌이다. 그렇지만 아직도 할 일은 많다. 부직포를 걷기 위해서 핀을 뽑아내고 무섭게 자란 잡초들을 뽑아내야 한다. 비닐과 부직포로 덮어 두어도 끊임없이 번식하는 풀들을 막을 수 없었다. 거둔 부직포를 예쁘게 말아서 내년에 다시 쓸 수 있게 해야 한다. 부직포를 다 걷었으면 비닐도 거둬서 수집장에 가져다 놓아야 한다.
찬바람이 불어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어 들어왔더니 오후 다섯 시다. 해가 정말 짧아졌다. 어머니는 어깨가 아프시고 나는 허리가 아프다. 그래도 밥값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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