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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펄펄 내리는 눈 속에서 아름답게 배추를 절이다_171122~26

추운 날에 배추를 다 뽑아다 놓으셔서 마음이 아릿했다. 하필이면 주말에 비가 예보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다. 동네 노인회장 댁에 찹쌀을 가져다 드리고 배추 몇 포기를 얻어 왔다. 오가는 정이지만 속셈이 있어서 언제나 받기만 하신다고 안타까워 하신다. 다 터지고 얼어버린 감이지만 그거라도 가져가라 하셔서 기쁘게 받아왔다.


눈이 펄펄 내리는 24일 금요일 아침 배추를 절였다. 예년에 비해 절반을 약간 넘는 양이라 일이 금방 끝났다. 나무집과 빈 들과 헐벗은 야산이 곱게 내리는 눈으로 포근하게 덮이고, 늙으신 부모님과 늙어가는 아들이 배추를 절이는 모습이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허겁지겁 서울로 올라갔지만 밀리는 길 때문에 약속 시간에 늦었어도 다들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어서 밤 늦도록 술잔을 기울였다. 택시를 타려고 하는데, 카카오 택시 때문인지 밤늦은 시간이어서인지 잡을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카카오 택시를 깔아 불렀더니 5분 정도 후에 도착한다. 감기 걸리지 않고 무사히 집에 들어갔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가족들과 함께 다시 농원으로 내려갔다. 다행이도 농원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고 오후 4시가 넘으면서 부는 바람 때문에 쌀쌀했지만, 절여진 배추를 다 씻고 저녁준비를 했다. 오후 다섯 시 동생네 식구들이 내려와서 같이 회를 안주삼아 이른 저녁과 술을 한 잔 했고, 조카가 운전해 준 차를 타고 스크린 골프도 한 게임 쳤다. 뒤늦게 내려 온 누나를 태우고 농원으로 돌아 왔다. 열 시가 넘었지만 동서가 보내 준 쇠고기를 구워 러시아에서 사온 발렌타인을 마셨다. 참 좋은 하루였다.


새벽부터 시끄러운 소리가 나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그리미는 두 시간 여의 노동에 온 몸이 아프단다. 잠이 부족해 눈이 까칠했으나 겨우 일어나 아침 식사를 간단하게 끝내고 김장을 시작했다. 할아버지와 손자들이 배추를 손질해 나르고, 어머니와 딸, 아들 며느리들은 김치 속을 넣었다.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다. 제수씨가 무를 갈아넣는 방식의 김장을 시험해 보고 좋으면 내년에는 그렇게 담아 보기로 했다.  겉절이까지 양념과 배추가 딱 맞아 떨어졌다. 


점심을 먹으며 부모님의 한 해 농사를 위로했다. 한 근에 9천원 하는 양식굴에 비애 14,000원이나 하는 자연산 굴과 한 근에 이만원이나 하는 생새우를 주제로 올려서 내년에는 비싸지기 전에 11월 둘째 주 토요일에 김장을 하기로 약속을 했다.


다섯 시가 다 되어 부천에 도착했다. 겉절이와 돼지고기에 소주 한 잔을 하고 푹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