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강렬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서영은의 먼그대도 그랬다. 물론 견디는 낙타를 제외하고는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한 번 더 읽어볼 일이다. 책장에 진열된 지 수년이 흘렀건만 읽지 않았는데, 오늘 드디어 손에 잡혔다.
"이 작품을 뽑기 위해 심사위원이 된다는 것은 제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중략) 내 마음에서는 김동리와의 인연을 다 내려놓고 싶은데, 밖에서는 끊임없이 그의 사진이 필요하다, 육필원고가 필요하다 (중략) 보내 준 창작집은 읽지 못했어요. (중략) 그 이전 작품이 체험을 녹인 이야기였다면 최근에 발표한 작품은 이야기가 사라지고 조립한 정황만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중략) 그녀는 나의 중학교 때 국어 선생이었고, 나를 몹시 사랑해주었다. 나만을 사랑해주는 줄 알았던 그녀가 다른 아이도 나만큼 사랑해주는 것을 알게 되자, 나는 크레졸을 마시고 자살을 기도했다(중략) 나는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해서 내 안의 미친 불길로부터 탈출하기 시작했다. (중략) 거의 삭발 수준으로 짧게" (18~44쪽)
시작은 창대했으나 거의 200쪽이 넘도록 지루한 여행자의 일상으로 일관한다. 계속 읽을지 말지를 결정해야 하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한 번 책을 잡았고, 이 글을 만났다.
"나는 아쉬운 마음을 접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마쯤 가다가 뒤를 돌아다보았다. 거기에 우리가 앉아 있던 흔적은, 벤치에 떨어진 빵 부스러기가 아니라, 내 마음 안에 있었다. (중략) 우리가 시간을 보낸 흔적 모두가 보이는 세계에 남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마음에 축적된다" (224쪽)
어쨌든 끝까지 왔으니 서영은의 글쓰기는 훌륭하다. 덮기에는 그녀와 치타와의 갈등이 어떻게 폭발할 지 너무 궁금했다. 소설이라면 엄청난 일이 벌어졌겠지만 현실이라서 분명 이렇게 밋밋했을 것이다. 이 글은 분명 산티아고를 걸으며 신을 영접하는 늙은 소설가의 이야기인데, 내 눈은 그리로 돌아간다. 서영은이 정말로 김동리를 사랑했구나. 다행스런 일이다. 명예와 출세를 위해서 사랑을 파는 소설같은 일이 현실에서는 벌어지지 않았구나.
그녀는 걸어서 힘이 생겼는지 신을 만나서 그랬는지 알 수 없다. 그녀의 이야기를 따라 가다보면, 걷기 시작해서 힘들게 걸었으나 쉽게 걷게 되었다고 한다. 걷는 것은 쉽게 걷는 것으로 끝난다. 그녀 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다 하니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리고 돈에 대한 그녀의 이야기가 좋았다. 평생 아끼고 저축하며 살아온 내가 그렇게 살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돈이란 수건돌리기 놀이에서 수건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술래가 돌린 수건이 자기 뒤에 놓여 있음에도, 수건을 돌리지 않으면 놀이가 깨어지잖아요." (331쪽)
-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 서영은 / 문학동네(2010년 4월 1판 2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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