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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서재

조종되는 인형이 자유시민에게 사기를 친다_화려한 군주 2_170905, 프토르닉 вторник

'화려한 군주'에서 나열되는 온갖 정치쇼는,  막부를 밀어내고 권력을 잡은 군국주의 세력들이 메이지 덴노를 이용해 국민들의 지지를 이끌어 내어 전시동원 체제를 만들어 내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야 아시아 지배(요시다 쇼인이 제국주의를 정의로 잘못 이해하고 세운 목표)에 성공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던 모양이다. 이토 히로부미는 조선 침략을 시작으로 욕심 채우기에 나섰으나, 대한독립군 참모중장 안중근 장군의 손에 처단된다. 그의 계승자인 일본 군국주의자들은 승리의 순간을 만끽하기도 했지만, 수많은 희생자를 만들어 놓고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그 잔존 세력들이 야스쿠니 신사에다가 무고한 희생자들 옆에 감히 전범들의 이름을 주욱 내걸고 국가의 영웅인양 추모하지만, 결국은 역사의 쓰레기들을 길이길이 기억하게 할 것이다. 메이지 덴노는 꼭두각시가 되어 자유 시민들에게 사기를 치고, 사기를 당한 선량한 시민들은 아시아 침략 전쟁에 동원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깨어있지 못한 시민들은 언제고 이용당하게 되어 있다. 21세기에 들어선 지금, 일본인들 속에서 깨어있는 자유 시민은 과연 얼마나 될까.


"독일인 에르빈 벨츠도 황태자(훗날 다이쇼 천황)의 결혼을 의논하는 회합에 참석했는데, 그는 황위계승자에 관한 이토 히로부미의 태도를 이렇게 적었다. "어제(1900년 5월 8일 / 중략) 나는 이토 히로부미가 너무 솔직하게 말해서 놀랐다. 그는 (중략) '황태자로 태어나는 것은 실로 불운이다. 태어나자마자 예절에 옥죄이고 조금 크면 선생과 고문들의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토는 자기 손가락으로 인형의 줄을 당기는 시늉까지 해보였다." (160쪽)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러시아 등 제국주의 침략 세력에 대항해 아시아를 수호하겠다는 일본 군국주의 세력의 '덴노 만들어 모시기'는 결국 무고한 시민과 아시아인의 참담한 희생을 가져왔다.  '무력으로 전쟁을 극복하고 평화를 이룩하겠다'는 자들의 주장이란 이런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 전범들이 제대로 처형되지 않은 것이 매우 안타깝다. 전범들이 큰소리를 치며 살다가 죽어서까지 현대 권력자들에 의해 떠받들여지고 있으니, 그런 나라에서 성장한 일본인들은 인간성이 파괴된 광인들에 불과하다. 그들에게 미래는 없다. 깨어 있어야 그나마 사람으로 살 수 있다.


"평민층에서 전사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야스쿠니 신사의 연례축제와 봉안의식이 국민들에게 큰 의미를 갖게 되었다. 1869년 야스쿠니 신사의 건립 때부터 (중략, 26년 동안) 1만 4,520명의 전사자의 영혼이 안치되었다. (중략, 청일전쟁 후) 1만 2,877명의 전사자 (중략, 러일전쟁 이후) 8만 5,500명(중략) 개병제의 결과로서, 수많은 사자와 그들의 신격화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이후 일본 사회의 대표적인 단면 가운데 하나였다." (167쪽)


메이지 군국주의 세력이 선보이는 요란한 의례(peagent)들이 일본인들에게 각인되어 덴노가 세상의 중심이 되었다. 1868년에 에도 막부를 타도하고 대체세력으로 들어선 메이지 세력은, 국가 폭력의 중심을 사무라이에서 군인으로 바꿔놓았다. 그들은 국민개병제라는 이름으로 또는 국방의 의무라는 이름으로, 일본 시민을 병사로 무장시켜 전쟁에 동원한다. 허울 뿐인 일본의 번영을 위해서. 부패한 정치권력에 의해 망신창이가 된 조선의 백성들과 덴노의 신민이라고 세뇌되어 전쟁에서 희생된 일본인들. 양쪽 모두 피해자이나, 한쪽은 가해자로서 착취와 수탈을 일삼아 번영을 누렸고, 한쪽은 피해자로서 지금까지도 살육 수탈 분열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메이지) 천황이 살아 있는 인간으로서 죽음을 맞게 되자 (중략) 천황이 죽은 만큼 그 위업을 칭송하는 것만으로는 국가의 불변성이라는 관념을 유지할 수 없었다. 대신에 지배엘리트는 천황의 장례가 황실과 일본의 과거의 위대성과 깊이를 공적으로 나타낼 필요가 있다고 확신했다. 결국 이런 신념에 따라 장례식의 무대는 교토로, 즉 국가적 풍경의 중심에 있으면서 현 정부와 먼 고대, 궁극적으로는 태곳적 불가시적인 장소와의 연결을 가장 잘 표상하는 장소로 옮겨졌다." (191~2쪽)




메이지 이후 일본 군국주의 세력들의 정치전략은 한결같다. 일왕 덴노를 태양신의 후손이자 현실 정치의 최고 권력자로 만든다. 일본인들에게, 무능한 쇼군이 아니라, 강력한 힘을 가진 덴노가 일본을 다스림으로써 일본은 위대해 질 수 있다는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이어서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의 직계 후손인 덴노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게 한다.  덴노에 대한 충성은, 일본인의 의무가 된다. 그리고 덴노의 자리에 군국주의 정부를 밀어넣는다. 덴노의 명에 따라 실제 정치 행위를 하는 메이지 정치 세력들이 덴노의 권위를 그대로 가져와 버린다. 명령은 메이지 군국주의 세력이 하고, 저항하는 민권운동가나 시민은 덴노에 충성해야 할 의무를 저버린 반역자로 만들어 버림으로써 일본인은 저항할 수 없게 된다. 덴노는 앞에 나서서 온갖 권위를 내세우며 통치하지만 실제로는 정치 집단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 이토가 이미 실토하고 있는 것처럼. 오늘날 일본에서도 아베 총리를 비롯한 자민당의 모든 정치 지도자들은 덴노와 야스쿠니 신사에 깎듯하게 예의를 갖춘다. 덴노와 덴노에 충성한 무리들에게 예의를 갖춤으로써 그들 자신도 덴노의 권위를 얻으려는 정치쇼다. 쇼를 통해 얻으려는 것은, 제국주의의 달콤했던 기억, 일본시민과 아시아인의 희생을 통해, 그들만이 누린 부와 권력을 다시 한 번 누려 보자는 것이다. 자민당 체제가 잠시 흔들린 기간을 제외하고는 메이지 이후 그들의 꼼수는 성공했다. 일본인들은 부끄럽거나 무지하다.


"7세기 이래의 황실장례는 주로 불교승려가 집전했다 (중략) 그러나 메이지 유신 후 (중략) 신도 형식으로 행해졌던 것이다. (불교를 밀어내고, 신도를 국가종교로 지원한다. 덴노를 신도의 최고 제사장으로 만들어, 정치와 종교가 융합된 제정일치사회를 만들다. 그리되면 일본 시민들은 정치와 종교의 이름으로 조종하기가 쉬워진다. 일본인들을 파시스트로 개조하는 것이 메이지 세력의 목표였고, 집권 자민당도 그리 다르지 않다 / 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