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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천국/일본여행

그녀들만 보내는 것이 아니었다_도코나메에서 마고메 쓰마고까지_170930 수보따 суббота

어제 즐겁게 마신 술이 편안한 기상을 가능하게 한다. 7시 반에 일어나서 산책을 했다. 도코나메는 도자기를 굽는 집이 많은 모양이다. 어떤 집을 보아도 도자기로 만든 인형으로 장식되어 있다. 예쁘게 가꾼 꽃들과 잘 어울린다. 오끼나와의 겨울을 연상케하는 첫 날의 강풍과는 달리 평온하고 시원한 날씨다. 걷기에 참 좋았다.  


아침 식사를 하고 모든 짐을 챙겨서 차에 실어 놓은 뒤, 가족들은 고양이 도자기 마을을 둘러 보기로 했다. 예쁜 고양이가 웃고 있는 도자기 종이 그리미의 첫 쇼핑 상품이 되었다.


동생과 나는 두 번째 차를 빌리러 주부국제공항으로 간다. 호텔 밀라고에 부탁해서 도코나메역까지는 차를 태워 달라고 했다. 전철로 두 정거장이니 예상 보다 한 시간 빠르게 차를 빌렸다. 추가비용을 냈다. 이번에는 CEP+NEP+AIP 카드까지 구입을 해서 1만불이 추가로 들고, 보험도 완전 면책으로 올려서 가입했다.


여행비용 중에서 유일하게 증가한 항목이 두 대의 렌트카 비용이다. 80만원을 예상하고 왔는데, 96만원이 들었다. 카드 비용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겠다. CEP는 빌린 시간과 관계없이 날자에 따라 사는데, 나흘이면 7천원이다. NEP와 AIP는 각각 1,500원이다. 나중에 보니 8,500원으로 CEP와 NEP를 구입해서 사용한 차량의 통행료가 9,500원이었으니 절약은 되었다.













 


도코나메 역에서 가족들을 만났는데 모두들 표정이 밝다. 생각보다 아름다운 마을이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단다. 한 시간 반을 걸었으니 짧은 시간이 아니어서 걱정했는데 다행이었고, 내 눈으로 직접 보지 못한 것은 아쉬운 일이었다.


도보여행의 출발점인 마고메로 간다. 시원하게 잘 포장된 고속도로를 달리니 기분이 좋다. 시속 80으로 제한된 속도가 아쉽다. 눈치 보아가며 쌩쌩 속도를 내는 차들도 제법 있는데, 과감하게 따라 붙지를 못하고 화물차 뒤를 졸졸 따라갔다. 운전에는 많이 익숙해졌다. 좌측통행, 좌측통행. 뒷목이 뻐근해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쉬어야 했다.


커피 하나도 뭐가 그리 선택할 게 많은지 어른들 장난감이 자판기다. 아이스커피 두 잔을 뽑고, 이것 저것을 넣어 만든 찹쌀떡과 핫도그, 소프트 아이스크림 등등으로 간식을 즐겼다. 환율에 따라 열 배로 환산을 했더니 비싼 물가가 느껴진다. 앞으로는 환율 계산하지 말고 그냥 원화처럼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자 모든게 저렴했다. 소프트 아이스크림 150원.








어디서 나타났는지 정말로 많은 관광객들이 마고메의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무료 주차장이 제공되는 가게에 차를 세우고 언덕길 아래 위로 펼쳐진 거리를 구경했다. 사과를 드시고 싶다 하셔서 6개 한 봉지를 500원에 샀다. 험한 고갯길을 오르 내리며 탐색을 마치고 도보 여행을 떠나기 전에 점심 식사를 하기로 했다. 점심 정식이 1,250원 정도고 단품으로 먹을 수 있다. 단체 관광객이 많이 오는 식당인 모양이다. 따뜻한 소바와 밥으로 든든하게 식사를 했다.


누가 과연 남을 것인가. 동생과 어머니와 우주신이 남겠다고 자원을 했다. 잘 됐다. 아버지가 우주신을 꼬신다. 할아버지랑 같이 가자. 마음 약한 우주신이 따라 나선다. 어머니가 심심하실 것같다. 우리는 쓰마고로 가는 길을 떠난다. 3시간 정도를 잡아야 하니까 출발이 늦기는 했다. 오후 3시다.


넘어오는 사람들은 제법 있었지만 내려가는 사람들은 없었다. 삼나무 원시림이 그득한 걷기에 참 좋은 곳이다. 지루할 만하면 작은 마을들이 나오고 도로와 차들도 만난다. 깊은 산속이지만 아직도 마을이 살아 있어서 좋았다.


딸랑딸랑. 곰을 쫓는 종을 치라고 한다. 장난처럼 보이는 이 종. 은근히 겁이 나기도 한다. 정말 곰이 있을까.









마고메를 출발지로 한 것은 내리막 중심의 산길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오르는 것이 건강에는 도움이 되지만 연로하신 부모님과 함께 하기 위해서는 내리막길이 좋았다. 마고메의 전망대까지는 30분 정도를 걸어 올라가야 한다. 탁 트인 전경이 좋았다. 저 멀리 설산이라도 하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3천미터에는 만년설이 쌓일 정도는 아닌 모양이다. 눈도 아직 내리지 않았다.


잘 닦여진 돌 계단길을 오르 내리다 보면 어느 순간 빽빽한 삼나무 숲으로 들어가게 된다. 소나무와 참나무로 뒤덮인 우리의 산과는 다르고, 자작자나무로 뒤덮인 러시아의 산과도 다르다. 서늘한 기운이 온몸을 시원하게 감싼다. 내리막이라 느긋하게 경치를 즐길 수도 있다. 늦은 출발이었지만 아직 해는 길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충분히 쉬어가며 움직였다.


유쾌한 할머니 두 분이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며 요거트 아이스크림을 판매하신다. 아이스크림을 한국말로는 뭐라고 하느냐고 묻는다. 아이스크림이라고 했더니 좋아라 웃는다. 아이스크림이 영어라서 한국에서도 그냥 그렇게 쓴다면 깔깔대고 웃는다. 좋은 공기 속에서 저렇게 웃으며 사시니 건강하시겠다.


고구마를 깎아서 햇볕에 말리고 있다. 우리도 산골에서는 저렇게 하겠지만 왠만한 농촌가정에는 고추 건조기가 한 대씩 있다. 대당 백만원이나 하는 비싼 기계지만 고추가루 없이는 살 수 없는 민족이다보니 아낌없이 투자를 한다. 일년에 한 달도 사용하지 못하는 고추건조기의 새로운 사용처가 바로 고구마를 비롯한 과일 건조다. 미세먼지 때문에라도 이제 한반도에서는 자연건조가 불가능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곳 산악지방의 공기는 맑고 깨끗하다. 불과 5년 전의 무일농원도 이 정도로 맑고 깨끗했었는데.











말톡이라는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한 전화기는 산길에서 잘 터지지 않았다. 인가가 있는 곳에서는 인터넷 라인이 들어 와 있어서 통화가 되지만 나까센도(山道)는 제법 깊숙한 산골이다. 전화가 터지지 않고 곰이 나타날 수 있는 산길이다. 위험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 아버지는 종이 나타날 때마다 가족들의 안전을 위하여 뎅그랑 뎅그랑 열심히 종을 울리신다. 나도 산행의 안전을 기원하며 힘차게 종을 울려댔다. 이 정도의 소리에 과연 곰이 도망을 가기는 할까.


마고메에서 출발하여 7km 지점에서 동생과 어머니가 무사히 도착하고 있는 우리 가족을 반긴다. 쓰마고까지는 2km 남짓 남았고 시간은 아직 다섯 시다. 어떻게 할까 하다가 동생의 차량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마고메에 주차해 둔 차량 한 대를 찾으러 가기로 했다. 우주신에게 쓰마고까지의 산행을 하라고 했으나 굳이 차를 타겠다고 한다. 


반대로 세 명의 여성 동지들은 아무 걱정 말라고 자기들끼리 내려갈 수 있다고 한다. 마을이 있고 길도 내리막이어서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긴가민가 하면서도 우주신에게 강권할 수는 없으니 여자들 셋만 내려 보내고 우리들은 꼬부랑 산길을 넘어서 마고메로 돌아가 차를 끌고 다시 쓰마고로 넘어왔다. 한 시간 남짓 걸렸다. 그런데 벌써 도착했을 것으로 예상된 여성들이 보이지 않는다. 


모두 세 개의 주차장을 지나면서도 그녀들은 보이지 않는데, 전화를 하면 그리미는 이미 도착한 것처럼 말한다. 어디로 간 것일까. 해가 져 버렸다. 사방이 캄캄해졌다. 주차장과 마을에는 불켜진 집이 없다.


칠흙같은 어둠 속으로 쓰마고는 사라져 버렸다.










7시 반이 넘어서 기소 다카야마에 도착했다. 지친 몸으로 가이세끼를 먹는다. 먹어야 사니까. 7년 전에 맛보았던 것과는 달리 매우 평범하다.


그녀들은 산속에서 패닉 상태에 빠져 버렸다. 순식간에 찾아온 어둠이 공포심을 자극했다. 멀리서 곰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다시 돌아가자. 안내도를 보고 내려가자. 구글지도에 보이는 것처럼 큰 길을 따라 돌자. 불꺼진 산간 마을에서 잘 터지지 않는 전화기에 의지하여 길을 찾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지도에서 보이는 지름길을 따라 내려갔더니 갑자기 마을은 사라지고 논이 나타난다. 논은 곧 자연이고, 알지 못하는 자연은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악쓰고 소리치며 다시 안내판으로 돌아가서 큰 길을 따라 내려와 먼 길을 돌아 제1주차장에 도착했다. 그 때 내 차의 불빛이 그녀들과 만났다. 곰이나 악한의 습격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의 시간이 지나갔다.


또 다른 차에서는 며느리와 딸을 기다리던 어머니의 심장이 오그라 붙었다가 펴졌다. 그 후로 삼십 분 정도의 산길 여행은 평안했고 숙소도 금방 찾았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마트에 가서 사케와 맥주를 사다가 편안한 자세로 회식을 했다. 누나는 앞으로 그리미 말을 잘 듣겠다고 한다.


아버지는 너무 피곤하셨지만 나카센도를 무사히 완주하셨다는 기쁨에 9시도 되기 전부터 주무시기 시작한다. 어머니는 살아 돌아온 딸과 함께 작은 온천에서 시원한 목욕을 하시고 편안히 주무신다.


파란만장하게 길었던 하루가 무사히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