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 오랜만에 헤르메스를 타고 안양천 도로를 따라 지지대 쉼터까지 올랐다. 엉덩이가 조금 아팠지만 견딜만 했다. 9,812km에서 다시 스포크가 부러지는 바람에 삼천리자전거 의왕공장에서 전체 스포크를 교체받았다. 다시는 부러지지 말았으면 좋겠으나 희망대로 되지는 않으리라.
땡볕에서 마음이를 몰고 농원에 도착했더니 조금 피곤했다. 그래도 지난 일주일 동안 큰어머님상을 치르느라 비운 시간을 보충해야 했다. 일 하기 참 좋은 날씨다. 낫 한 자루 들고 논둑을 슬슬 거닐다가 거슬리는 키 큰 풀이 있으면, 벼숲을 헤치고 들어가 베어내어 냇가에다 버려 버리면 된다. 논바닥이 바짝 말라 있어서 장화를 신고 걸어도 빠지지를 않으니 일하기가 더욱 좋다.
온 논을 덮은 듯한 풀들은 슬슬 일하는데도 금방 자취를 감춰버린다. 풀 때문에 농사를 망칠 것으로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허장성세. 너무 자주 내린 비로 벼꽃이 제대로 피지를 못해서 쭉정이가 많다. 벼 재해보험도 들지 않았는데. 그래도 논에서는 구수한 밥냄새가 나고, 누렇게 익어가는 벼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똑바로 서서 익어주면 참 좋은데, 굳이 고개를 숙여서 겸손해하니 쓰러질까 염려된다.
논에는 피는 거의 없고 여뀌가 많다. 잘 뽑히고 벼에 큰 피해를 주지 않는 것같아 다행이다. 그러나 시기를 더 늦추게 되면 여뀌가 쓰러지면서 벼포기도 같이 쓰러질 염려가 있다. 그동안 서로 의지하며 비바람을 잘 이겨냈지만 이제 씨앗이 다 여문 여뀌들은 땅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벼는 앞으로도 스무날은 더 서 있어야 하므로 누워서는 안된다.
마치 갈대와 같이 커다란 풀이 몇 개 자라났다.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만일 뿌리가 성하는 것이라면 내년 농사에 큰 영향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일단 베어 내었지만 무엇인지 알 수 없으니 약간 불안하다. 한 달 전에 고라니가 와서 뭉개었던 벼들은 다 말라 죽었다. 다행스런 일은 그 후로 더 이상은 고라니들이 벼들을 뭉개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또 어떻게 된 일일까. 마을 주변에서 뻥 뻥 카바이트 기체 터지는 소리가 나니까 놀래서 다른 동네로 도망을 간 것일까. 화요일 밤에 향악당에 다녀올 때 고라니 한 마리를 보았으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스무 날이면 긴 시간이다. 뾰족한 대안은 없다. 카바이트 폭탄을 가져다 놓을까. 이번 주에는 꼭 알아봐야겠다.
풀의 정치학 : 인해전술. 일단 뚫고 본다. 포기하지 않는다. 살짝 기대어 자란다. 피아 구분을 못하게 한다. 나중에 피고 먼저 결실을 맺는다.
작물의 정치학 : 인간을 쉬게 하지 말라. 약간 과하게 자라라. 희망을 주어 포기하지 않게 하라. 나를 드러내라. 기쁨을 주어라. 모든 노고를 잊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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