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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뽀송뽀송해서 살겠다_고통은 잊고 생존을 지향한다_170829, 프또르닉 вторник

어제 새벽 1시 반까지 여행 계획을 짜느라고 늦게 자고, 새벽에는 추워서 깊은 잠을 자지 못하고 뒤척였다. 일어나서 옷도 입고 이불도 제대로 덮었으면 개운하게 잤을텐데, 졸려서 그냥 누워 있었더니 피로가 더하다. 억지로 일어나서 바질 페이스트에 토스트 한 조각을 먹고 나서 눈을 좀 감고 누워 있었더니 논으로 나가신 아버님이 걱정이 되셨는지 얼른 나가 보라고 하신다.


옷을 갖춰입고 논으로 간다. 바람이 서늘해서 뜨거운 햇살이 느껴지지 않는다. 9시가 넘었는데도 말이다. 펌프 두 개를 떼어내고 배수로를 낮추고, 논가의 풀을 좀 뜯어내었다. 그래도 여전히 풀은 많다. 벼가 완전히 고개를 숙이고 나서야 제초 작업을 할 수 있다. 벼꽃이 피는 동안 계속해서 비가 내렸기 때문에 수분이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제대로 여물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벼의 생명력은 강하다. 우렁이 망까지 거두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내년에 이것들을 다시 쓸 수 있을까. 자동 폭음기를 설치하면 오리들의 침입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난 봄 여름의 고통은 벌써 잊혀지고 새로운 희망으로 뱃속이 든든하다. 뽀송뽀송한 대기와 할 일 없는 여유로움이 다시 농사일에 대한 자신감을 불어넣는다. 고통보다 생존이 우선인 모양이다.

음성으로 가는 자전거에 힘이 실린다. 거의 한 달 만에 자전거를 타는데, 그렇게 팍팍하고 힘들었던 길이 가볍고 상쾌해졌다. 인간은 자연을 극복하였지만 농부는 여전히 대자연의 운행에 몸과 마음이 지배되고 있다. 반장을 아침에 만났는데, 무너진 길을 복구하러 포크레인을 몰고 가는 얼굴에 엷은 미소가 번진다. 바로 앞에 망쳐진 2천여평의 논이 있지만 개의치 않는다. 대자연에 묻혀 살지만 시련에 무릎 꿇지는 않는다. 저 미소가 되어야 하는데. 배워야 한다, 실패에 연연하지 않는 느긋한 모습을.

쥐똥나무 울타리 정리 작업을 시작했다. 어깨에 멘 예초기가 가볍다. 30분 정도 작업을 하고 일단 철수. 가벼운 노동은, 온몸으로 땀을 쏟아내며 마음을 즐겁게 한다. 광해를 몰아낸 인조반정의 서인들은 이런 노동의 기쁨을 알까. 

광해는 세자로서 아버지 선조를 대신해서 전국의 의병과 승병과 관군을 지휘해서 임진왜란을 극복해냈다. 그는 임란의 극복이 백성들의 힘이었다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왕위에 오르게 되자 백성들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을 찾았다. 공납의 폐해를 없애기 위해 대동법을 실시하기로 했다. 서인들이 악다구니를 쓴다. 폭군이라고. 대대손손 먹고도 남을 재산을 쌓아놓고도, 국곡투식하려는 욕심은 끝이 없다. 폭군을 몰아냈다고 하나 개인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민생을 거덜내고 국책을 왜곡했다. 인조반정은 부패한 관료들이 작당하여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이었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전쟁에 나서기는 커녕 도망가기 바빴던 그들의 주장은 공허하기만 하다. 공직자의 비리와 부패는 국가와 민족에 대한 반역 행위다.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다. 공직자들이 재산을 공개할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그들이 가난뱅이가 아닌 것은 좋으나, 신고 재산이 10억이 넘는 게 기본이다. 신고 자산이 그 정도라면 실 자산 가치는 그보다 최소한 2배는 되지 않을까. 지나치게 재산이 많다. 국곡투식의 개연성이 뚜렷하다. 사철가의 표현대로라면 때려죽일 일이다.

국곡 國穀 : 나라에서 소유하고 관리하는 곡식
투식 偸食 : 관청 이나 곡식 훔쳐먹음         [다음사전에서]

노동은 적당히 해야 한다. 한 시간이 넘도록 쥐똥나무 가지치기를 했더니 진이 빠진다. 두 시간 동안 적당히 쉬면서 했다. 다 끝내지 못했지만 내일은 비가 내리지 않는다 하니 내일까지는 끝내고 논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