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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천국/러시아여행_바이칼에서 블라디보스톡

사과 한 마디 없이 친절한 그녀와 블라디보스톡 아르바트 광장의 아코디언 소년_170808 프또르닉 вторник

오전 9시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했다. 두 번의 기차 여행으로 정시 운행이 된다는 믿음이 있었는데 특별한 상황이 발생했다. 우수리스크에서 블라디보스톡으로 가는 길 곳곳이 밤새 쏟아진 폭우로 잠겨 버렸다. 기차는 천천히 달렸고, 어떤 곳에서는 오랜동안 서서 대기했다. 무려 두 시간이  연착되어 11시가 넘어서 도착했다. 하늘은 맑고 푸르렀다. 잘못했으면 화장실 앞에 놓아둔 충전기와 노트 10.1을 두고 내릴 뻔 했다. 호텔을 찾으려면 노트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 순간 충전중이었다는 사실이 떠오른 것이다. 필요한 것을 가지고 다니면 절대 잊어버릴 일이 없다.









기차에서 내려 시베리아 횡단 열차 기념탑을 찾아서 역광장을 오르내렸다. 중앙 플랫폼에 설치되어 있기 떄문이다. 역시 하늘이 맑아서 사진도 잘 나오고 기분도 한결 상쾌해졌다. 12시가 다 되어서 역을 빠져 나왔다. 손에 손을 잡은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유여행을 다닌다. 가족 여행객들도 많이 볼 수 있어서 반가웠다. 몇 년 사이에 여행 방식에 많은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방송에서는 과거와는 반대로 패키지 여행을 홍보해야 할 정도가 되었다. 중국은 단체 관광객들이 어마어마하게 떼를 지어 다닌다. 






우리 숙소는 아르바트 광장 바로 앞이다. 멀쩡해 보이는 건물의 뒤로 들어가면 공사판이 벌어진 마당 앞의 오래된 건물이다. 캐리어를 끌고 십여 분 광장을 향해 갔다. 길 건너로 율브린너 동상이 보인다.


숙소 주인장이 오기를 기다리며 식사할 곳을 찾아 보기로 했다. 광장 반대 쪽 골목으로 쭉 전진해 보지만 음식점은 보이지 않는다. 길 가는 아가씨를 붙잡고 물어 보았다. 조그맣고 맛있는 음식점을 찾고 있는데, 도와줄 수 있느냐고. 왜 작은 음식점이냐고 되묻는다. 평화롭게 먹기 위해서라고 답한다. 이리 저리 엄청 고민을 하더니 쇼콜라를 소개해 준다. 고맙다며 이름을 물었더니(까끄 바스 자붓 как вас зовут), 뭐라뭐라 길게 답을 했는데, 도저히 알아 들을 수가 없다. 그냥 쏘냐나 나타샤, 그런 이름이면 좋겠는데 말이다.


그 후로도 십 여 분을 더 기다려서야 숙소지기 그녀가 나타났다. 미안한 기색도 없고 친절한 미소도 없다. 우리 앞의 손님들은 여섯 분이 이곳에 묵었던 모양이다. 숙소 앞에서 진을 치고 체크 아웃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까지 열 명이 좁은 현관에서 우글거리다가 그녀의 불친절한 등장으로 정리가 된다. 어쨌든 숙소는 좋았다. 에어컨이 잘 돌아가고 있었고, 시트도 빨아서 거실 한 쪽에서 잘 말리고 있었으니, 다른 사람이 쓰던 시트를 재활용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됐다. 수건도 얼마든지 쓰고 빨아두면 될 것이다.



위 건물이 블라디보스톡 역 바로 옆의 공항으로 가는 기차역 전용 플랫폼이다. 짐도 맡길 수 있고, 쾌적하다.








일단 트립 어드바이저의 음식점으로 갔으나 찾지 못하고, 그녀가 가르쳐 준 쇼콜라로 갔다. 또 다른 그녀의 친절한 안내에 따라 이것 저것 주문해 보았다. 그릇 모양이나 분위기가 좋았다. 메뉴에 커다랗게 나온 비프 스테이크 메뉴를 주문했는데, 엉뚱한 음식이 나와서 그녀에게 물었더니 메뉴판이 틀렸단다. 사과 한 마디 없이 친절하다. 러시아 음식은 대체로 무난하다. 2천 py이 넘었다. 다들 배를 가득 채우지 못했지만 많이 먹지 않는 사람들이라 큰 문제가 없었다.







아르바트 거리를 지나 해안가에 도착하니 소년이 아코디언을 켜고 있다. 헝가리 무곡. 좋다. 박수도 쳐 주고 동전으로 격려도 해 주었다. 버스킹도 젊은 친구가 해야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이 나이에 버스킹을 하고 앉아 있으려며 뭔가 특별한 기획이 필요하다. 유기농 고추나 감자, 땅콩이라도 가지고 나가야 할 것이다. 해볼까.















매우 인상적인 마리아와 예수의 모습이다. 평범하면서도 고통받는 삶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본래 신은 남다른 존재이겠지만, 이 세상을 살다간 조상님들이나 예수 그리고 마리아는 인간의 삶을 그대로 사신 분들이니 삶의 모습도 편안하지 않은 것이 보기에 편안하다. 가까워진 느낌이다.







유원지의 모습은 똑같은데 사람들만 바뀌었다. 한 바퀴를 돌아 쇼핑센터로 가서 이것 저것 먹을 것을 사서 돌아와 숙소에서 쉬었다. 잠시 쉬다가 러시아 대게를 먹어 보기로 했다. 발바닥이 불이 나도록 다시 해양공원으로 갔는데, 45일 동안 공사를 할 예정으로 어제 문을 닫았단다. 해변을 한참 돌아서 대게 파는 곳을 발견했다. 게살 발라 놓은 것 1kg을 1,700py을 주고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쫄깃한 식감을 느끼며 맛있게 먹었다. 아쉬웠던 모양이다. 대게를 가위로 잘라가며 먹지 못해서. 또 기회는 있을 것이다.


숙소의 풍경은 공사판이다. 창문을 열고 내다 봐도 그렇다. 그래도 편안하다. 9시가 넘었는데도 앞마당의 공사는 끝날 줄 모른다. 사이더와 웨하스 몇 조각을 들고 내려 갔다. 우크라이나에서 온 노동자들로 야근 수당이 제법 짭짤해서 밤늦게까지 일한다고 한다. 땡볕에서 일할 때 절집에서 가져다 주는 음료수가 참 시원하고 맛이 있었다. 그들도 그렇다고 한다. 그 중 한 사람은 한국어로 인사를 할 줄 알았다. 같은 동포끼리 의지해서 즐겁게 일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그들도 6시간 노동으로 잘 살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