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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천국/러시아여행_바이칼에서 블라디보스톡

블라디보스톡에서 인천으로, 까마득한 옛일이었다_그녀의 집에서 샤슬릭과 청어를_170811 пятница 뺘드니쨔



러시아의 길들은 포장되어 있지 않고, 포장이 되었더라도 아주 많이 손상되어 있다. 그런 험한 길 저 위에 우리 숙소가 있고, 그 길을 내려 오면 어떤 표지판도 없는 버스 종점이 있고, 그 종점에서 얼마쯤 기다리면 이토록 낡은 버스를 탈 수 있게 된다. 한국에서 중고차로 건너온 지 십년은 되었을법한 버스다. 잘 달린다.





잘 잤는데도 눈은 9시가 넘어서야 떠진다. 느긋하게 일어나서 차를 끓이고, 어제 남겨둔 버터를 팬에 두르고 그리미가 잘라준 빵을 네 조각 굽는다. 치즈와 크림치즈, 쨈으로 맛을 내서 잘 먹었다. 12시. 막심을 부르기 전에 교통상황 점검. 두 정거장만 밀리고 기차역까지 원활. 버스(21py 드밧쨔찌 아진 двадцать один)를 타기로 했다. 낡디 낡은 버스(автобус 아프토부스)에 오른다. 기사분은 샤슬릭(шашлык) 한 꼬치와 빵 두 개로 점심식사를 한다. 버스의 운전석에서. 자본주의 상황에서 가난한 사람은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다. 부의 크기가 더 커지기 전까지 그의 점심 식사는 이렇게 계속될 지도 모른다. 중국의 자본주의 발전 과정을 보고 있으면, 러시아의 자본주의도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풍요로운 시베리아를 바탕으로. 미래를 낙관하는지 그의 표정은 편안하다.


기차역(바그잘 вокзал)에 내려서 짐을 맡기기로 했다. 아무런 안내도 없지만 열차 내릴 때 보아 두었던 곳이다. 미리 알아둔 정보가 오히려 시간을 낭비하게 만들었다. 열차 탑승장까지 내려가서 길게 늘어선 줄 뒤에 서서 기다리기까지 40분. 짐 찾을 때도 이런 상황이라면 끔찍하다. 직원은 혼자서 차분하게 일을 잘 한다. 보고 있는 우리가 답답할 뿐이다. 짐을 들고 나갔다. 40분이 아깝기는 했지만. 560py(삣솟 쇠지샷 루블리  Пятьсот шестьдесят рублей)로 카페에 가서 쉬면서 한 사람이 짐을 지키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공항철도 역으로 한 번만 더 가 보기로 했다. 아무런 안내 표지판도 없었는데, 짐을 맡아준단다. 게다가 가격도 400py. 정말 불친절하지만 있을 것은 다 있는 러시아다.


혁명광장의 주말 시장으로 갔다. 그 넓은 광장에 하루밤 사이에 천막이 꽉 들어찼다. 빵과 꿀과 농산물, 수산물, 공산품 등 다양한 상품이 판매되고 있었다. 먹거리를 파는 곳은 매우 적고 기대와는 달리 샤슬릭을 굽지도 않는다. 장 구경 잘 하고, 굼 백화점으로 두 명, 그녀의 집으로 두 명이 가기로 했다. 샤슬릭과 보르쉬까지 오늘은 판매한다. 사람이 제법 많다.





밀납으로 만든 나비 무늬 양초. 양봉가들이 짧은 여름을 열심히 일한 결과물이다. 고사리와 김치를 사다 먹어봤다. 식물들이 비슷하게 자라고 있어서 먹는 것도 비슷하다. 화끈하게 매운 음식이 없다는 것이 아쉽다. 감자는 정말 싸고 맛있다. 1kg에 35py(700원). 예쁘게 키운 화분을 내놓으신 할머니는 자꾸 사가라고 하시는데, 비행기를 타야 하니 불가능했다. 이런 꽃을 만들어낼 수 있는 농부가 되고 싶다.









트립 어드바이저 평점 3점. 맛은 있으나 불친절. 냉장고에 둔 음식을 꺼내 준다. 너무 늦게 가면 안팔리고 남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 상관없다. 사흘의 도전 끝에 샤슬릭(шашлык / barbecue)과 보르쉬(борщ) 까지 잘 먹었다. 맥주(пиво 삐바)는 두 잔 값으로 세 잔. 파이(пирог 삐로그) 한 접시, 1,640py(Тысяча шестьсот сорок рублей 띄샤쨔 쇠솟 사록 루블리. 이렇게 긴 발음을 실제로 발음하는 그들의 인내심이 놀랍다. 엄청 빨라서 알아 듣기도 힘들다. 계산기를 동원한다). 그녀는 전혀 미소를 보이지 않는다. 저렴하고 맛있게(вкусно 브꾸스나) 잘 먹었다. 그녀의 가게 덕분에 더 이상의 현금 인출이 없어도 러시아를 떠날 수 있다. 


그녀의 불친절한 서비스를 받으며 점심 겸 저녁 식사를 끝내고 나오니, 리코더 버스킹을 하시는 분을 만났다. 아, 저게 가능한 것이구나. 그의 리코더는 은은하고 좋았다. 헝헝가리 무곡은 음역대의 문제로 불가능하다고 한다. 대부의 주제가를 혁명광장 앞 거리에서 들으니 잘 어울린다. 실내에서 빽빽거리며 부는 것과는 다르다. 좋은 무대 역시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있다.







그나저나 이 예술가는 돈이 궁해서일까 공연의 즐거움 때문일까. 강주미 클라라가 7월 27일에 공연한다는 포스터가 크게 붙어있다. 그녀의 파가니니아나는 정말 아름다운 연주다. 어렵겠지, 그 정도 수준까지 되려면.












율브린너 동상은 멀리서 볼 때는 초라했는데, 가까이서 보니 제법 크면서 친근감 있게 잘 만들어 놓았다. 아이들은 그를 모른다. 주변으로 꽃을 잘 가꿔 두었다. 보기에 좋다.

레닌 동상  아래의 슈퍼마켓에서 부모님께 드릴 과자를 한 박스 사고, 그린필드의 차도 네 박스 샀다. 두고 두고 먹으면 될 일이다. 케밥을 한 번 더 먹으려고 했는데, 배가 든든해서 그냥 가기로 했다.









공항철도는 시원하고 쾌적했다. 넷이 짐을 잔뜩 싣고 타기에는 조금 좁기는 했지만. 외곽 지역에 사는 사람들도 이 열차를 많이 이용하는 모양이다. 많은 사람들이 타고 내린다. 하루에 다섯 편만 운용된다는 것이 단점이다. 공항이 작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공항에 너무 일찍 도착해서 남은 돈을 쓰는데, 먼저 아메리카노 큰 것 300py. 아이스크림 3스푼 300py. 펩시 콜라 85py. 과자와 음료수 250py. 환전해 온 모든 돈을 다 털었다. 출국 수속은 간단하고 신속했다. 사람이 적으니 혼잡하지도 않아서 직원들도 승객들도 모두 편안한 모습이다. 역시 사람은 여유가 있어야 한다. 사지 못한 보드카 때문에 아쉬웠는데, 그리미가 두 병 사잔다. 생각보다 비싸지는 않다. 1리터에 1,100py.

아, 보름의 여행이 아쉽게도 끝났다. 이르쿠츠크 공항 앞에서 헤매이던 생각이 난다. 23시가 넘어 가면서 4번 틀로리 버스는 오지 않고, 말 통하는 사람은 없고, 덥고, 등등. 까마득한 옛일이었다.

부천으로 돌아오는 7001번 열시 반 마지막 버스는 넓고 쾌적했다. 여행은 사서 고생이다.


공항에서 우주신이 빼 먹으려다 걸린 과자 한 봉지. 돈 버리기가 아까워서 돈을 더 넣고 과자 한 봉지를 더 주문했더니 다행이 밀고 나온다. 두 봉지가 되었다. 부천에서 보드카 칵테일 안주로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