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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천국/러시아여행_바이칼에서 블라디보스톡

놀지 못하면 폭동이 일어난다_ 블라디보스톡 마약에서 안중근 대장의 굼까지_170810

해무가 가득하다. 7시 반. 해돋이는 볼 수 없다. 조국의 유튜브. 노르가즘에서 시작하여 김광석과 산울림을 거쳐 빅토르 최로 끝냈다. '헌법의 상상력'을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미국은 부당한 세금에 대한 반발에서 독립의 기운을 축적했고, 홍차로 독립의 방아쇠를 당겼다. 세금은 먹고 사는 문제였다. 그다지 먹고 사는 문제가 어려웠을 것처럼 보이지 않는데도, 강력하게 반발했다. 개척자들은 인디언들을 죽이거나 동물원에 가두는 방식으로 몰아내고, 노예노동을 통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한다. 그런 그들이 프랑스와의 7년 전쟁으로 피폐해진 영국 정부의 세금 인상에 반발했다. 먹고 사는 문제 같지는 않았지만 먹고 사는 문제였던 모양이다. 독립전쟁이 끝나자 마자 독립전쟁의 영웅이 과도한 세금과 채무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며 반란을 일으킨 일도 있다. 그리고, 홍차 문제. 이것은 놀이의 문제다. 홍차를 마시든 마시지 않든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 놀잇감이 없어지는 것이 목숨을 걸고 싸울만한 일인가. 미국 독립전쟁사에 의하면 분명히 문제가 되고 무력 충돌이 발생하며, 전쟁으로 이어진다. 인간을 놀게 하지 못하면 가장 최대로 반발하는 모양이다. 놀기 위해서 일한다는 말이 맞다.


놀기 위해 아침을 해결하기로 했다. 물을 끓여 커피를 내리고, 계란 후라이를 만들고, 버터로 식빵을 구웠다. 그리미가 오이와 치즈, 살라미를 썰어서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크림 치즈에 딸기쨈까지 동원한 아침 식사가 맛있게 잘 마무리 되었다. 오전 11시에 마약으로 가는 물길이 열린다고 하니 오전은 마약에서 놀기로 했다. 오후에는 굼(гум)으로 가서 안중근 참모중장이 이토오 히로부미를 사살하는데 사용한 권총을 샀다(사실일까 궁금하다)는 곳을 돌아보기로 했다. 일단 계획은.


"(안중근 참모중장은) 1909년 3월 2일 노브키에프스크에서 함께 의병활동을 하던 김기룡·황병길·강기순·유치현·박봉석·백낙규·강두찬·김백춘·김춘화·정원식 등 12명이 모여 단지회(斷指會:일명 단지동맹)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했다. 그는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기로 하고 3년 이내에 성사하지 못하면 자살로 국민에게 속죄한다고 맹세했다." (다음 백과사전 중에서)


수영을 할 준비를 단단히 하고 마약으로 갔다. 사람이 매우 적었다. 오늘은 가장 시원한 날이다. 하루 종일 22도를 넘지 않는다. 해도 구름에 완전히 가리워져 있다. 그래도 비키니를 입고 선탠을 하는 이들이 있다. 바다 색은 아름답지 못하다. 파란 물이 넘실대는 가운데 하얀 등대가 서 있고, 물길이 열린다면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그렇게 상상해 보았다. 등대 주변에서 수영도 하고 뜨거운 차도 마시면서 놀다가 다시 크랩 식당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2kg을 주문하고 맥주 한 잔을 샀다. 3,350py. 맥주 한 잔을 서비스로 달라고 했더니 알았단다. 천천히 맛있게 먹고 마시고 나서 계산을 하려고 했더니 맥주 한 잔 값을 더 내라고 한다. 다시 처음부터 영어와 한국말을 섞어서 두 번을 설명했더니 알겠단다. 셰르비스란 말이 공짜라는 말로 통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집까지 비틀비틀 걸어서 돌아왔다. 바닷물 속을 얼마 헤매지 않았는데도 꽤 피곤했던 모양이다. 샤워하고 한 잠을 더 잔 다음에 시내로 출발했다. 막심을 부르려다가 시간 여유도 있고 하니 버스를 타기로 했다. 완전 웃기는 상황. 모든 차들이 일렬로 늘어서서 서 있다. 기차놀이를 하고 있는 상황. 다행이 덥지 않아서 견딜 수 있었다. 걸어가는 시간 보다 더 늘어졌다. 낡은 버스에 앉아서 졸았다. 그래도 끼어드는 차량에게도 양보하고 참을성 있게 기다린다. 누군가가 기다리는지 북한 동포만 계속 초조하게 차가 움직이기만 재촉하고 있다. 어렵게 한 시간이 넘어서서야 기차역에 도착했다.


내일 출발하는 기차표를 예매했다. 오후 4시가 우리가 탈 수 있는 가장 늦은 시간의 열차였다. 쾌적한 공간에서 표는 팔고 있었지만 차 시간 안내는 조그맣게 근무 시간 안내는 커다랗게 붙여져 있었다. 이해하고 보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은데, 한참 동안을 이 두 가지 시간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고민해야 했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도 얼굴 표정이나 시스템은 매우 딱딱해 보인다.


어디로 갈까. 혁명광장으로 가는 걷기 길이 있다. 기차길 위를 지난다.




위의 시간표는 블라디보스톡 기차역에서 공항으로 아래 시간표는 블라디보스톡 공항에서 기차역으로 되돌아 오는 시간표다. 이용객이 적어서 하루 다섯 편만 운용한다. 비행시간에 여유있게 움직여서 여유 있는 공항의 여유를 즐기며 여행을 정리하는 즐거움이 있기는 하다.



귀국준비를 마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철로 위로 연결된 이상한 길을 따라 혁명광장으로 간다.





500py에 군인 모자를 팔고 있는 그를 피해서 잠수함을 돌아볼 즈음.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화장실을 찾아야 했다. 그런데, 묘하게도 한국 관광객들이 화장실을 가겠다며 공원 위쪽으로 간다. 어제 그리미가 저 건물은 뭐냐고 물었는데, 다리가 아파서 그곳까지는 걸을 수가 없어서 화장실이라고 둘러 댔었다. 그곳이 정말로 화장실이었다. 깨끗이 관리되고 있었고, 무료로 개방되어 있었다.






꺼지지 않는 혁명의 불꽃으로 죽은 모든 이들의 영혼을 기억하게 한다. '백학'이라는 노래에서처럼 그들은 추운 겨울에 하얀 학이 되어 돌아오는 모양이다. 교회도 세워서 그들의 영혼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게 하고,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켜 많은 이들을 찾게 한다. 이런 추모 공원이 삶터의 한 가운데 있다는 것이 좋다. 망월동 민주화 묘지도 그렇고, 4 19묘지도, 이천 민주주의 묘역도 삶터와 너무 멀어서 그들의 희생이 남의 일처럼 여겨진다. 우리가 누리는 현재의 자유와 평화를 만들어 준 분들인데 말이다.






예쁜 십자가와 고맙고 깨끗한 화장실 -




굼 백화점 지하는 역사의 현장이었고, 그 위층에서는 당근 크림이 싹쓸이 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도 약간 싹쓸이하고 골목 투어에 나섰다. 새로운 것들은 특별히 아름답지 않아도 좋고, 조금만 눈에 띄어도 마음이 즐겁다. 










저녁은 간단하게 기차역 앞의 노점에서 케밥을 사서 먹었다. 동방지역의 케밥은 어디에서 파는 것이든 전부 고소하다. 다행스럽다. 레닌 동상의 가로등불 아래서 경찰들과 경찰견의 호위를 받으며 먹었다. 더욱 맛있었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서 유튜브를 통해 조국의 소식을 들었다. 김정은과 트럼프가 한반도를 주제로 말전쟁이 심했다. 핵과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장난들을 치고 사는 게 정치인지 한심스러운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나라의 대표라는게 믿을 수가 없다. 쫓아내야 한다. 박근혜처럼.







오늘도 허름한 그녀의 집에 들렀다. "샤슬릭(шашлык)" "니옛(нет)". 매우 딱딱한 얼굴이다. 그런 표정을 계속 짓는 것도 어렵지 않을까. 웃지 않으면 불편한데 말이다. 그녀의 집에 샤슬릭이 없으면 기차역 앞에서 케밥을 사 먹기로 가족들과 합의해서 발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