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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논바닥이 붙잡고 놔주지를 않는다_170614, 星期三 среда

책도 봐야 하고 헝가리 무곡 연습도 해야 하는데, 1,400평 논이 붙잡고 놓아 주지를 않는다. 6월(쉬예슷 шесть ) 14일이니까(치띄르나쨔찌 четырнадцать) 논을 메기 시작한 지 14일이(치띄르나쨔찌 четырнадцать) 되었고, 실제 작업일을 보면 6일 정도 된다. 작년 같으면 6일이면(쉬예슷 шесть) 벌써 끝이 보이고 10 작업일(지샤찌 десять)이면 깨끗한 논을 감상하고 있어야 하는데, 아직도 할 일은 많다. 흠. 5년(뺘찌 пять)전 오리를 넣어 놓고 암담한 풀메기 작업을 할 때와 비슷한 상황이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논의 일부는 우렁이들이 작업을 하는 모양이다. 풀이 심하지가 않다.


계획은 메벼논을 들어가는 것이었는데, 물꼬를 트러 가느라고 흑미논에 갔다가 눌러앉아 작업을 시작했다. 햇살이 등을 뜨겁게 달구다가도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서 노동의 피곤함을 날려준다. 바람 덕분인지 하늘은 볼 만했고, 허리를 펼 때마다 큰 위로가 된다. 3, 4월은 우중충한 하늘 때문에 정말 우울했었다. 이제 시골에서도 맑은 하늘은 볼 수 없을 것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5년(뺘찌 пять) 동안 논일을 하면서 많은 위로를 받았다는 생각이 새삼 든다.


흑미논은 논 전체가 상태가 좋지 않았다. 워낙 수평을 빨리 잡는 바람에 로터리 치는 시간이 매우 짧았기 때문일 것이다. 마침 풀의 길이도 작업하기 딱 좋은 상태여서 이리저리 발을 옮겨가며 무난하게 작업을 이어갔다. 이런 단순 노동을 하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아드레날린의 분비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분이 좋아질 이유가 없는데 마음이 즐겁다. 거참, 신기한 일이다.


작업복을 갈아 입다가 갑자기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다. 논까지 달려가는 것이다. 운동도 되고 이동 시간을 줄일 수 있겠다 싶었다. 오랜 만의 달리기니까 천천히 달려 보았다. 1 km도(아진 один) 안되지만 달리는 재미가 있었다. 일을 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놀러 가는 기분이 들었다. 일하는 시간도 즐거웠다. 일을 마치고 다시 달려왔다. 속도도 조금 높였다. 일이 힘들어서 달리지 못할 줄 알았더니 구부러졌던 허리가 펴지면서 새로운 힘이 솟아났다. 좋은 생각은 즐거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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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쉬예슷 шесть) 15일(삐뜨나쨔찌 пятнадцать). 아침 저녁으로 흑미논을 중심으로 찰벼논과 메벼논을 기어 다녔다. 달리기를 통해 일하는 즐거움을 조금 가미한 것이 도움이 되었다. 만일 풀을 잡는데 실패한다면 기계를 한 번 돌려야 할 것이다. 기계를 돌리는 일도 쉽지 않고, 뒷처리도 만만치 않아서 썩 즐거운 일은 아니다. 


고추에 줄 농약을 사왔다. 고추 농사는 짓고 싶지 않은데, 120만원이나 주고 산 고추 건조기를 사용해야 한다는 두 분의 뜻이 워낙 강력해서 어쩔 수 없이 농약을 뿌리며 짓고 있다. 진딧물약, 나방약, 탄저병약 등 3가지를 3만 6천원에 사왔다. 메주콩에도 약을 줘야 한다. 메주콩도 심고 심지 않지만 메주도 만들지 못하는 농부가 어디에 있느냐는 두 분 말씀을 거역하기 어려워 모른 체한다. 다만, 농약을 뿌리는 일을 여든이 넘으신 아버지가 하시는 것을 보니 가슴이 아프다. 힘드시니 반 말 씩만 지고 가시라 해도 기어코 한 말을 지신다. 메주콩과 고추만 포기하면 농약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 있다.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올 것이다. 


매화나무에 매실이 잘 열었으나 온통 벌레를 먹어서 제대로 먹을 수가 없다. 매실 장아찌를 해서 먹어야 하는데, 농약을 치지 않으니 열매들이 견디지를 못한다. 개복숭아와 모과나무도 마찬가지다. 흠. 공생이 과연 가능할까. 우리 논의 우렁이도 야생 오리들이 와서 잔치를 벌인 것으로 거의 확인이 되었다. 올해 처음으로 왔지만 앞으로는 매년 올 것이다. 맛있는 우렁이가 우리 논에 넘쳐 난다는 것을 오리들이(утка 웃까) 알았기 때문이다. 밤새 지키고 있어야 할까. 폭약이라도 터뜨려야 하는 것일까. 이래도 공생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접어야 하는 것일까. 생존에 대한 자연의 집착은 어린 고양이마저도(Кот 꼿) 폭력적으로 만든다. 

백련초가 노란 꽃을(цветок 츠비똑) 활짝 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