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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불놀이야, 외롭지 아니한가_170320

지지대 쉼터 휴게소까지 오는데, 자전거 여행을 즐기시는 분과 함께 오게 되었다. 자전거를 타면서 이야기를 나눠야 하니 깊은 이야기는 나눌 수 없었지만 공감이 되는 이야기가 많았다.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하면 많은 것을 보게 된다. 비싼 자전거를 사는 것보다는 중고로 저렴하게 성능 좋은 자전거를 사서 잘 관리하면 된다. 추위도 이기고 열심히 타려고 노력한다. 가족과 함께 한다. 해외여행도 자전거로 한다 등등. 언제나 홀로 타다가 벗과 함께 타고 오니 운동은 덜 되지만 외롭지 않게 30분 정도를 라이딩했다. 


점심을 먹고 산소밭으로 갔다. 지난 주말동안 날씨가 좋아서 두 분이 열심히 비닐과 부직포를 벗겨 놓으셨다. 이틀에 걸쳐서 하셨다고 하니 힘든 일을 하셨다. 덕분에 나는 밭에 쌓여있는 가지들을 태우는 일만 하면 된다. 이 일도 두 분이 하시려면 힘드시겠지만 그나마 노동강도가 떨어진다.


혹시나 불이 날 수도 있는 상황이니 물통에 물을 한가득 받아두고, 먼저 천천히 참깨대를 태웠다. 기름기가 많은데다 겨울동안 잘 말라서 엄청나게 불이 타오른다. 조금씩 가져다 태워야겠다. 신문지 한 조각으로도 불이 붙을 정도니 매우 위험하다. 불 태우기가 어느 정도 안정감이 생겼다. 그래서 불을 한 군데 더 만들어서 양쪽에서 태우기로 했다. 300평 남짓 되는 밭에서 나오는 참깨대와 콩대가 제법 되기 때문에 한 군데서 천천히 태우다가는 밤을 세워야 할 것이다. 두 군데서 태우면 정신은 없겠지만 그만큼 일이 빨리 끝나게 된다. 무리하지 않고 양쪽을 번갈아 가며 참깨대와 콩대를 가져 날랐다.


문득 어린 시절 삼양동 언덕배기에서 깡통 속에 장작개비를 주어다 넣고 불장난을 했던 기억이 났다. 정말 신나는 불놀이었다. 손목에 가벼운 화상을 입은 적도 있지만 대체로 큰 사고 없이 커다란 원형 불꽃을 만들어 놀았다. 친구들도 동생들도 마을 형들도 저녁을 먹고 나서부터 9시가 넘어서까지 땀을 뻘뻘 흘리며 불을 담은 깡통을 돌렸었다. 지금은 위험해서 깡통 불놀이는 불가능하다. 놀아줄 사람도 없다. 빈 들판에서 홀로 콩대를 태우고 있자니 갑자기 외로움이 느껴졌다. 일도 놀이처럼 할 수 있어야 즐거운 것인데, 주위를 둘러보아도 하얀 고양이말고는 없다. 가슴이 울컥, 집을 떠나올 때처럼 아릿하다.


걱정이 되셨는지 어머니께서 밭으로 오셨다. 마지막 불 정리는 외롭지 않게 했다. 걷어낸 비닐도 한 곳에 모아두고 집으로 돌아왔다가 뒷밭으로 나갔다. 혹시나 비가 올까 싶어서 마늘밭에 비료를 뿌리고 싶다신다. 덮여 있던 짚단을 모두 걷어 버리고 술술 비료를 뿌리고 돌아왔다. 비는 내리지 않았다. 일하는 동안 시간은 훌쩍 흐른다. 3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