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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풍물은 합주를 해야 흥이 나는구나_170314~16

지난 주 첫 일을 7시간이나 하고, 헤르메스를 110km를 타고,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9시부터 11시까지 계속해서 풍물을 두드렸더니 입술이 불어터졌다. 매우 피곤하다는 몸의 신호다. 이번 주는 잘 조절해서 노동에 지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나이들어 입술이 터져 있으면 보기가 싫지만,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는 훈장이기도 하다. 훈장치고는 가혹하다. 풍물치고 자전거 타며 노느라 생긴 병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기도 하구나.


화요일은 너무 날씨가 쌀쌀해서 일을 할 수 없었고, 수요일은 오전에 청주에 가서 건강검진을 받았다. 위 내시경에서는 가벼운 위염 증상이 있으니 자극이 심한 음식물을 피하면서 관리하면 좋겠다고 한다. 기계로 측정하면 혈압이 높게 나오는데, 수동으로 재면 정상범위로 나온다. 기계가 잘못된 것인지 사람이 잘못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젊은 간호사는 자신있게 정상이라 말한다. 수면 내시경을 하느라 투입된 약 때문인지 조금씩 졸린데, 잠시 쉬다가 산소밭으로 가서 한 시간 넘도록 비닐을 벗기고 부직포를 걷었다. 작년 농사일을 정리할 무렵에 비가 계속 내려서 끝내지 못한 일이다. 보통 큰 농사를 짓는 농부들은 이런 일은 사람을 사서 한다. 총 800평의 밭에서 이 작업을 해 보니 혼자서는 거의 열흘 이상 걸리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비닐을 씌우고 부직포를 까는 일도 열흘이 걸리니, 20 man/day의 일이 농사의 처음과 마무리다. 여성노동자의 일당으로 계산하면 약 120만원의 일이다.


수요일 저녁. 꽹과리반의 연습날이다. 단장님이 북 기초반 수업을 진행하는 사이에 뜨끈한 골방에서 겉옷은 벗어버리고 앉아서 장구 연습을 한다. 속도가 제법 맘에 들게 난다. 그런데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말 달리는 소리가 난다는 휘몰이 가락이 되기는 하는데, 지속되거나 적절하게 맺음을 못한다. 가락이 잘 되는데도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치고 싶을 때 얼마든지 계속해서 치고, 끊고 싶을 때 맺음을 제대로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 시간을 넘게 혼자 장구와 씨름을 하고 있을 때 합주를 하자고 한다. 꽹과리를 들고 가서 북과 어우러져 한 십 분 정도 놀았다. 놀랍게도 스트레스가 싸악 걷히면서 신명이 난다. 얼굴이 저절로 즐거워진다. 저녁 10시가 넘어선 시각에 풍물가락은 합주를 해서 잘 어우러졌을 때 비로소 신명이 나는 것이라는 진리를 깨달았다. 혼자서는 즐겁기가 매우 어렵다. 세상살이처럼.


목요일 아침, 감자와 강낭콩을 심을 밭에다 축분 퇴비를 열 포 옮겼다. 그리고 하나로 합쳐진 뒷 밭의 비닐과 부직포를 벗기는 작업을 했다. 어제와 달리 정농과 함께 하니 심심하지도 않고 일의 진도도 쑥쑥 나갔다. 오전 3시간 동안 겨우 열 개의 이랑에 씌워진 부직포와 비닐을 벗겨낼 수 있었다. 쉬엄쉬엄 하자 하셔서 그렇게 했다. 먼지가 펄펄 날리는 부직포를 걷는 작업은 힘이 덜 들게 기계로 하고 싶은 데, 작업 여건이 기계를 쓰기가 불가능하다. 그럴 때는 사람을 대규모로 투입해서 일을 끝내는 것이 좋은데, 가족들을 동원하기가 어려우니 안타까울 뿐이다. 올 연말에는 일정을 잘 맞춰서 모든 가족을 동원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