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에 상이 생겨서 오늘(17일 목)까지 일을 끝내고 올라가야 하는데, 할 일이 정말 많다. 먼저 잘 마르지 않은 찰벼 중 일부를 하우스 창고에 옮겨서 말려야 한다. 네 포대를 짊어지고 따뜻한 하우스로 옮겨서 잘 펴 둔다. 나중에 정미소에서 들은 이야기지만 아무리 볕이 좋아도 하우스 안에서는 바람이 통하지 않아 벼가 잘 마르지 않는단다.
논에 펴 놓은 볏짚도 거두러 갔다. 볏짚 묶는 일도 십여 년 전에 귀농학교에서 배웠는데,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어영부영 일을 하면서 생각도 해 보고 했더니 조금씩 예전 배웠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미 일은 80%를 해 치운 상태다. 나머지 20%는 완벽하게 해냈다. 내년부터는 볏짚도 상농부처럼은 아니어도 흉내는 완벽하게 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모르면 정말 울고 싶을 정도로 답답하다가도 조금만 알아서 깨우치고 몸에 익혀지면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는 것이 농사일이다. 그런데, 워낙 여러 가지 일들을 해야 하고, 예상치 못한 많은 상황들에 대처해야 하니 한 두 해 경험으로는 완벽하게 터득할 수 없는 것이 농사일이다. 무엇에 쓰실 지 모르고 얼마나 필요한 지를 몰라서 대충 챙겨왔는데, 마늘밭을 덮으신단다. 아무래도 부족할 것 같은데 이미 일을 끝내 버렸고 다른 할 일이 있어서 어쩔 수 없다.
점심을 먹기 전에 메벼 정미한 것을 비닐 포대로 옮겨 담아야 여기저기 보낼 수가 있다. 내가 하지 않으면 주말 사이에 두 분이 힘겹게 작업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다 해 놓고 가려고 마음 먹었다. 쌀 포장은 정말 힘든 일이다. 20kg 포대를 계속해서 들었다 놓았다하면서 비닐 속에 옮겨 담아야 하고, 끈으로 두 번이나 묶어야 한다. 특히, 마지막 공정인 끈묶기는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신속하고 야무진 손놀림이 있어야 하는데, 컴퓨터와 책장 넘기기에 익숙한 여린 손에서는 그런 멋진 동작이 잘 나오지 않는다. 억지로 서툰 힘으로 서른 개의 쌀 포대를 포장하고 났더니 손가락이 떨어져 나갈 것같다. 어느 덧 오후 두 시가 넘었다. 아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셨던 부모님은 산으로 들로 애타게 찾아 다녔다고 한다. 빈한한 농부의 농원이 참 넓기도 하다.
늦은 점심을 먹고 찰벼 말린 것을 담는다. 대 여섯 군데 정미소에 전화를 했지만 당장 정미는 힘들단다. 며칠 더 말렸으면 좋겠지만 비 소식도 있고, 내가 없으면 두 분이서 이 무거운 벼가마를 옮겨야 해서 무리를 해서라다도 끝내고 가야 한다. 세 사람이 힘을 합쳤더니 의외로 일이 빨리 끝났다. 30kg 포대 30개를 들었다 놨다 옮겼다 쌓았다 했더니 근육이 뻣뻣하다. 그래도 큰 일을 또 무사히 마쳤다.
월요일(21일) 천재와 쟁반짜장으로 점심을 먹고 농원에 내려 왔더니 포천 이모부 내외가 또 다녀가셨단다. 시어른들께서 우리 배추를 너무 맛있게 드셔서 또 뽑으러 오셨단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얼지 말라고 덮어 놓았던 배추가 비닐 아래서 물러 버렸다. 진딧물의 습격도 받고. 향악당에 가서 단장님께 물어 보았더니 배추는 영하 5도 정도로 떨어지지 않으면 덮지 않는 것이 좋단다. 쉽게 얼어 터지지 않고, 온도가 영상이고 바람이 통하지 않으면 물러 버린다고 한다. 허 참, 배추농사도 어느 덧 십여 년을 지었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그네 할머니 퇴진 기원 촛불 시위만 아니었다면 지난 주에 김장을 했으니 이런 일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참 사소하지만 알지 못하면 농사를 망치는 일 중의 하나를 오늘 또 배웠다. 정말 배움에는 끝이 없는 모양이다.
음성에 다녀 오다가 결혼하는 사촌 동생의 잔치 준비에 쓰시라고 작은 어머니께 찹쌀과 멥쌀을 한 포대씩 보냈다. 받는 사람이야 어떨지 모르겠지만 큰 선물을 보내고 나니 뿌듯하다. 내년 농사를 위해 축분 퇴비 100개(나중에 20개 추가), 유박 퇴비 60개, 흙살림 퇴비 20개를 신청했다. 퇴비를 자립하고 싶은데 아직 시작도 못하고 있다. 내년에도 결국은 남에게서 얻은 퇴비를 써야 한다. 무리는 하지 말자. 언제고 여건은 마련될 것이다.
'사는이야기 > 농사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숨을 내쉬며 삽질하기_170309 (0) | 2017.03.09 |
---|---|
남천이 씩씩하게 잘 살아주기를_170308 (0) | 2017.03.08 |
쉽게 넘어가는 일은 없다_161123, 수 (0) | 2016.11.23 |
비가 내릴 듯 하다가 내리다_161114, 월 (0) | 2016.11.14 |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다_161109, 수 (0) | 2016.1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