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릉 산꼭대기 서울 대일고등학교 시절의 영향 또는 트라우마 때문에 폭력에 대한 심한 두려움과 증오심을 갖고 있다. 1980년의 어느 가을 날, 나는 그에게 영어 문장을 해석하지 못했다고 해서 70명의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무차별로 난타(?)를 당했다. 그가 날 때린 진짜 이유는, 원비디 중독인 자신을 몰라보고 원비디를 사다 바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픔 보다 수치스러웠다. 그렇게 맞으면서도 저항 한 번 못하다니. 별명이 몸부림인 영어 선생 손창록. 일단 그에게 사과를 받아야 하고, 아직도 그 상태이면 그는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 월남전 참전용사로 알려져 있으니, 이런 저런 연금에 잘 먹고 잘 살고 있을 것이다. 다른 선생님들은 그처럼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았다. 그도 원비디만 받아 마시면 순한 양처럼 개그를 섞어가며 수업을 한다. 동창들에게 확인해 보니,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음, 용서할 수 없으나 죄값을 치르고 있을 것이라 믿고, 용서해야할까. 죄 지은 자들이여, 제발 진심으로 뉘우쳐다오. 용서해 줄 수 있어. 아마도 자신의 잘못을 모를 것이다. 알고서는 어떻게 그렇게 사악할 수 있겠는가. 박근혜, 최순실, 김기춘, 우병우,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형근, 이근안처럼. 오, 박씨 집안 2관왕.
또 다른 고교시절 폭력의 기억은 우리반 뒷자리의 깡패들. 술과 본드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친구들을 협박하고 친구들과 선생님들께 칼부림을 했던 녀석들. 마음 잡고 착실히 사는 녀석도 있지만 칼 맞고 저 세상으로 가버린 놈도 있다고 한다. 자기 한테 기분 나쁜 말을 했다고 상대도 안되는 나에게 맞짱을 뜨자고 해서 결국 억울하고 비참하게 사과를 해야 했던 일은 지금도 기억에 뚜렷하다. 그나마 무릎을 꿇으라고 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평생을 수치스러워 하며 살았을 것이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잊을만하면 한 번씩 반복되는 이런 폭력의 분위기 속에서 살다 보니, 나도 모르게 폭력을 증오하게 되었다.
대학에 갔더니 이제는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경찰, 검찰, 안기부, 기무사, 정형근, 이근안 이런 애들까지 국가의 이름으로 폭력을 행사한다. 참 나. 손선생이 잊혀질 정도로 끔찍한 청춘시대였다. 두려움에 떨다가 포말처럼 사라지지 않고, 아직까지 살아남아 있는 것이, 천운이다.
러시아도 그렇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어디 한 번 보자. 마피아(мафия).
"러시아인들은 지난 10년 간 러시아에서 가장 영향력을 발휘하는 세력이 마피아라고 생각한다. 러시아의 마피아는 지금 이 순간에도 사회의 거의 전 분야에 개입되어 이익을 조정하고 있다. (중략) 러시아 정부는 사회주의 시절의 국가 재산을 분배하기 위해 1993년에 1만 루블짜리 바우처를 1억 5천만 명에게 한 장씩 무상 분배했다. (중략) 어차피 집에 놔두면 휴지가 될 바우처를 펀드 회사에 위탁했다. (중략 / 바우처 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을 때) 고소득을 보장하던 펀드 회사들이 자취를 감추어버린 것이다. 당연히 바우처는 파산한 펀드 회사 사장의 몫이 되었다. 그리고 러시아 정부가 모든 국가의 제반 시설과 생산 공장을 민영화하자 그들은 권력과 유착해 (아마도 이 바우처를 가지고 / 무일) 염가로 거대한 재산을 사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중략) 러시아의 마피아는 서방의 '조직 범죄 단체'로서의 마피아보다 폭넓게 통용되어 흥미롭다. 즉 정치 관료 마피아, 경제 유통 마피아, 가두 상인과 보따리 장수의 세 가지 형태를 마피아라고 생각한다. 보수주의자들은 이윤을 추구하는 모든 사람들을 마피아라고 부르기도 한다.
(중략) 마피아가 러시아 경제의 미래를 책임지는 신흥 자본 세력이 될지는 미지수이다. 왜냐하면 마피아는 마피아이기 때문이다. (중략) 지금 러시아에서 유일하게 부를 축적한 자본 계층은 마피아이다. (중략) 수도원 거지들도 자의건 타의건 간에 마피아와 연루되어 있는 것이다. (중략) 러시아의 마피아는 일반인을 상대로 범죄를 저지르는 집단이 아니라 조직의 이권 관계에 있어 장애가 되는 인물만을 범죄 대상으로 삼고 있다. 때문에 모스크바 밤거리를 산책하는 것은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다." (166~170쪽)
10년쯤 전부터일까. 잊어버릴만 하면 한 번씩 빅토르 최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스물 여덟에 요절한 한국인 4세가 러시아 최고의 전설이라니. 그의 노래 혈액형에 이런 대목이 있다.
나는 누구의 가슴에도 발을 올리고 싶지 않다
나에게 행운을 빌어다오
홀로 이 벌판에 남지 않도록
- 빅토르 최 Blood Type
"매년 8월 15일마다 많은 젊은이들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중략) 그의 묘지로 모여들고 있다. (중략) 밤을 새워 요절한 영웅의 무덤 가에서 그의 추억을 더듬기도 하고 청바지와 청재킷 차림에 빅토르 최(1962~1990) 얼굴이 새겨진 뺏지를 달고 길거리에서 목청껏 그의 노래를 부르다 술과 담배로 마음을 달래고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간다.
(중략) 러시아어에는 '수지바'외에 운명을 뜻하는 단어가 또 하나 있다. 그것이 바로 '록'이다. 영어 Rock과 발음이 아주 유사하다. 그래서 러시아인들은 '록'을 불행하고 처절한 자신들의 삶과 운명을 대신 표출해주는 '속 풀이' 음악처럼 간주하고 있다. (중략) 민족과 인류의 아픔을 함께 고민하려고 했던 빅토르 최는 (중략, 그가 무명시절을 보냈던 공장 기숙사의 난방 관리실에서) 가끔 젊은이들을 초대해 지하 콘서트를 개최하곤 했고, 그때마다 건물 지하실에 몰려든 젊은이들이 그의 노래를 듣고 얼마나 (감동했는지 / 중략) '캄차트카' 공연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 의해 회자되고 있다." (170~4쪽)
러시아는 실패한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라 소련 사회주의가 붕괴되고 새로이 태어난 자본주의 국가다. 민족과 지역, 종교의 연속성으로 인해 과거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지만 사회주의를 폐기하고 자본주의로 확실히 옷을 바꿔 입었다. 거대한 영토와 자본, 문화 유산, 인력과 자원을 가진 러시아의 자본주의가 어떻게 발전할지는 아무도 예측하기가 어렵다. 시민들이 힘들어서는 안되니 부디 성공하기를 빌 뿐이다.
"나폴레옹은 1812년 6월, 60만의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로 쳐들어왔다. 많은 농민들이 전쟁에 자진 참여하였다. (중략) 러시아를 위기에서 구해낸 것은 (중략) 이름 모를 곳에서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무수한 농민들이었다. (중략) 러시아 인민과 진보적인 귀족 젊은이들은 러시아가 농민들의 고귀하고 애국적인 희생을 기리고, 그들의 애국 충절에 감사하여 황제가 농노제를 의당 폐지해 주리라 기대하였다. 하지만 황제는 그들의 열망을 수용하지 않았다.
(중략) 러시아에서는 처음으로 황제의 권위에 도전하는 군사 반란이 일어났다. 그것이 '데카브리스트들의 사건'이다. (중략) 약 3,000명의 근위 부대 장교들과 병사들이 (중략) 원로원 광장에 모여 들었다. 하지만 그들의 봉기는 실패로 끝났다. (중략) 가장 커다란 이유는 12월 당원들은 거사에 민중이 가담하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
(중략) 저임금에 물가가 폭등해 전전긍긍하던 페테르부르크의 노동자들은 이제 더 이상 자본가들의 자비를 기대하지 말고 황제 폐하에게 직접 무리를 지어 가서 그들의 전횡을 낱낱이 고해바치고 아버지 황제의 도움을 구하자고 결의한다. 1905년 1월 9일 (중략) 군중들은 어린아이들에게 예쁜 때때옷을 입히고 손에는 황제의 초상화와 이콘(성화)을 들고 모두 다함께 '신이여 황제를 보호하소서'라는 찬양을 불러대며 황궁을 향해 행진하였다. (중략 / 14만명에 달한 군중을 향해) 일제히 발포의 명령을 내렸다. 그로 인해 1,000여 명이 죽고 4,000여 명이 중상을 당하게 되었다. (중략 / 피의 일요일 사건으로) 레닌이 주도하는 볼세비키 당원들에 의해 권력이 넘어가고 러시아는 '소련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의 시대가 개막된다.
(중략) 지나친 관료화와 비효율적인 중앙 집권적 경제 구조로 인해 경제가 고질적인 악순환을 거듭하고, (중략) 1990년 옐친이 정권을 잡게 되면서 소련은 역사의 장으로 완전히 사라지고 과거의 러시아가 새로이 부활하게 된다." (210~221쪽)
절대군주에서 계몽군주로, 이어서 근대 자본주의 사회로 자연스럽게 넘어가야 하지만 짜르는 미련이 남았던 모양이다. 계몽군주 짜르는 농노제를 폐지(1861년)하여 귀족들과 자본가들의 이익을 지켜 주면서 형식적인 근대화는 이룩했다. 그러나 농노들은 봉건영주에 속박되었다가 다시 자본가들에게 속박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짜르는 시민들이 바라는 것, 인간의 자유와 권리 그리고 평등에 대해서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근대화의 물결은 피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푸쉬킨이 1811~1817년 간 유년 시절을 보내며 공부했던 '리체이'라는 유서 깊은 학교가 있다. 원래 리체이는 알렉산드르 1세가 황실과 귀족 출신의 자녀들에게 고등 교육을 시켜 졸업 후에 나라의 요직에 배치할 계획으로 만든 학교였다. 그래서 러시아의 저명한 학자들과 외국에서 유학한 젊은 학자들을 반반씩 초빙해 교수진을 구성했다.
(중략) 늙은 교수들은 전근대적인 내용으로 황실에 충성할 것을 전제로 한 교육을 시켰지만, 젊은 유학파 교수들은 이와 반대로 서구의 자유화와 계몽주의 운동을 가르쳤다. 그래서 리체이를 졸업한 학생들의 절반은 공무원이 되고 나머지 절반은 12월 당원이나 그 후 반정부 투쟁을 벌이는 주요 인사들로 성장하게 되었다." (276~7쪽)
다 읽어 가니 정리가 필요하다.
하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역사가 300년인 것처럼 러시아 전체의 역사는 천 년 정도로 짧다. 사람이 살기 적당한 환경이 아니기에 그랬을 것이다. 짧은 역사인데도 비극과 야만의 역사는 길다. 운명이나 한이 서린 듯한 장엄하고 처연한 그들의 음악은 진한 야만의 역사를 공감하게 한다.
둘, 마피아는 마피아일 수밖에 없는 한계가 분명하다. 그렇지만 러시아 자체는 풍부한 인력과 자원으로 세계의 무대에 다시 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문학과 예술과 다챠를 사랑하는 그들의 깊은 감성이 자유와 민주주의, 자본주의의 토대 위에서 위대한 시민사회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은 야만의 시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의 문학과 빅토르 최의 가사를 통해 평화로운 인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셋, 가능성이 없는 사회는 없지만 가능성만 있다가 끝날 수도 있다. 주의해야 한다. 그들의 나라를 여행할 때는.
마지막은 '죄와 벌'로 정리하자. 박근혜, 최순실, 김기춘, 우병우, 조윤선,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근안, 정형근. 너희들도 들어라, 소냐의 이야기를.
"비록 몸은 짓밟혔지만 영혼만은 순결했던 소냐. 그녀는 인간이 저지른 죄에 대한 참회란 법이 정한 일정한 형량만을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회개를 동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라스콜리니코프에게 그가 더럽힌 땅과 모든 인류와 인류를 구한 신에게 용서를 빌고 경찰에 자수를 하라고 요구한다. "사거리에 가서 모든 사람에게 절을 하고 대지에 입을 맞추세요. 당신은 대지에 대해서도 죄를 범한 거예요. 그리고나서 온 세계에 들리도록 말하세요. '내가 죽였습니다!'라고 말이에요." 라스콜리니코프는 그녀 말대로 행한다. 바로 그곳이 센나야 광장이다." (295쪽)
- 러시아 / 이길주 한종만 한남주 지음 / 리수(2009년 2판 3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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