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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서재

마지막 순교, 광인들이여 제발_아미쉬로부터 배운다 2_170117

긴 듯 짧은 여행을 마치고 서재 책받침에 얹어져 있던 아미쉬 이야기를 읽는다. 이런 이야기는 아무리 끔찍해도 알아 둘 가치가 있지 않을까. 꽃 필 틈도  없이 숨져간 세월호 아이들과 겹쳐지는, 순수한 아이들의 안타까운 죽음이다. 광인들이여, 제발, 살인과 폭력을 멈춰달라. 트럼프여, 그대도.


"2006년 10월(중략) 월요일 오전 수업을 하고 있던 중 아미쉬 원룸 스쿨을 박차고 들어간 범인은 남학생들은 모두 나가게 한 뒤 어린 여학생 10명만을 (중략) 발을 서로 이어 묶은 뒤 교단에 일렬로 세워놓고 사형을 집행 (중략) 경찰과 대치하던 범인도 현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중략) 아미쉬 공동체는 놀라울 정도로 평온을 유지하며 기도로 아픔을 달래고 있으며, 유족을 비롯한 아미쉬 사람들이 범인의 가족을 찾아 위로하며 용서의 뜻을 전했다. 


(중략) 범인이 학교에 침입한 후부터 총을 난사하기 직전까지 20여분 동안 과연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중략) 9년 전 자신의 첫 딸이 출산 직후 사망한 이유가 신의 저주 때문이라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범인이 보복 심리로 (중략) 중태에 빠졌던 아미쉬 소녀가 의식을 되찾았다는 기쁜 소식과 함께 전해진 현장의 증언은 다시 총격 사건에 관한 기사의 활자를 키우기에 충분했다. 


"나를 먼저 쏘세요!" 

13살 난 마리안 피셔가 범인에게 호소하자 곧이어 

"그다음엔 나를 쏘세요!" 하고 11살배기 동생 바비 피셔가 뒤따랐다. 


범인이 총격을 가하려는 낌새를 알아차린 마리안과 바비는 자신들이 죽으면 다른 동생들의 목숨을 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중략) 범인은 신이 자신을 버렸다며 소녀들에게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말했고, 이에 대해 한 아미쉬 소녀가 "(그러면) 우리를 위해서는 기도를 하지 않을 거예요?" 하고 되물었다고 한다." (91~94쪽)


소녀들을 비롯한 아미쉬 사람들의 숭고한 마음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대목이다. 종교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엄한 규율로 사람들의 육체와 정신을 통제하는 것에 대해서는 공감할 수 없지만, 그런 통제 교육의 결과로 이런 위대한 사람들이 길러지는 것을 보면 충분히 존중할만한 요소가 있는 모양이다. 더욱이 사회안전망에 대한 아미쉬의 마을공동체는 누구나 꿈꾸는 이상사회의 모습일 것이다. 아, 이러다 아미쉬 실습 나가야 하는 것 아닌가 모르겠다. 그들은 절대로 선교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방인의 방문을 기꺼워 하지도 않을 것이다.


"1965년 7월에 의회를 통과한 (법에 의하여 / 중략) 아미쉬 공동체 사람들은 사회보장법과 노인의료보험제도를 적용받지 않는다. 따라서 노후연금과 장애연금, 실직급여, 치료비 감면 혜택 등의 사회보장성 혜택도 받지 않는다. (중략 / 아미쉬 사람들은) 사회보장세와 의료보장세를 제외한 소득세, 판매세, 기타 지방세 등 모든 세금을 일반인들과 똑같이, 어느 면에서는 일반인들보다 더 성실하게 납부한다. 공동체 밖의 일반인들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일하는 아미쉬 근로자들은 급여에서 일반인과 똑같이 사회보장세와 의료보장세가 공제된다. 그러면서도 그에 따른 혜택은 전혀 받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자체적으로 자금을 조달해 공동체 학교를 운영하면서도 일반 공립학교 운영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부과되는 재산세를 성실하게 납부하고있다. 


(중략) 그들은 왜 보험을 부정할까? 그들에게 보험이란 신에 대한 불신을 의미하며, 나아가 보험의 이용은 세속적인 제도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종교와 정치의 분리를 주장하는 사람들로서 정부로부터 지원금, 특히나 복지후생과 관련한 지원금을 받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중략) 아미쉬 공동체에서 연로한 부모를 부양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자녀의 몫이자 책임으로 여기고 있다. 아미쉬 노인들은 은퇴 후 자녀 중 한 명에게 집을 물려주고 본채 뒤편에 마련한 '초라한 집'이라고 부르는 조그마한 집에서 자녀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여생을 보낸다. (중략) 화재나 자연재해를 당해서 가옥이나 창고 건물이 없어진 이웃을 위해 공동체 사람들이 모두 모여 하루 만에 복구해주는, 헛간 짓기 행사는 아미쉬 사람들의 결집과 협동 정신이 드러나는 대표적인 행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126~9쪽)




어디에나 비겁한 사람이 있기에 마련이다. 무저항 비폭력의 아미쉬 사람들에 대한 계획된 강도 사건들도 있었다고 한다. 범죄를 저질러야 할만큼 절박한 사정도 있었겠지만 말이다. 그들이 보이는 관용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관용이다. 좀 더 강한 사람이 범죄나 저지르며 살아야 하는 약자에게 베푸는 진심에서 우러난 용서. 박근혜나 최순실, 김기춘과 우병우, 조윤선은 통치 행위를 잘 하려다 벌어진 일이니 관용을 베풀어 달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그들이 범죄 행위나 일삼는 하찮은 사람들임에는 틀림없지만, 삼대 이상 평생을 호의호식할 수 있고, 약자들을 노예처럼 부렸으며, 세금으로 받은 엄청난 연봉으로 부를 축적한 절대 강자들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베풀 관용은 없다.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보여줄 것은 강력한 엥똘레랑스의 정신이다.


"검소하게 사는 아미쉬 공동체 사람들의 농가나 달리는 마차에 강탈할만한 값진 물건이 있을 리가 없는데도 아미쉬 공동체 사람들이 좀도둑의 목표가 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아미쉬 공동체 사람들의 집에는 담이나 울타리가 없고 대문도 없다. 문을 걸어 잠그지도 않는다. 나아가 감시카메라나 경보 장치는 생각할 수도 없다. 그처럼 아미쉬 가정은 외부인에 대한 경계나 감시에 완전 무방비 상태이다.


 다음으로 현장에서 발각되더라도 아미쉬 사람들이 전혀 반격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즉각적인 신고나 구조 요청을 할 수 있는 설비도 갖추어져 있지 않다. (중략) 최악의 경우 잡혀서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해도 아미쉬 사람들은 가해자에 대한 중벌이나 응분의 보상을 요구하기보다는 언제나 가해자를 용서하고 관용을 베풀기 때문이다." (148~9쪽)


침구사가 되고 싶었으나 국가자격증 제도가 폐지되서 호구지책은 물론 봉사활동도 불가능해졌다. 병든 노인들 목욕 봉사도 좋지만, 육체 노동을 통한 봉사는 깨끗한 농사를 짓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육체를 학대하면서까지 봉사활동을 하고 싶지는 않다. 병자들을 치료하는 봉사를 하고 싶었다. 자격증이 없으니 참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부럽다.


"보스턴의 한 소아과 병원에서 전문의 과정을 밟고 있던 젊은 의학도 홈스 모턴은 어린이들의 신진대사에 관한 질병을 연구하면서 필라델피아에 있는 어린이 병원과 많은 정보를 교류했다. 그러던 중 필라델피아 인근에 있는 랭커스터의 아미쉬 공동체 어린이들에게서 유전적인 '신진대사 장애'가 유난히 많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그는 자원하여 유전병 연구팀에 합류했다. (중략) 그는 아미쉬 공동체 사람들의 특이 질병에 대한 효율적인 연구와 치료를 위해서는 반드시 그들 가까이에 전문병원이 있어야 한다고 결론짓고, 이의 추진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중략 / 많은 사람과 기업들의 도움으로) 병원이 개설되자마자 그는 온 가족을 데리고 병원 안에 마련된 사택으로 이사하여 24시간 상주하면서 진료를 시작했다. 그는 병원에 앉아서 환자를 기다리지 않고 질병을 앓고 있는 아이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보살폈다. 그는 유전병의 조기 진단을 위해 현재 랭커스터 지역 아미쉬 공동체에서 태어나는 신생아의 95% 이상에 대해 정밀 검진을 실시하고 있으며, 유전병을 앓고 있는 아이들 중 80% 이상을 완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69~170쪽)


아미쉬 마을을 찾아가서 함께 일하고 배우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이 책을 통해 궁금증은 많이 해소되었다. 유기농법이나 제초방법, 퇴비 만드는 법, 육체노동의 고통을 줄여주는 기계 장치 등 여러 가지 것들을 직접 이용해 보고 도입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언제고 기회는 있을 것이다. 칠순 가까이 되면 농사에 전념하려고 했으니 그 때까지 그들이 좀 더 개량한 방법들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아미쉬 사람들은 같은 교리를 따르는 교인들 간에 유대를 바탕으로 한 신앙 공동체일 뿐 공동 거주 형태를 이루지 않으며, 공동생산과 공동분배를 하지도 않는다. 그들만이 모여 사는 공간이 별도로 구획되어 있지도 않거니와 둘러친 울타리나 높게 쌓은 담도 볼 수 없다. 아미쉬 마을이라고 해서 아미쉬 사람들만 모여 사는 게 아니고, 아미쉬 사람들이 일반인들보다 좀 더 많이 모여 사는 지역을 아미쉬 마을이라고 부른다. 그러기에 아미쉬 공동체 마을임을 알리는 안내 표지판을 설치할 만한 특정한 지역이 없고, 아미쉬 관광지에서 그런 안내판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중략) 일반인 아저씨가 굉음을 내며 트랙터로 밭을 갈 때 옆집 아미쉬 아저씨는 여섯 마리의 말이 끄는 쟁기로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밭을 갈아엎는다. 그렇게 작업을 마친 후에는 씨를 뿌릴 농작물에 관해 서로 정보를 나누고 이웃 간의 정담도 나눈다. (중략) 아미쉬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은 해리슨 포드가 주연한 영화 '위트니스'를 통해서 배운 것이 전부이다." (187~192쪽)


그래, 좋다. 이런 식의 어우러진 공동체의 모습은. 300쪽이 넘는 책으로 자세하게 그들의 역사와 현재를 다룬 이 책을 읽으며 든 생각은 이렇다.


하나. 돈과 권력을 유용하게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종교전쟁의 광풍과 로만 가톨릭의 폭압으로 목숨이 경각에 달한 아미쉬를 구한 것은 식민주의자의 아들이지만 퀘이커 교도인 윌리엄 펜의 돈과 권력이었다. 그가 미국 땅에 '지상의 낙원'을 건설하지 않았다면 아미쉬라는 평화로운 종교공동체가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이다. 섬기는 것은 다르지만 평화와 인내와 관용과 노동을 지향하는 그들의 문화가 잘 보존되기를 바라고, 윌리엄 펜의 자본과 권력에 경의를 표한다. 


둘, 가족공동체라도 복원하여 하루만에 헛간을 지어주지는 못할 망정 공동으로 축적된 재산과 사람들로 고난에 처한 가족을 신속하게 구조할 수 있는 안전망을 마련해야겠다. 특히 보험제도와 장학제도 등을 활용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고, 그 범위 밖에서 가족들이 서로를 구제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도록 해야겠다.


셋, 검소한 삶을 유지하면 생활의 고통에서 벗어나기가 좀 더 쉬워진다. 좋은 집과 옷과 음식을 추구하되 사치스러운 물건이나 취미들을 명품이나 고품격으로 치장하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능력이 된다면 크게 탓할 일은 못되지만 사치스러운 물건에 빠져 경제생활을 어렵게 한다면 그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다. 검소하고 소박하고 깨끗한 삶을 살도록 하자.


글쓴이 임세근은 아미쉬들을 "남다른 삶의 길을 택한 보통 사람들"이라고 표현했다. 도시 문명의 발전으로 점점 남다른 삶을 살게 된 그들이지만 불과 백년 전만해도 그리 다를 것 없는 삶을 사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현대 문명의 이기를 좀 덜 받아들이고 있기는 하지만 생각과 행동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유전병을 겪지 않으며 살 수 있도록 공동체의 외연이 충분히 확장되기를 바란다. 건강이 최고의 행복이다.


- 단순하고 소박한 삶, 아미쉬로부터 배운다 / 리수(2009년 9월) / 임세근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