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네 Heinrich Heine(1797~1856)가 쓰고 김남주(1946~1994)가 번역한 정치풍자시집. 서정시인 하이네가 19세기 독일에서 사람과 세상을 어떻게 바라 보았는가를 보여주는 시들이다. 더 젊었을 시절에 깊이 감동했으면 좋았을 것을, 사랑도 명예도 삶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고 그저 두려움과 가난 속에서 살았던 그 시절이 안타깝고 아쉽다. 나의 목소리로 노래하듯이 나의 감성으로 세상을 맞이해야 했는데, 너무 버거웠다. 그도 그랬듯이. 김남주야 말할 것도 없고. 술 한 잔 함께 했어야 했는데,,,
하이네는, 로렐라이의 처녀처럼 가녀리지 않고 날 선 지성이 번뜩이고 있었다.
김남주는, 죽창이나 혁명처럼 강력하지 않고, 해지는 들녁의 저녁연기처럼 따뜻하고 평화로웠다.
아타 트롤 Atta Troll이 무슨 뜻인지를 모르겠다. 서문과 해설까지 다 읽었지만 나오지 않는다. 사전을 뒤져도 안나온다. 일단 이 정도만 알아두고 시를 읽어 보아야겠다. 그런데, 다음 어학사전에는 독일어 사전이 제공되지 않는다. 왜일까.
트롤 Troll
1. 북유럽의 신화나 전설에 나오는 거인 2. 괴물같이 생겼으며 때때로 마술을 부리기도 한다 3. 햇빛에 노출되면 부풀어 터지거나 돌이 된다고 한다 [다음 어학사전]
프랑스에서 1841년은 어렵게 찾은 자유를 다시 빼앗긴 시절이었다. 그러니까 1789년에 프랑스 대혁명이 있었고, 대혁명에 반대하는 대불동맹(영국, 오스트리아, 프로이센)이 결성되어 자유의 나라 프랑스가 위기에 처하자, 나폴레옹이 등장하여 혁명을 수호한다. 프랑스 민중의 힘을 무시하고 스스로 황제가 됨으로써 혁명을 배반한 나폴레옹은, 러시아 정벌에 나서지만 수십 만 명의 목숨을 죽이고도 실패하고 몰락한다. 1815년의 비인체제는 자유 프랑스와 유럽을 대혁명 이전 상태로 되돌리는 결정을 한다. 이에 반발한 프랑스 자유 시민들이 1830년 7월 혁명으로 루이 필립을 왕으로 앉히지만, 그는 본분을 망각하고 자유를 억압한다.
그렇게 10년이 흐른 프랑스의 빠리에서 독일 제국의 탄압으로부터 망명한 하이네를 비롯한 수많은 사상가들이 열띤 논쟁을 하고 있다. 아직은 야만의 시대라 그 논쟁은 칼을 든 전쟁과 비슷하였다. 비판의 칼날은 서로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동지가 되어야 할 이들조차 원수가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비판, 그것은 신중히 사용해야 할 말과 글의 검이다. 서로가 충분하게 자기 의견을 제시하고, 다수의 합의에 의해 결정하는 것이 좋다. 안타깝게도 비판과 설득은 같이 가기 매우 어려운 양극이다. 돈과 권력과 명예가 걸린 비판이라면, 설득으로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1840년 즈음의 시기에 조선도 유럽과 마찬가지로 '위로부터의 혁명'을 이끌었던 정조의 죽음(1800년)으로 마지막 남아 있던 개혁의 불씨가 꺼지고 자유와 평화를 억압하는 폭정(세도정치)의 시기가 도래했다. 순조는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공노비를 해방하는 등 개혁정치를 이어가려 했지만 안동 김씨를 중심으로 한 탐욕스런 권력가들에게 휘둘리고 만다. 순조로부터 70여년에 걸친 세도정치는 영정조 시기에 쌓아 두었던 조선의 부와 역량을 무너뜨리고, 가련한 백성들은 갑오농민전쟁으로 저항하지만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총칼에 짓밟혀 굴욕적인 지배를 당하게 된다. 친일파들은 하는 일없이 일본에 아부하며 더욱 잘 살게 된다.
같은 시기 중국에서는 태평천국운동(1851년)이 일어난다. 홍수전은 스스로를 예수의 동생이라고 하며 천왕(天王)에 올라 균등하게 재산을 분배하고, '배상제회'에 참여하는 모두를 형제자매라 불렀다. 태평군의 수는 금세 50만 명까지 늘어났고, 청군과의 전쟁에서도 승리하여 남경을 점령하여 수도로 정한다. '논밭이 있으면 같이 갈고, 밥이 있으면 같이 먹으며, 옷이 있으면 같이 입고, 돈이 있으면 같이 쓰자'(여민동락하자)라는 강령을 내세우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지도부에서 권력다툼과 내분이 발생하고 1864년 6월에 천왕 홍수전이 병사하면서 수도 남경이 함락되어 14년 가까이 지속된 태평천국운동은 '반란'으로 진압되고 만다.
"[아타 트롤]이 씌어진 것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1841년 늦가을인데 그 무렵 유형무형의 적들이 나를 공격하는 대소동이 있었다. (중략) 그 소동이 일고 있을 때 나는 왕관도 머리도 잃어버릴 뻔했으나 사실은 그 어느 하나도 잃지 않았다. (중략) 독일의 국경에 있는 모든 역에서는 시인의 귀국을 고대하고 있는 체포영장이 (중략) 해마다 어김없이 갱신되곤 했기 때문이다.
(중략) 그 당시 사람들은 재능(Talent)이라는 것을 매우 불확실한 인격(Charakter)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재능이란 인격의 결여라고 의심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몇 세기 동안의 고심 끝에 질투심 많은 무능력자는 마침내 천재의 오만에 적대하는 커다란 무기를 발견했다. 즉 그들은 재능과 인격은 반대명제라는 무기를 발견했던 것이다. (중략) 그래서 머리가 텅빈 사람은 당연하단 듯이 속이 가득찬 제 가슴을 치며 신념이야말로 제일가는 것이라고 자만한다.
(중략) [아타 트롤]의 처음 몇 장이 인쇄되자마자 (중략) 위대한 인격의 소유자들은 일제히 분노를 터뜨렸다. 나는 문학과 사회의 반동이고 신성한 인간의 이념을 모독하는 자라고 비난받았다. (중략) 형편없는 거울이 있어서 그 거울에 제 얼굴을 갖다대면 아폴로와 같은 미남 청년도 희화가 되어버려 세인의 웃음거리가 되고 만다. 그러나 그때 우리의 웃음거리의 대상은 희화이지(엉터리 거울과 그 거울에 비친 왜곡된 얼굴이지 / 무일) 아폴로신은 아니다.
(중략) 하얀 천막에서 검은 달처럼 나오는 무어왕(중략 / 패배가 분명한) 전투에 뛰어든다. (중략 / 인륜을 무기로 한 비겁한 계략에) 그는 그 곳이 검은 워털루임을 발견한다. 그는 승자의 손으로 백인에게 팔려간다. (중략) 지금 그는 음울하고 침통한 얼굴을 하고 곡마단 입구에 서서 북을 치고 있다. (중략)
그의 눈은 축축하게 젖어 있고
귀가 멍하도록 그가 북을 치면
갈기갈기 가죽이 찢어진다.
1846년 12월 빠리에서
하인리히 하이네."
- '아타 트롤 / 한여름 밤의 꿈' 중 서문에서
제1, 2장에서 아타 트롤은 검은 곰이다. 무어왕처럼 식민자에 저항하는 검은 왕이다. 수도승이기도 하고 산적이기도 한 주인들은 자유로웠던 곰을 사슬로 묶어 놓고는 음식을 주면서 춤을 추게 한다. 그러니 아타 트롤이 견딜 수 있을 것인가. 큰 북소리와 함께 사슬을 끊고 자유를 찾아 떠난다. 지배자들은 아타 트롤에게 화를 내고 욕을 한다. 은혜도 모르는 놈.
고산준령에서 자유롭게 살았던
아타 트롤이 골짜기에 내려와서 (중략)
더러운 금전 때문에
지금 춤을 추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으니 (중략)
아타 트롤의 가슴속에서는
신음소리가 처참하게 들끓었다. (중략)
아타 트롤이 향수에 사로잡혀
거대한 북을 꽝꽝 내리치자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북이 찢어졌다. (중략)
노예의 쇠사슬을 끊어버리고
무서운 기세로 좁은 길을 뚫고
내달렸던 것이다. (중략)
화가 잔뜩 치밀어오른 조련사가 (중략)
은혜도 모르는 곰새끼 같으니라고! (중략)
나는 모든 것을 놈에게 줬어
목숨까지도 내가 구해줬어
놈의 가죽을 사려고
백 탈러 지불하겠다는 사람까지 있었는데!
- 아타트롤 제1장과 2장 중에서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시인 하이네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의 시와 노래는 목적 그 자체이다. 생명과 연애와 신과 자연처럼.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달리기처럼. 효율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과연 목적이 없는 행위가 있을까 싶은데, 어떤 행위는 너무 고귀해서 행위 자체가 목적이 된다. 노래는 나를 위로하는 무엇이 아니고 노래 그 자체로 추구되어야 할 중요한 목적이다. 돈벌이도 아니며 명예의 수단도 아니다. 누구를 비판하려는 수단도 아니요 누구를 위한 도구도 아니다.
나의 노래에는
공상이 있을 뿐 목적은 없다
연애처럼 생명처럼 신과 자연처럼
나의 시에는 목적 따위는 없다
- 아타트롤 제3장 중에서
사람이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으면 곰보다 못하게 된다. 생존의 그릇에 권리라는 것을 가득 부어놓고 자연과 다른 것들을 지배하는 오만한 모습을 보일 때 특히 그러하다. 겸손해야해서 겸손한 것이 아니라 미미한 존재이기에 스스로를 과대평가하지 말라는 것이다. 만물이 모두 존재의 이유가 있는 것처럼 사람도 존재의 이유가 있는 것이지, 인간의 권리를 신으로부터 받았다고 우쭐대지 말아야 할 것이다. 혹시 그런 생각이 든다면, 우울하고 의기소침한 너를 일으켜 세우는 격려를 받은 것이다.
인간의 권리! 인간의 권리!
누가 너희들에게 그것을 주었단 말이냐
자연은 결코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자연은 비자연적인 짓은 하지 않는다
인간의 권리! 누가 너희들에게
그런 특권을 주었다는 거냐
이성은 절대로 그런 짓을 하지 못한다
이성은 그렇게 비이성적이지 않은 것이다!
- 아타트롤 제5장 중에서
개들이 들으면 개같은 기분이겠지만 새겨 들어둘 일이다. 폭군의 시대에는 폭군의 개였다가 환관의 시대에는 환관의 개가 되고, 왜놈들의 시대에는 왜놈들의 개였다가 친일파의 시대에는 다시 친일파의 개가 되고, 독재자의 시대에는 독재자들의 개였다가 오너의 시대에는 다시 그 오너의 개가 되고 마는 미련한 개들은 잘 들어 둘 일이다. 그들에게도 다시 기회가 주어지는 시대가 자유민주주의의 시대라는 것을.
그러나 개로 말할 것 같으면
그놈은 말할 것도 없이
노예와 같이 남의 집이나 지켜주고 있다
수천년 동안 그놈은 인간으로부터
개처럼 취급받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의 자유국가에서는
개에게도 다시 한 번 부여할 것이다
옛부터 내려온 천부의 권리를
- 아타트롤 제6장 중에서
하이네는 더욱 강렬하다. 정치시를 써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시를 쓰다가 정치시를 완성해 버리고 말았다. 기왕 그렇게 된 것, 어떻게 되는지 한 번 끝까지 가보자.
얼굴에 드러나는 저 미소는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보다 더 철면피하다
인간의 웃음 속에는
뻔뻔스런 그들의 정신이 여실히 나타나 있는 것이다
- 아타트롤 제7장 중에서
나이 들어가며 체취가 고약해진다고 생각해서 외출할 때는 향수도 뿌리고 시원한 스킨도 바르고 다닌다. 19세기 중반의 유럽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유로운 오늘 날에도 많은 사람들은 깨끗하지 못한 곳에서 일하고 있다. 그들에게 충분한 보상이 이루어져서 비록 일할 때는 냄새에서 자유로울 수 없겠지만, 그들이 휴식을 취할 때만큼은 깨끗한 공기 속에서 쉴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그들이 사랑할 때에도.
대다수 성실한 시민들은
이 세상에서 악취를 풍기면서 일을 하는데
고관대작들은 라벤델이다 용연향이다 하는
오만가지 향수냄새를 풍기고 있다
- 아타트롤 제8장 중에서
정체성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꼭 가져야 하는 것인데, 그것에 대해 시비가 붙는 경우가 생긴다. 야만의 시대에 임금을 나리라고 불렀다고 해서 주리를 틀고 목을 잘라 죽여버리는 일이 벌어졌다. 그런 비슷한 일들이 자유의 시대에도 조금씩 남아 있으니 안타깝다. 시인은 이렇게 외친다.
그래 나는 곰이다
누가 뭐라건 털보라고 부르건
불평분자라고 부르건
나는 그냥 곰일 뿐이다
- 아타트롤 제9장 중에서
자본주의 체제가 시작된 이래로 인간의 풍요로움은 끊임없이 증진되어 왔다. 비록 분배의 불평등으로 가난 속에 신음하는 사람들이 많다지만 풍요롭지 못한 상황에서는 더욱 많은 사람들이 굶주렸을 것이다. 그래서 자본주의는 계속 발전되어야 한다. 어두운 그늘 속에 있는 사람들을 더욱 많이 보살펴야 한다.
오늘날의 인간들이 유혈참사극을 벌이는 것은
환상적인 신앙심 때문도
광신이나 정신착란 때문도 아니다
오직 사리사욕 때문이다.
- 아타트롤 제10장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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