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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서재

생명을 부지할수만 있어도 지상낙원_단순하고 소박한 삶_161227, 화

농사를 짓기 전부터 농업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관심을 가졌었다. 변산공동체를 다녀 오기도 했고, 괴산의 솔뫼농원에서도 하루밤 지내면서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홍성이나 진안의 공동체 마을에도 마음이 끌렸다. 니어링 부부의 집과 아미쉬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었다. 어울림과 협업의 즐거움을 얻는 것은 좋지만 일과 자유에 대한 제한이 뒤따를 것이라는 막연한 선입견 때문에 무일농원에서 쓸쓸한 시골삶을 살기로 했다. 자유를 얻으려면 포기할 것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잘못된 생각일지도 모른다. 지금부터라도 함께 하는 공동체로 움직여 볼까.


출발 이틀 전인데도 아직 여행 준비는 다 끝나지 않았다. 'zucchini 10 cent'라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주키니 호박 하나에 120원이라. 오래 전부터 책꽂이 한 쪽에 얌전하게 앉아 있던 이 책을 몇 번이나 뽑아 보았지만 실제로 읽지는 않았었다. 왜 그랬을까. 공동체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었다. 대한민국에서 가능할 수 없는 공동체이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가능하더라도 최소한 나에게는 불가능한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100원 짜리 동전 하나로 살 수 있는 호박'은 도대체 뭘까라는 호기심이 확 일어났다. 애잔함과 평화로움이 겹쳐지는 궁금증이랄까. 애호박 하나 생산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힘이 들어가야 하는데, 알사탕 하나값으로 살 수 있는 호박이라고? 그야말로 그냥 호박이었다.







"아미쉬 사람들은 거울을 가까이 하지 않는다. 용모를 가꾸고 치장을 하는 일을 금하고 있기에 외모를 뽐내기 위한 목적으로 거울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 대신 그들만의 거울이 있다. 그게 바로 조상들이 흘린 피로 얼룩진 '순교자의 거울(The Martyr's Mirror)'이요, 일상을 통하여 마음과 정신을 비추고 가다듬는 일깨움의 거울이다." (26쪽)


아미쉬Amish는 지도자인 제이콥 암만 Jacob Amman의 이름을 따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데 암만에 대한 자료는 빈약할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해 아는 것도 특별히 없다고 한다. 창시자 보다는 신이 중요한 것이고, 신 보다는 신의 말씀이 중요하며, 신의 말씀 보다는 그 말씀의 실천이 더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란다. 아미쉬들의 이런 태도는 훌륭하다. 스위스와 독일을 중심으로 형성된 재세례파 아미쉬 공동체가 미국에 정착하게 된 과정도 드라마틱하다. 개인에게는 드라마틱하지만 냉정하게 바라보면 결국 돈과 권력이 해낸 일이다. 쓸모있는 일을 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은 돈과 권력이다. 


"자메이카를 정복한(무일 : 정복했으니 얼마나 많은 원주민들을 살륙했겠는가) 영국 해군 제독 윌리엄 펜 의 아들 윌리웜 펜William Penn이 부친에게 유산으로 물려받은 신대륙의 광활한 땅에 식민지를 건설하기로 하고, 1681년에 영국으로부터 특허장을 받아냈다. 그는 나무가 유난히 많은 아름다운 이 땅을 자신의 성 'Penn'에 '숲'이라는 의미를 가진 'sylvania'를 더해 'Pennsylvania'로 이름 지었다. 독실한 국교도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퀘이커 교도가 되어 옥살이를 하는 등 스스로 종교적 박해를 당했던 윌리엄 펜은 이 땅 위에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완전한 자유를 보장받는 '지상의 낙원'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중략) 벼랑 끝에 내몰린 재세례파 교도들에게는 신이 내려준 희망의 밧줄이었다." (6~8쪽)


지상낙원이라. 야만의 시대에 저질러진 가톨릭의 광기와 폭력에서 벗어나 생명을 부지할 수만 있어도 지상낙원이다. 모든 전쟁을 반대한다는 것이 아미쉬들의 생각이었지만 그들이 이주한 1850년대로부터 150년 동안 미국은 전쟁의 광풍과 함께 성장하고 있었다. 1861년 남북전쟁에서 1인당 300달러를 내고 징집을 유예받을 수 있었던 것은 아미쉬들에게는 기적같은 일이었고, 세계대전 중에는 '대체복무'를 할 수 있어서 행복한 일이었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비난과 위협을 가했을텐데도 잘 이겨낸 것은 믿음과 공동체의 힘이 컸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