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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서재

러시아, 상상할 수 없었던 예술의 나라_170202,

세일가스의 개발로 인해 유류값이 급락하여 작년 한 해 정말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월 평균 40만원에 육박하던 자동차 가스값이 30%나 떨어진데다가 비도 내리지 않아서 전기자전거 헤르메스를 탈 수 있는 기회가 매우 많았다. 덕분에 자동차 가스값은 20만원 정도면 한 달을 쓸 수가 있었다. 한 달 용돈 50만원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20만원에 육박하는 돈의 여유가 생겼으니 그저 고마운 일이었다. 돈이 생겼다고 해서 딱히 쓸 곳도 없었지만 시골에서의 재정 자립에 그만큼 힘이 덜 들게 되어 기쁜 일이었다. 작년 말부터 유가는 다시 오르기 시작해서 가스값은 리터당 800원을 다시 넘어섰다. 금년은 작년만 못할 것이다.


세일가스와 유류값 인하로 기쁜 노래를 부르는 동안 멀리 베네수엘라와 러시아에서 통곡 소리가 들려왔다. 배럴당 100달러는 가야 부의 증대 효과가 있는 이 두 나라에 40달러에 미치지 못하는 원유가격은 재앙이었던 모양이다. 그 여파로 러시아 루블화는 폭락했다. 2015년 12월 31일에 1RUB의 매매기준율이 15.96원이었다. 2016년 12월 30일의 1RUB의 매매기준율이 19.94까지 치솟은 것에 비하면 20% 이상 평가절하될 정도였다. 같은 시기에 우리나라도 박근혜 정부의 정책 실패와 조선 산업의 붕괴, 재벌 오너들의 제몫 챙기기로 기업활동이 위축되는 바람에 경제 상황이 나빴던 것과 비교해서도 이 정도니 지난 2년 간 러시아와 베네수엘라가 겪은 위기가 이해될 만하다. 연초까지 계속 상승하던 루블화가 잠시 주춤거리고 있기는 하지만 유가 상승세가 계속 이어지면서 점점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푸틴에 의해 뭔가를 잡혀있는 듯해 보이는트럼프가 미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된 상황은 국제 유가 상승에 힘을 실을 것으로 보인다.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 발레와 쇼스타코비치, 짜르와 농노, 레닌과 10월 혁명, 볼셰비키, 트로츠키, 스탈린의 나라인 러시아는 도대체 뭔가. 고르바쵸프까지는 이해가 된다고 해도 술주정뱅이 옐친은 뭐고 마피아 같은 푸틴은 또 뭔가. 이게 나라인가. 그런 의문이 계속 들었다. 그래서 오래된 책이지만 한 권을 읽기로 했다.




이런 부분은 가슴이 뜨끔하다. 얼마되지 않는 책꽂이의 책들도 다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 역시 선진국일 수 있다는 것은 이런 시민들이 그득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의 출판연도가 2판에서 2009년이기는 하지만 2004년 이전의 경험들을 바탕으로 했다는 것이 아쉬운 면은 있다. 2010년 이후의 스마트폰의 시대에 그들이 어떻게 변화했는지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2000년대에 우리도 신문이나 책을 든 사람들로 지하철이 그득했을테니까 말이다. 아닌가. 엄지족들이 판치던 시절이기도 했던 것같기는 하다. 


"러시아인들만큼 독서를 좋아하는 민족도 없다. 웬만한 러시아의 가정에 가보면 책이 가득 쌓여 있는 방 하나 정도는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은 우리처럼 책을 장식하지 않는다. (장식용 책을 구입하기에 그들의 주머니 사정은 여유롭지 않다.) 그들은 자기가 원하는 책을 구입해 통독한 다음 주위에 돌려 읽힌 후 책장에 꽂아놓는다." (130쪽)


완전히 새로운 발상의 문화도 있다. 습관이 되면 무엇이든 불편하지 않겠지만 과연 이런 정책이 맞는 것일까 의문이 든다.


"모스크바에는 모스크바 역이 없다고 한다. 이는 우리 나라처럼 기차역이 어디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명칭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차가 어디로 운행하는가를 따라 역명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즉 모스크바에는 모스크바 역이 없고,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모스크바로 가는 기차가 운행되고 있기 때문에 모스크바 역이 있다." (115쪽)


경전철 하나를 제대로 완성하지 못해서 헤매고 있는 선진국 대한민국에 살다 보니 이런 이야기가 부럽기는 하다. 의정부와 용인의 경전철은 파행 운행되고, 인철 지하철은 수시로 사고가 나고 있으며, 북한산 앞에서 출발하는 경전철은 업체 부도로 공사가 중단되어 있다고 한다. 이 정도 밖에 안되는 자본과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게 정말 우리나라인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그럴리가 없을 것같은데 말이다.


"러시아에서는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노보시비르스크 등 세 개의 도시에 지하철이 운행된다. (중략) 오전 5시 30분부터 다음날 새벽 1시까지 운행 (중략) 운행 간격도 1~2분에 한 대 꼴이라 편리하다. 운행 속도는 거의 시속 100km 정도이다. (중략) 모스크바 지하철은 전 지역에 139개의 역이 거미줄처럼 뻗어 있다. 환승도 매우 편리하게 설계되어 있다. 각 역에는 독특한 조각 장식품과 아름다운 벽화가 그려져 있어 감탄을 자아내는데 마치 박물관에 들어와 유물을 감상하는 느낌이다. 


러시아에서는 모든 지하철역의 에스컬레이터가 지상의 출구까지 연결되어 있다. 때문에 노약자나 장애인들이 이용하기에 편리하다. (중략) 놀라운 것은 거이 100m의 깊이에서 지하철이 운행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유체역학 원리를 응용한 자연적인 환기 장치를 설치한 덕택에 공기가 혼탁하다는 느낌이 없다. (중략) 스탈린이 소련의 명예와 자존심을 걸고 건설했다고 한다. 그 후 지하철 건설 책임자로 일한 흐루시초프가 성공적인 책임 완수 덕택으로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 오를 수 있었다는 일화가 있다" (112~115쪽)


독재자와 파시스트의 대결. 위대한 시민들이 승리한 것일까. 2차대전 승전국 회의에서 콧수염 휘날리며 앉아있는 스탈린의 모습을 보는 것은 다소 역겹다. 뜯어보면 위대한 시민들의 승리였지 살인마의 승리는 아니었다. 사회주의를 최악으로 망가뜨려버린 역사의 죄인이다. 그 또한 정교회의 신께서 인간 이상으로 심판해주셨을 것으로 믿는다. 아뭏든 파시스트 나부랑이가 이런 시민들을 어떻게 이길 수 있었겠는가.


"1941년은 러시아사에서 가장 힘들었던 때였다. 독일 나치군이 세계 정복 야욕을 위해 러시아를 공격한 해였다. (중략) 레닌그라드 시민들은 나치 군과 격렬히 대항하며 도시 수호에 앞장섰다. 봉쇄 전 도시 인구가 400만이었는데 봉쇄 후에 250만으로 줄었다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아와 질병과 전쟁에 목숨을 잃고 고통에 허덕였는지를 알 수 있다. (중략) 그래서 레닌그라드는 지금도 '영웅의 도시'라고 불리고 있다. (중략) 나치와 전쟁이 한창이던 1941년, 레닌그라드 '필하르모니아' 오케스트라 연주장은 입구부터 홀까지 수많은 인파들로 초만원을 이루었다. 전시 체제로 인해 무기한 연기되던 '필하르모니아' 정기 연주회가 공연을재개했기 때문이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한가롭게 음악 감상을 하기 위해 콘서트 장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일이다. (중략) 쇼스타코비치의 7번 교향곡(Leningrad)을 감동적인 분위기에서 관람하였다." (55~6쪽) 


체첸 공화국의 독립을 위한 투쟁이 러시아의 끔찍한 상황을 말해 주듯이 분리된 소련은 많은 문제를 낳고 있다. 유고슬라비아의 분열로 발칸에서 끔찍한 내전이 발생했듯이. 쉬운 문제는 아니다. 평화롭게 해결해야 할 문제를 증오로써 풀 수밖에 없는 상황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증오를 선택하는 순간 피해자는 평화로운 나와 내 가족이다. 그것이 문제이다.


"러시아어에는 러시아 사람을 표기하는 방법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루스키'이고 다른 하나는 '루시스키'이다. 일반적으로 '루스키'는 토종 러시아 민족을 말한다. (중략) 러시아는 물론 모든 공화국의 사람들을 통틀어 지칭할 때 '루시스키'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사실 러시아의 천 년의 역사는 '루시스키'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략) 소련으로부터 공화국들이 독립을 선언하자 '루시스키'는 러시아와 신흥 독립 국가 사이에 상당한 골칫거리가 되어버렸다. 신흥 독립 국가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이 '루시스키'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그 자체가 자기들이 여전히 러시아의 속국임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당히 불쾌한 단어가 되어버렸다. (중략) 러시아인들이 가장 자랑하는 시대가 키예프 루시이다. 그 곳에서 러시아의 언어, 종교, 문화, 풍습, 그리고 찬란한 구전 문학이 생겨났던 것이다. 그런데 키예프는 이제 우크라이나의 땅이 되었다." (160~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