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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쉽게 넘어가는 일은 없다_161123, 수

어제 예기치 않은 새벽비가 내리더니 오늘은 제법 쌀쌀한데 겨울 기분이 나서 오히려 좋다. 든든히 옷을 입고 찰벼 가마니를 마음이에 싣기 위해 나섰다. 채 다섯 포대를 싣지 못했는데, 일손을 보태러 나오신다. 두 분은 천천히 나오셔도 되련마는 다 큰 아들이 걱정되시는지 노구를 이끌고 오셨다. 


지난 주말부터 오늘까지의 사이에 벌써 쥐들이 벼가마를 공격한 흔적이 역력하다. 손가락 하나 들어갈 정도의 크기지만 집요하게 물어 뜯고 열심히 집어 내어 먹은 모양이다. 농원에는 대략 일곱 마리 정도의 고양이들이 밤낮으로 돌아다니기 때문에 쥐들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데도 생존하기 위한 노력은 모든 두려움을 극복하게 하는 모양이다. 청테이프로 서생원이 뚫어놓은 구멍들을 막고 다시 볏가마를 옮긴다. 


30kg이 조금 넘는 볏가마를 지고 일어나는 일은 불가능하다. 볏가마를 쌓아서 서서 질 수 있는 높이를 만들고, 그 높이에서 볏가마를 짊어져야 한다. 그래도 잠깐 사이에 숨이 턱에 차 오른다. 34개의 볏가마는 온몸구석구석에 노동의 고통을 짜릿하게 전해준다.  


어떤 일도 쉽게 넘어가는 법이 없이 언제나 문제와 고비가 생긴다. 지난 5년 동안 이런 일들이 계속 되고 보니 도시에서의 일상은 정말 평화로웠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3년이 좀 달랐지만 말이다.


우리 쌀을 정미해 줄 정미소를 찾기 위해 2주 동안 전화를 70여통이나 하고, 인터넷 검색도 서너 시간을 했다. 며칠 동안을 수소문했지만 결국 기다리고 기다려 금왕으로 가야 했다. 태창정미소는 여전히 바쁘다고 한다. 9월 하순부터 시작해서 이번 달 하순까지 두 달 동안 1년 치 작업을 다 한다고 보면 된단다. 힘든 일을 하면서도 인상들이 좋은 것을 보면 마치 농부들이 수확을 거두는 기쁨과 같은 모양이다. 앞에서 작업하던 벼가 있어서 기다려야 했는데, 그 사이에도 끊임없이 전화가 오고, 쌀을 사러 온다. 벼베기가 끝난 시골의 모습은 활기찬 정미소에서 볼 수 있다.


직원들을 도와 벼가마도 끌어내리고 정돈도 하는 사이에 어느새 정미가 끝났다. 총 34개의 벼가마를(30kg x 34 = 1,020kg) 정미해서 10가마(찹쌀 20kg x 26개 = 520kg / 찹쌀 현미 20kg x 14개 = 280kg)가 나왔다. 정미비는 15만원이다. 정산을 하면서 찹쌀 상태를 물었더니 아직도 덜 마른 상태라고 한다. 바람이 잘 부는 야외에서 좀 더 말려야 완벽한 찹쌀이 나올 수 있다고 한다.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세 번의 비를 맞으며 열흘이 넘게 말렸는데도 제대로 마르지 않다니. 물론 그 사이에 해가 많이 나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단순한 일이면서도 단순하게 끝나지 않는 것이 농사일이다. 쉽지만 어렵다.


집으로 돌아와서 우리 쌀을 귀하고 고맙게 여기는 친구들과 친척들에게 보내기 위해 쌀 포장을 하고 택배로 보냈다. 9시부터 서둘렀지만 오후 5시가 다 되어서야 일이 끝났다. 무게는 줄었지만 여전히 무거운 20kg의 쌀포대를 들었다 놨다 하면서 비닐 포장을 해야 한다. 허리를 다치면 며칠은 꼼짝할 수 없기 때문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비닐포장을 묶는 작업 또한 고통이다. 여린 손가락을 파고 드는 날카로운 줄은 상처 내기 일보 직전까지 힘을 주어야 한다. 조금 익숙해져서 한쪽 장갑을 끼고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이것 하나가 마지막일 것같은 고통이다. 그 고통이 마흔 번 이어진 끝에 작업이 끝났다. 엄살인 것처럼 멀쩡해 지는 것도 신기하다.


마지막 일은 처가집에 보낼 김장용 배추를 싣는 일이다. 택배를 부치러 간 사이에 두 분께서 콤바인 포대에 배추를 뽑아 담아 놓으셔서 일이 한결 쉬웠다. 통닭을 한 마리 사다가 막걸리로 축하주를 했다. 매일매일이 고비이면서도 또한 축하할 일들이다. 그러니 즐겁고 풍요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