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을 말리느라 틀어 두었던 펌프에서 물이 새는 바람에 논에 물이 차고 있다는 어머니 말씀을 듣고 부리나케 논으로 달려갔다. 거의 2주만에 논에 들르는 모양이다. 지난 주말에 비가 와서 아직도 논바닥에 물이 흥건하다. 열흘 정도는 더 있다가 벼베기를 할 예정이니 그 사이에 비만 오지 않는다면 물이 마를 것으로 기대해 본다. 수소와 헬륨을 원료로 한 태양 복사 에너지가 없이는 논바닥의 물을 말릴 방법이 없다. 그저 태양신 아폴론의 따뜻한 도움을 바랄 뿐이다.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고라니들이 들어와서 놀다 나갔는지 메벼논 한가운데가 제법 넓게 짓밟혀져 있었다. 들어가서 벼포기를 세울까를 고민하다가 물이 마르지 않은 논에 들어갔다가 멀쩡한 벼들까지 상하게 할까 싶어서 발길을 돌렸다. 도대체 어떤 녀석들일까. 아무래도 내년에는 논가에 그물이라도 쳐야 할 모양이다. 작년에는 논둑에 심어놓은 쥐눈이콩을 전부 따 먹는 바람에 애쓴 보람도 없이 허망했는데, 이번에는 논에 들어가서 분탕질을 치고 나갔다. 그래도 쌀은 부족하지 않을테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다.
다시 밭으로 가서 밭둑에 쳐 놓은 부직포를 거두었다. 여기저기 구멍이 난 흉물스러운 부직포지만 잘 개어 두었다가 내년에 다시 한 번 재활용하려고 한다. 풀들은 부직포를 뚫고 나와 여기저기에 수천 억개의 씨앗을 뿌려 놓았다. 내년이면 이 녀석들과 또 한 판 씨름을 해야 할 모양인데, 그들의 인해전술에 당할 수는 없을 것이다.
부직포를 마치 귀한 비단 접듯이 접고 있으려니 이게 맞는 일인가 싶기도 하다. 비단은 나에게는 아무 필요없는 것이니 귀한 대접을 해 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부직포가 풀씨를 덮어주지 없으면 잠깐의 휴식도 어려워질테니, 비단 대하듯이 귀하게 대접해야 하고, 보관할 때도 소중하게 갈무리 해야 할 것이다. 비단이 부직포가 되고, 부직포가 비단이 되는 마술이 일어나고 있다. 먼지가 쌓여 목구멍이 칼칼하고, 흙을 털어내느라 애쓴 장갑은 걸레가 되어 불구덩이로 들어갔다. 날이 맑아서 꽹가리 소리가 청명하게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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