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고문이 오랜만에 배추심을 이랑을 만들어 주러 내려오셨다. 정책을 도무지 믿을 수 없어서 국민연금을 일시불로 찾아 당신이 직접 관리한다는 강한 성격의 소유자. 그러면서도 일은 정말 꼼꼼하게 하고, 일을 부탁하는 사람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확인하며, 그 의도에 맞게 일을 끝내려고 한다.
마당에 풀도 뽑고 두분이 따놓으신 고추도 건조기에 넣고, 읍내에 나가서 필요한 물건도 사고, 거북놀이 연습을 하는 것으로 하루를 보냈는데,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서 피곤하다. 아리스토파네스의 '구름'이라는 희극을 빌려 왔는데,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
그는 왜 소크라테스를 선동가로 몰아부쳐 비난했을까. 아리스토파네스는 보수주의자로서 평화와 아테네를 사랑했다. 전쟁을 선동하는 정치가들이나 그런 정치가들을 양산하는 소피스트들 특히, 돈을 받고 정의를 파는 소피스트들을 경멸했다. 다만, 소크라테스와 소피스트를 구분해 낼만한 지혜는 갖추지 못했기에 소크라테스를 고발한다.
그러면,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주인공인 그 연극을 보고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아마도 '아직도 내가 할 일이 참 많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절제와 정의, 탁월함을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아테네의 지도자들에게, 끊임없이 지혜를 설파하여 조국 아테네를 위기에서 구해내려고 다짐했다. 자신을 웃음거리로 삼는 연극을 대중과 함께 관람할 수 있는 용기.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리스토파네스는 아테나이가 스파르테와 몇 번이나 휴전조약을 체결할 기회가 있었는데도 이를 외면하고 파괴적인 전쟁을 계속하는 것은 정권을 장악한 사이비 민주주의자들이나 민중선동가들이 자신의 영향력을 계속 행사하며 치부하기 위한 것으로 보았다. 그는 또 돈을 받고 젊은이들에게 웅변술을 가르치는 소피스트들을 위험시했는데, 이들은 필요에 따라서는 옳지 않은 것도 옳은 것을 이기게 해줄 수 있다고 선전하고 다녔다. 그래서 아리스토파네스는 이들이야말로 아테나이의 전통적인 가치관을 철저히 파괴하는 위험인물로 보게 되었으며, 그의 보수적인 성향은 점점 극단으로 흘렀다.
마침내 그는 오히려 반소피스트의 대표자로서 상대 진리가 아니라 절대 진리를 추구하던 소크라테스와 계몽사상에 물들었던 비극작가 에우리피데스 같은 지식인들마저 이들과 한통속으로 몰았다." (8쪽)
아리스토파네스는 소크라테스의 지혜가 대중들의 한심한 궁금증을 해소하는데 활용된다는 것으로 비틀기를 시작한다. 벼룩이 얼마나 멀리 뛰는지를 알기 위해 밀납을 이용하거나 각다귀가 입으로 우는지 항문으로 소리를 내는지를 알아내는 것 등등. 희극답게 웃기는 소리를 해대는데, 예나 지금이나 우스개 소리는 비슷하다. 그리고 저렴하다.
"제자 : 그저께 그분께서는 도마뱀 때문에 위대한 사상을 놓쳐버리셨지요. (중략) 그분께서 달의 궤도와 회전을 규명하시느라 입을 벌리고 하늘을 쳐다보고 계셨는데, 그 도마뱀이란 녀석이 지붕에서 그분에게 싸버렸지 뭐예요." (26쪽)
이 희곡의 제목은 '구름'이다. 소크라테스가 그리스의 전통 신인 제우스나 포세이돈을 거부하고 구름을 신으로 받아들인 것을 비판하기 위해서다. 소크라테스는 비가 내리는 것과 천둥이 울리고 벼락이 치는 것이 모두 구름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분석했다. 기원전 5세기의 그리스에는 많은 자연철학자들이 있었고, 소크라테스도 자연철학을 공부했으므로 비와 구름, 천둥과 번개, 일식과 월식 등 자연현상에 대해 연구했다고 한다. 다만, 소크라테스는 자연철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근본 문제들의 답을 찾기 위해 자연철학을 넘어서서 숙고하는 삶, 철학을 택하게 된다. 아리스토파네스는 그분에 대한 반감으로 이런 깊이있는 지혜를 무시해 버린 모양이다.
"소크라테스 : 자네는 일찍이 구름 없이 비가 오는 걸 본 적이 있나? 자네 말대로라면, 제우스는 이분들께서 출타 중이실 때도 맑은 하늘에서 비가 오게 할 수 있어야 할 게 아닌가? (중략) 이분들께서 물기로 가득 차 움직이시지 않을 수 없게 되고, 비의 무게로 필연적으로 아래로 처지실 때면, 무거워진 몸들이 서로 부딪쳐 부서지며 굉음을 내는 거지.
(중략, 배탈이 나서 방구가 나오는 것을 예로 들며) 그것 봐. 그토록 작은 배에서도 그렇게 큰 소리가 나는데 끝이 없는 하늘에서 어찌 천둥소리가 나지 않겠는가? (중략, 제우스가 번개로 위증한 자를 벌준다는 말을 반박하며) 그는 왜 자신의 신전들과 수니온 곶과 키 큰 참나무들을 치는 거지? 무슨 생각에서지? 참나무가 위증을 하나?" (38~40쪽)
아들과 아내의 사치스러운 생활로 고통을 겪고 있는 농부 스트렙시아데스는 소크라테스에게 자신의 빚을 탕감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한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같다. 내가 줄 것은 줄이고 가진 것은 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다른 이유들도 많겠지만 부자들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일하는 변호사나 세무사들이 부유한 것은, 지켜진 재산을 일부 나눠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상식과 합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진다면 그나마 다행인데, 예나 지금이나 정도를 넘어서게 되는 경우가 많다. 삶에 지친 스트렙시아데스의 요구는 그래도 들어줄 만하다. 그는 성실한 농부였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의 원인이 해결 불가능하니 편법으로 위기를 타개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청한다.
진경준과 김정주의 은밀한 내부거래가 바로 그런 것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다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말이다. 4개월 후에 진경준의 주식은 무죄처분을 받았다. 검찰은 항소했지만 제대로 된 증거를 대지 않고 제식구 감싸기 식의 검찰 수사가 과연 진경준을 제대로 처벌할 수 있을까. 당분간은 불가능하다.
"스트렙시아데스 : 염려 말고 가르쳐주십시오. 이 애는 원래 재주가 많아요. (중략) 이 애에게 두 가지 논리를 다 가르쳐주십시오. 그것이 무엇이든 더 나은 것과 더 못한 것을 말입니다. 더 못한 것은 옳지 못한 말로 더 나은 것을 넘어뜨리죠. 둘 다는 안 된다면 옳지 못한 것만이라도 꼭 가르쳐주십시오. (중략) 이 애가 모든 정당한 것들에 대해 반론을 제기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66~7쪽)
세상의 모든 진리를 의심하는 것이 소크라테스의 방법이면서 사론의 방법이다. 그러면서도 소크라테스는, 아테네를 지키기 위해 세 차례의 전투에 적극 나섰으며, 전쟁의 비참한 주검들 속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숙고했다. 국가, 정부, 정치에 대해 의문을 갖고 이의를 제기했지만, 소크라테스와 그의 제자들도 아테네와 시민들을 사랑하고 지키려 했다.
아리스토파네스가 그리는 세상은 다르다. 학교와 체육관에서 아무 의심없는 진리로 아이들을 가르쳐야 한다. 오직 자신의 진리만이 페르시아로부터 아테네를 구해낸 마라톤 전사들을 육성해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소크라테스는 제거되어야 한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반사회분자로 몰아 축출해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보면, 반대자에 대한 관용과 귀 기울이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쉽지 않은 이 일을 해 내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민주주의는 발전할 것이고, 우리 삶도 파멸에서 벗어나 풍요로워질 것이다.
"정론 : 아이들이 아무도 학교에 가려 하지 않는 것은 다 자네 때문이야. (중략) 이것이 마라톤 전사들을 길러낸 그 교육방법이지. (중략, 체육관에 반대되는 개념으로써) 목욕탕을 멀리하고, (중략)그대는 또 노인이 다가오면 자리에서 일어서고, 부모를 버릇없이 대하지 않고, 수치스러운 짓은 일절 하지 않게 되리라. (중략) 요즘 젊은이들처럼 장터에서 되지못한 잡담과 재담을 늘어놓거나 지저분한 송사에 말려드는 일이 결코 없으리라." (68~72쪽)
아리스토파네스의 입장에서는 사론의 논리가 그럴싸해서는 안되고, 사론이 져서도 안된다. 그렇다보니 웃기는 논리로 사론의 승리를 선언해 버린다.
"사론 : 젊은이들은 혀를 훈련시켜서는 안된다고 했는데, (중략) 순결해야 한다고 했는데, 둘 다 가장 큰 악이오. (중략) 사랑을 하고, 간통하다 붙잡히는 날에는 끝장이야. 말할 줄을 모르니까.
자, 내 제자가 되어 멋대로 하고, 뛰고, 웃고, 아무것도 수치스럽게 여기지 말게. (중략, 제우스를 예로 들며) 그분도 사랑과 여자에 졌거늘, 인간인 그대가 어떻게 신보다 더 위대할 수 있겠느냐고!
(중략, 변호사, 비극작가, 대중연설가 등 많은 사람들이 오입쟁이들로부터 나온다는 정론의 동의가 있고 나서)
정론 : 맙소사! 훨씬 많아. 오입쟁이들이. (중략) 내가 졌네그려." (76~8쪽)
소크라테스로부터 사론을 전수받은 페이딥피데스를 보며 스트렙시아데스는 기쁨에 넘쳐 이렇게 노래한다.
"스트렙시아데스 : 오오, 내 아들아, 얼씨구절씨구! 먼저 네 안색을 보니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구나. 이제 너는 우선 부정적 반론의 모습을 하고 있고, 이 나라 특유의 '그게 무슨 뜻이죠?'가 입가에 활짝 피어 있구나. 나쁜 짓과 범행을 저지르고도 오히려 당한 척하는 것. 나도 알아. (중략) 넌 예전에는 내 파멸이었지만 이제는 구원자가 되어다오!" (81쪽)
스트렙시아데스는 채권자들의 닥달로부터 벗어나 아들과 잔치를 벌인다. 그런데 어떤 노래를 부를 것인지를 놓고 설전을 벌이다 아들에게 두들겨 맞는다. 어떤 나은 것도 나쁜 것으로 이길 수 있도록 훈련된 페이딥피데스가 아버지를 두들겨 패는 패륜을 저지른 것이다. 악한 것을 추구했던 순박한 농부는 한탄한다. 웃기게.
"스트렙시아데스 : 이 뻔뻔스러운 녀석아! 나는 너를 길러주었고, 네가 웅얼거리면 매번 네 뜻을 알아차리곤 했는데, (중략) 그런데 지금 네가 내 목을 졸라? 내가 마렵다고 아무리 고함을 질러도, 이 고약한 녀석아, 너는 나를 문밖으로 데리고 나가기는커녕 내 목을 조르는 바람에 내가 그만 그 자리에서 응가를 하고 말았단 말이야." (92쪽)
충격을 받은 아버지는 신들을 원망한다. 왜 자신을 파탄의 길로 가는 것을 부추겼느냐며. 그러자 코러스장이 대신 답한다. 항상 명심해야 할 일이다. 신들은 악행을 사랑하는 자를 이렇게 심판할 것이다. 악행을 통해 얻을 것을 얻고, 얻어낸 것이 있으면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여, 또 다시 악행을 저지르게 한다. 파멸할 때까지. 이 말을 두려워 하지 않는 자들은 파멸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전두환과 그 자식들을 보라. 대를 이어 파멸해 가고 있다.
"코로스장 : 누가 악행을 사랑하는 것을 보면 우리는 늘 그렇게 하느니라. 그자가 파멸의 나락에 떨어져 신들을 두려워할 줄 알도록!" (95쪽)
아리스토파네스의 신념에 의해 만들어진 이 희곡이 소크라테스를 왜곡했지만 이에 대해서 직접 연극을 관람한 소크라테스는 어떤 반론도 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생사를 가르는 재판장에서 변론에 나선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만들어진 구름을 언급하며, 돈도 받지 않고 젊은이들과 대화를 나누었으며, 신탁의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과 대화하며, 최소한 자신이 지혜롭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 죄가 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통해 지혜롭고 현명한 자도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자. 소크라테스의 노력에도 아테네는 재기하지 못하고 멸망한다. 대세는 바꿀 수 없으니, 대세가 파멸로 가지 않도록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시끄러운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내가 사는 세상이니 파멸을 피해야 한다.
소크라테스의 방법은 틀렸다. 아리스토파네스를 친구로 끌어 들이거나 활용할 수 있어야했다.
- 아리스토파네스 희극 전집 /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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