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지은 아파트가 사람 특히 아기들 몸에 좋지 않고, 아토피와 천식을 유발한다고 해도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 교통이 편리하고 활용 면적이 넓고 공원이나 주차장 등 편의시설이 좋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부자들은 투기 목적으로 보유하는 강남의 재건축 대상 아파트를 제외하고는 새 아파트에 입주하여 돈자랑도 하고 좋은 환경도 누린다. 부자이지 못한 사람들은 오래된 아파트가 건강에 좋다는 논리에 위로받으며 살고.
특별히 읽을 책이 없어서 서가를 누비다가 묘한 제목이 눈에 띄어 골랐는데, 체코의 인기 소설가인 보후밀 흐라발의 소설이었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다가 독일군에 의해 대학이 폐쇄되자 철도원, 보험사 직원, 제철소 잡역부 등의 다양한 생활을 경험하다가 마흔 살이 되던 해부터 비로소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묘사를 하는 그의 책은 정부로부터 감시와 검열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래도 체코를 떠나지 않고 작품활동을 하다가 1997년 프라하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5층 창문에서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다가 추락해 삶을 마감했다고 한다. 마치 소설과 같은 죽음이다.
체코나 폴란드 모두 중세의 풍부한 역사를 가진 도시이지만 히틀러의 나찌에 끝까지 저항했던 폴란드의 바르샤바는 완전무결하게 파괴되어 고도의 아름다움을 잃어 버렸고, 체코의 프라하는 기분을 억누르고 재빨리 나찌에게 복종함으로써 도시 전체를 보호할 수 있었고 오늘날 관광명소가 되어 수많은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전쟁이나 저항다운 저항도 해 보지 않고,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나라를 빼앗겨, 수십만명의 젊은 처녀들은 일본군의 성노리개가 되고, 역시 수십만명의 장정들이 미쯔비시를 비롯한 수많은 군수공장에서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며 노예처럼 살아야 했던 우리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국가를 유지하는데 있어서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올바른지 알 수가 없다. 다만, 강력한 민주주의 역량과 군사력을 갖춘 국가를 유지하지 못한다면 언제나 노예신세로 전락하게 된다는 사실만은 분명할 것이다. 특히, 나라 팔아 먹은 정치가들에게 특권만 부여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나라를 지키는데 얼마나 열심히 노력을 하는지, 자기 배를 불리는 것이 아니라 나라의 곳간을 채워 공공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직접 혜택을 주는지를 잘 살펴야 할 것이다. 소위 출세했다고 하는 공무원들과 정치가들 모두 우리가 낸 세금과 우리가 지킨 나라의 틀 안에서 호의호식하는 사람들이다. 제대로 일하는지 철저히 감시할 일이다.
작가는 낡은 아파트를 산 사람들이 갖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호텔의 웨이터로 생활하는 어린 주인공의 눈을 통해 그 의문을 자세하게 제기한다. 좋은 음식을 먹으며 멋진 이야기를 나누고, 아무 거침없이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쾌락을 추구하며 언제나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많은 돈을 벌어 거침없이 낭비할 수 있는 것은 부자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윤태호의 만화를 각색한 영화 '내부자들'의 파티 장면이나 이건희 동영상에 나오는 이야기가 벌써 1900년대 프라하의 부자들에게서도 행해지고 있었다. 아마 그 보다 더 오랜 전인 로마시대의 귀족들이나 고대국가 시절의 아시아의 왕궁이나 귀족들의 궁성에서도 행해졌을 것이다. 좋은 것은 과거에서 배우기 때문이다.
"여기 호텔 티호타에서 알게 된 사실이 또 하나 있었다. 노동은 고귀하다, 라는 주장이 다름 아닌 우리 호텔에서 예쁜 아가씨들을 무릎에 앉히고 밤새 마시고 먹고 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머리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바로 어린아이들처럼 행복할 수 있는 부자들에게서 나온 것이다. 전에 나는 부자들이란 형편없는 자들이라고 생각했다. 소박한 오두막집과 작은 방들 그리고 시큼한 양배추와 감자, 이런 것이 사람들에게 행복과 평안을 주는 것이지 돈이 많은 것은 저주받은 거라고 여겼다. 그런데 가만 보니 가난한 오두막집의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에 대하여 떠들어 대는 이야기도 다름 아닌 우리 호텔 손님 같은 부자들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중략) 그들은 버릇없는 아이들처럼 소리 지르고 뛰어다니며 인생을 즐기고 서로에게 장난치며 골탕을 먹였다. 그들에겐 이런 모든 걸 할 시간이 넘쳐났다." (102~3쪽)
우리는 순박한 사람을 좋아한다. 맑은 눈동자를 가지고 조용한 미소를 날리는 원주민이나 시골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이 커다란 기쁨이다. 그런 순박함을 지녔던 주인공은 호텔을 드나들던 비즈니스맨에게 감동을 받아 부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나치독일의 간호장교였던 아내를 만나서 드디어 원하던 백만장자의 대열에 섰지만 원래 부자였던 사람들에 의해 그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조국을 조금이나마 배신하고 사랑을 선택했지만 조국에서 살기를 원했고, 죄값을 치른 후에 꿈에 그리던 백만장자의 삶을 살게 되었지만 그들로부터 버려진 그는 산속으로 들어가 개와 조랑말과 염소, 그리고 까칠하지만 그를 사랑한 고양이와 함께 산다. 비둘기가 전하는 더럽고 요란하지만 평화로운 상징이 좋았고, 그것이 자신이 살아가야 할 길이라고 믿는다.
아주 잔잔하면서도 길게 서술된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결국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 노동의 고귀함이 그를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진정한 부자로 만든다고 결론 짓는다. 많은 사람들이 속고 살아가지만 부자들에 의해 전파된 사실과 다른 이데올로기는 결국 진실이었다는 것이다. 잔잔한 긴장감 속에서 그는 삶의 행복을 느낀다.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꾸밈없이 자신을 드러냄으로써 진정한 자신을 찾아간다는 것이다.
"좀 더 표현을 잘할 수 있는 자가 더 나은 인간이라고 했단 말이 생각나면서 다른 사람이 읽을 수 있도록 지나간 것들을 써보겠다는 소망이 나를 엄습했다. 나 스스로 자신 앞에 '모든 형상들을 그려보기'라는 방법으로, 눈이 내려 집의 허리까지 차오른 걸 보고 놀라면서 이곳에서 내게 경이롭게 다가오는 삶이라는 긴 줄에 진주알이나 묵주 알을 꿰듯이 그 형상들을 쓸 것이다. (중략) 나는 낮에는 마을로 가는 길을 찾고 저녁에는 글을 쓰며 다시 내 인생의 길을 찾아 내 과거를 덮고 있는 눈을 치울 거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글자의 도움으로 글을 쓰면서 자신을 알아가는 일을 시도할 것이다." (342~3쪽)
- 영국왕을 모셨지 / 보후밀 흐라발 / 김경욱 옮김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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