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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서재

자유로운 땅에서 자유로운 사람들과 더불어 지내고 싶네_파우스트 3_160728

뜨거운 햇살을 피해 고구마 줄기를 걷어다가 하우스 옆 그늘에 앉아 어머니와 아들, 며느리가 고구마순을 다듬는다. 수레 한 가득 넘치게 담긴 고구마 줄기들이 부지런한 세 사람의 손놀림에 따라 착착 줄어든다. 그렇게 농원에서의 마지막 협동 작업을 마치고 부천으로 돌아왔다.


재미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파우스트에 대해 천재는, '아빠, 그게 그렇게 어려워'라며 안타까워 한다. 플라톤 TV의 파우스트 강의를 듣는다. 한 시간이 넘도록 이어지는 강의 속에서 '그렇군' 하는 생각을 한다. 역자의 설명 글에서도 읽을 수 있었지만 파우스트는 스토리의 전개가 중요한 희곡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대로 읽어내면 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파우스트가 사탄에게 영혼을 파는 문제를 생각해 보았다. '영혼을 판다'는 것은 살아 있을 때 내가 가진 의지를 판다는 것으로 나는 이해했다. 오해였다. 파우스트에 분명히 나와 있다. 살아서는 파우스트가 사탄을 지배하고, 죽어서는 메피스토텔레스가 파우스트를 지배하는 것이다. 모든 존재가 그렇듯이 살아있는 동안 파우스트는 원하는 것을 좀 더 해 볼 수 있다.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사탄의 도움을 받아서. 실재했던 파우스트가 현실을 뛰어넘는 삶을 살았듯이 괴테의 파우스트는 다시 젊어지고, 순결한 사랑을 받고, 역사의 인물과 사랑을 하고, 간척지를 만들어 그가 꿈꾸는 세상을 만든다. 신의 지혜에 근접한 인간이라면 당연히 꿈꾸게 되는 그런 일을 하는 것이다. 환상을 현실로 만들어 가는 것. 제1부 비극부터 다시 읽어본다. 파우스트의 절망에서부터.


"파우스트 : 철학, 법학과 의학, (중략) 신학까지도 온갖 노력을 기울여 깊이 파고들었거늘 이 가련한 바보가 조금도 더 지혜로워짖지 않았다니! (중략) 결국 우리가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사실만을 깨닫다니! (23쪽)


(중략, 파우스트와 그의 아버지가 흑사병을 치료하기 위해 애썼던 것을 아는 마을 사람들의 칭송을 받자 괴로워하며) 환자들이 죽어 나갔는데도, 완치된 사람이 있느냐고 누구 하나 묻지 않았지. 우리는 그 흉악한 탕약을 가지고 (중략) 흑사병보다도 더 고약하게 날뛰었네. (중략) 그들은 세상을 떠나고, 나는 살아남아서 파렴치한 살인자들을 칭송하는 소릴 들어야 하다니. (중략) 인간은 막상 필요한 것은 알지 못하고, 필요 없는 것만 잔뜩 알고 있는 것을. (48쪽)"


지혜로운 선인들의 책으로 아무리 열심히 공부하고 연금술로 신비의 영약을 만들었지만 지혜도 얻지 못하고 환자도 치료할 수 없어서 절망에 빠진 파우스트. 북한의 핵개발과 미국의 싸드 포대가 한반도의 평화를 조금씩 뭉개고 있는데도 평화를 위한 확실한 방법을 제시하지 못하는 많은 전문가들의 절망과 한탄이 함께 들린다. 인간은 원래 풀 수 없는 과제를 안고 고민하다가 그 과제로 고통받고 나서야 비로소 해결책을 찾아내는 한 박자 늦은 지혜로운 생명체다. 검찰은 스스로 부유해 지기 위해 시민들로부터 부여받은 권리를 최대한 활용한다. 그것을 모든 사람이 아는데도 역시 해결책은 제시되지 못한다. 200년 전의 괴테나 우리나 고민의 본질은 같다.


이런 식의 절망은 매일 매일 진리를 깨닫기 위해,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에게는 공감이 될 것이다. 정말 괴로운 일이지만 한편으로 즐겁기도 하다. 누구도 이런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모두 평등하다. 


"파우스트 : 나는 아침마다 자지러지게 놀라며 눈을 뜬다네. 해질 때까지 단 한 가지, 그야말로 단 한 가지 소망도 이루어 주지 않을 하루를 맞이하고는 통곡하고 싶다네." (66쪽)


희망이 보이지 않는 공부에 지친 파우스트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고 싶어한다. 절망하는 파우스트를 메피스토펠레스는 유혹하지만 파우스트는 제법 강인하다. 그렇지만 사탄이 요구하는 계약을 맺는다. 그 과정을 보자.


"메피스토펠레스 : 독수리처럼 선생의 생명을 쪼아 먹는 원망일랑 그만두시오. (중략) 선생이 나와 함께 삶을 두루 섭렵할 의향이 있으면, 당장 선생을 받들어 모시겠소. (중략) 그 누구도 아직껏 눈으로 보지 못한 것을 누리게 해주겠소. (중략) 파우스트 : 가련한 사탄 주제에 뭘 누리게 해주겠다는 겐가? 드높은 것을 지향하는 인간의 정신을 자네 따위가 어찌 알겠는가? (중략) 계약을 맺도록 하세. 순간이여, 멈추어라! 정말 아름답구나! 내가 이렇게 말하면, 자네는 날 마음대로 할 수 있네." (68~70쪽)


술집에서 빈둥대며 헛소리를 하며 즐기는 젊은이들과 마법으로 빚은 술로 한바탕 잔치를 치른 뒤에 사탄은 파우스트를 30년 젊게 만들어 주기 위해 마녀에게 인도한다. 재미있다. 아마도 주변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도시에서 온갖 병균들이 창궐하고 오물과 쓰레기가 넘쳐나는 지옥같은 환경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가름침이 아닐까 싶다. 짐승의 것이든 사람의 것이든 자연으로 되돌려 처리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을 19세기의 도시 사람들도 알았던 것이다. 지금은, 도시의 귀족들을 살리기 위해, 바다로 시골로 산속으로 지하로 대기로 온갖 오물과 쓰레기들을 내다 버리고 있다. 괴테가 살았다면 이 문장은 다시 쓰여져야 할 것이다. 도시로 가서 수세식 변기에 앉아 청소차에 쓰레기를 버리고 재활용품을 분리하는데 애쓰는 것을 분하게 여기지 말라. 그러면 여든 살까지 젊음을 유지하는 최고의 방법이 될 것이다.


"메피스토펠레스 : 돈이나 의사, 요술의 힘을 빌리지 않는 방법은 곧장 들판으로 나가서 호미질하고 곡괭이질하는 것이오. 몸과 마음을 극히 절제하고, 정결한 음식으로 요기를 하고, 가축과 한 가족이 되어 살며 논밭에 직접 거름 주는 것을 분하게 여기지 마시오. 그것이 여든 살까지 젊음을 유지하는 최고의 방법이오." (95쪽)


태초에 말씀이 있어서 세상을 창조했다는 요한복음의 말씀을 읽으면서 괴테는 말씀의 자리에, '뜻'과 '힘'과 '행위'를 대체해 본다. 만물을 창조하고 다스리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파우스트는 존재하는 모든 지식과 신앙을 회의한다. 젊음을 만드는 마녀의 요술이나 신학이나 다를 바 없다고 선언한다. 다만, 몸조심은 해야 하니, 사탄의 입을 빌려서. 


"메피스토펠레스 : (마녀의 주문을 들으며) 완벽한 모순은 현명한 자에게나 어리석은 자에게나 똑같이 비밀스럽기 때문이오. (중략) 셋이 하나요, 하나가 셋이라고 진실 대신 착각을 퍼트리는 방법이잖소. 저런 식으로 마음껏 지껄이고 가르치며, 누가 그 멍텅구리들을 상대하고 싶겠소? 그런데도 사람들은 흔히 말만 듣고서, 뭔가 깊이 생각할 것이 들어 있나 보다고 믿는다니까." (102~3쪽)


사랑이 어떻게 시작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젊은 청춘 남녀는 사랑을 한다. 모든 것이 아름답고 환희에 차 있다. 아, 아름다운 보석이 있었다. 여자에게는 눈부시고 순결한 아름다움이 있고, 남자에게는 그녀를 장식할 아름다운 보석이 있어서 사랑이 시작되었다. 그럴까. 사탄은 말한다. 뜨거운 피가 다시 흐르기 시작하면 세상의 모든 여자가 헬레나처럼 보일 것이라고. 어쨋든 시작된 사랑을 파우스트는 평화롭게 끝낼 수 있었다. 그레트헨이 파우스틀 그리워하다가 말라 죽을 수는 있을 지언정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파우스트는 끝을 향해 행동한다. 멈출 수 없는 사랑이라는 행동의 비극을 받아들인다. 그녀는 사랑으로 이미 평정을 잃었고, 파우스트 또한 사랑하고 싶기 때문에.


"파우스트 : 그녀의 품에서 느끼는 천상의 기쁨이 무엇이냐? (중략) 내가 그녀를 깨뜨리고, 그녀의 평화를 깨뜨리다니! 지옥이여, 네가 이런 희생을 원했단 말인가! (중략)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차라리 빨리 일어나라! 그녀의 운명이 나에게 무너져 내려, 나와 함께 멸망하리라!" (134~5쪽)


이제 그만 다시 읽기를 끝내야겠다. 왕국의 지하에 묻혀 있다는 황금을 근거로 해서 황제의 서명이 들어간 전표는 파산 상태의 왕국을 일으켜 세우고 흥청망청 사랑이 이루어지고 즐거움이 실현되고 좋은 성채를 얻게 한다. 그것을 즐기던 황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웠다는 헬레나와 파리스를 데려오라고 파우스트에게 명령한다. 파우스트는 메피스토펠레스의 도움으로 지하세계로 내려가서 많은 철학자들을 만난다. 그 모든 이야기들은 다시 되새김질 하고 싶지가 않다.


마지막으로 파우스트의 투덜거림을 들어보자. 인간은 결국 즐거워지기를 원하는 것이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을 원한다. 돈도 결국 즐거움의 지속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즐거움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면, 돈에 대한 집착과 허구의 재산은 필요없게 될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두려움 없이 즐거움이 계속될 것이라 믿지 못할 것이고, 결국 즐거움의 전제인 돈에 매달리게 될 것이다, 진정 자유롭고 행복하려면, 사랑과 즐거움으로 충만한 삶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부자로 만들어 주니까 이젠 즐겁게 해달라고 성화일세." (245쪽)




- 파우스트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희곡 / 김인순 옮김 / 열린책들(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