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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서재

그대는 나의 꽃이다_한 수학천재를 위한 레퀴엠_160822

꽃다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한 수학자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잠깐 보았다.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그냥 궁금증을 묻어두고 있었는데, 도서관의 서가에서 우연히 그의 이름을 보았다. 에바리스트 갈루아. 그의 짧은 생애로 과연 이렇게 두꺼운 책을 쓸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을 갖고 책을 열었다. 책에 인용된 휘슬러(1834~1903)라는 화가의 이야기는 고개가 끄덕여지는 멋진 말이다. 그래서 다시 인용한다.


"명작은 모름지기 명작을 만든 작가에게 꽃으로 보여야 한다. 봉오리 상태일 때나 활짝 핀 상태일 때 모두 완벽해야 한다. 그 존재 이유를 설명해야 할 필요도 전혀 없다. 완성해야 할 임무도 없다. 예술가에게는 기쁨이요, 박애주의자에게는 미혹이며, 생물학자에게는 풀지 못하는 숙제이고, 문학가에게는 감성을 자아내 문학적 기교를 부리게 하는 우발적 사태이다." (27쪽)


대칭과 방정식에 대한 길고 긴 재미있는 서술들 중에서도 3차 방정식 문제를 두고 내기를 했다는 수학자들의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귀족이든 학자든 모두들 그런 문제에 매달려서 1500년대 전후의 200년을 살았다는 것이다. 돈과 권력을 모두 소유한 한가한 귀족들에게는 좋은 취미였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물론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16세기 볼로냐에서는 수학에 대한 관심이 크게 고조되었다. 수학자들과 다른 분야의 학자들이 모여 논쟁 시합을 벌였고 이런 논쟁 시합은 많은 청중을 불러 모았다. 논쟁 시합에는 대학 관계자나 심사위원뿐만 아니라 학생, 서로 논쟁을 벌이는 양측의 지지자들, 구경삼아 온 사람들과 도박의 기회로 삼고자 하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중략) 도시에서나 대학에서 자신의 명성을 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종신 교수직을 얻거나 급료를 높이는 데에도 토론회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토론회는 광장, 교회, 그리고 귀족과 군주들의 궁정에서 열렸다." (107~8쪽)


중요한 3차 방정식 풀기 시합에서 승리한 수학교사 타르타글리아(말더듬이)는 프랑스 병사에 의해 상처입은 입의 상처를 감추기 위해 평생 수염을 길렀다고 한다. 그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집안이 어려워지자 알파벳을 K까지만 배우고 읽기와 쓰기 공부를 중단했다고 한다. 말은 되지 않지만 어쨌든 정규 교육을 받기 어려웠었는데 독학으로 수학교사가 되었다고 한다. 그의 말은 들어볼만하다.


"나는 결코 어떤 교사에게서도 배우지 못했다. 하지만 독학으로 열심히 공부했다. 내게는 조력자가 있었다. 가난이 낳은 딸, 바로 근면이 내 조력자였다." (109쪽)


한참을 돌아 5차 방정식의 일반 해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의 어려움을 설명하고 나서 본문으로 들어간다. 아벨이라는 청년 수학자에 대해서.


 "수줍음이 많았으며, 천재였고 수학과 연극을 사랑했다. 그는 가난 때문에 굶어 죽었다." (145쪽)


"<초월함수 집합의 일반 성질에 관한 연구>란 제목의 뛰어난 논문에는 이론과 응용이 모두 들어 있었다. 논문이 완성되자 아벨은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1826년 10월 30일, 그는 부푼 기대를 안고 프랑스 과학원에 논문을 제출했다. (중략) 코시와 르장드르가 곧바로 심사위원으로 지명되었다. (중략) 아벨은 두 달 동안 파리에 머물며 결과를 기다렸다. (중략) 위대한 수학자라면 당연히 논문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심사위원으로 위촉된 두 사람이 업무를 수행하기에 적합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르장드르는 그때 77세의 노인으로 긴 논문을 읽어낼 끈기가 없었다. (중략) 코시는 자기 알을 낳아 부화시키는 데에만 정신이 온통 팔려 있었다. 그래서 아벨이라는 봉황새가 낳은 알을 살펴볼 시간이 전혀 없었다. (중략) 아벨의 논문을 읽은 또 다른 사람은 위대한 독일 수학자 카를 구스타프 야콥 아코비였다. (중략) 금세기 가장 중요한 바로 그 연구가 2년에 전에 프랑스 과학원에 제출되었는데도 선생님과 선생님의 동료 학자들은 미처 알아채지를 못했습니다." (165~9쪽)


한반도에서는 그리고 중국과 일본에서도 국지전은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박근혜 정부에서 북핵의 위협과 싸아드의 안전성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한반도의 균형 상태는 당분간 유지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중국의 안정되고 지속가능한 성장과 일본의 정체, 북한 핵개발, 한반도의 핵우산과 MD 체제의 구축은 균형 상태에서의 군비 경쟁이라는 하나는 좋고 하나는 나쁜 상황을 지속해 가게 할 것이다. 변수가 될 수 있는 것은 대한민국의 경제 침체인데, 그것도 정권 교체의 반복을 통해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 속에서 우리 아이들이 공부하고 있으니, 계속 공부를 하든 돈을 벌든 세계로 나아가 꿈을 펼치든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면, 아벨과 갈루아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에 프랑스에서 위대한 수학자로서의 삶을 기대했던 그들은, 프랑스 혁명 - 삼국동맹에 의한 반혁명 - 혁명 보위를 위한 제1차 나폴레옹 전쟁 - 나폴레옹의 사심을 채우기 위한 제2차 나폴레옹 전쟁으로 이어지는 50여년 대 격변기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노르웨이의 심각한 경제위기와 관료주의의 악영향으로 인해 아벨은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다 폐결핵에 걸려 죽었고, 이제 곧 갈루아도 비슷한 비극으로 그의 생을 끝마쳐야 했다. 이 과정에서 역시 프랑스의 수학자 코시가 있었다. 두 천재 모두 코시의 자기애에 절반쯤 희생되고 말았다.


"리샤르는 갈루아에게 연구 성과를 두 편의 논문으로 정리하게 했다. 리샤르는 그 논문을 위대한 코시에게 가져가 과학원에 제출할 생각이었다. (중략, 6개월 후 코시는) 자신의 논문만을 발표했을 뿐 갈루아의 논문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중략) 갈루아는 논문을 약간 수정하여 수학 대상 선정 위원회에 참가 논문으로 다시 제출했다. (중략) 푸리에가 갈루아의 논문을 집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그는 5월 16일에 세상을 떠났고 갈루아의 논문은 행방이 묘연했다. (중략) 이때부터 편집증 증세가 있던 갈루아는 보잘것 없는 세상 사람들이 결탁해 자기 앞길을 가로막고 있다는 확신을 품었다." (189~191쪽)


대혁명의 보위를 위해 노력한 갈루아는 대학교육에 대해 이런 의문을 제기한다. 요즘도 물리학과를 비롯한 온갖 학문 분야에서 축적된 옛것을 학생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미적분도 제대로 풀지 못하는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왔다고 한탄하면서. 근본 이유는 굳이 대학교육이 필요 없는 아이들까지 대학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벌어지는 온갖 학력차별과 임금차별이 아닐까. 너무 많은 대학생들은 더더욱 많은 대학원생들을 만들어내고, 더더더욱 많은 석박사들을 길러내다 보니 결국에는 쓸모없는 대학들을 세금의 지원으로 설립하게 한다. 이런 구조 속에서 미적분을 싫어하는데도 이공계 대학을 가야 하고, 철학을 이해하지 못하는데도 인문계 대학을 가야 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진다. 정치가들과 교수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의 덫일 뿐이다.


학력에 따른 임금 차별을 철폐해야 하고, 필요한 기술을 습득하는 - 그랬더니 죽기 딱 좋은 작업환경에서만 일해야 하는 특수용접공들만 길러내는 기술대학들이 늘어난다. 정말 그런 기술들만이 우리 세상에 필요한가  - 기술대학이 잘 운영되어야 한다. 공공의식을 갖춘 청렴한 정치가와 공무원들만이 이 일을 해 낼 수 있다. 지금은 불행하게도 그렇지 못하다고 본다.


"언제까지 학생들은 하루 종일 수동적으로 강의를 듣거나 아니면 반복해 암송만 해야 할까? 축적된 지식을 숙고할 시간은 언제나 주어질까? 수많은 정리와 연관성 없는 계산들을 정리하여 내재된 패턴을 찾아낼 수 있는 시간은 언제나 주어질까? 학생들은 시험 통과에 관심이 있지 학습 자체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202쪽)


갈루아의 한탄은 계속된다. 그의 말은 옳다. 그런데, 현실은 넘을 수 없는 벽이다. 타협해야 한다. 슬슬. 아니면 어떤 형태로든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19세기 초반의 유럽에서는 힘들었을 것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에서는 어떻든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갈루아의 결론은 불가능하다. 시대를 그에게 맞출 수는 없다. 현대에도 불가능한 일을 200년 전에 기대했던 것이 갈루아의 불행이 아니었을까. 모든 깨끗한 자유주의자, 공화주의자들의 비극이기도 하다.


"이 논문 제2쪽을 펴보아도, 입에 발린 소리를 들어야만 지갑을 여는 인색한 벼슬아치의 이름이나 직함, 서훈 내용, 그를 칭송하는 글이 나오지 않는다. 또 과학계의 높으신 어르신이나 현명한 후원자에게 사람 머리의 세 배만큼 큰 글자로 써서 바치는 감사의 글도 나오지 않는다. 사람들은 20살에 논문을 쓰려면 그런 것들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하지만 나는 사람들이 어쩔 수 없어서 따르는 것뿐이라고 말하고 싶다). (중략) 이기심이 더 이상 과학을 지배하지 않을 때 (중략) 사람들은 아무리 작은 연구 결과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새로운 결과라면 '나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라는 글귀와 함께 기꺼이 발표하게 될 것이다." (216~7쪽)


스스로 위대한 일을 했다고 생각한 사람에게 세상은 얼마나 냉정한지 모른다. 갈루아는 확실한 연구성과를 남긴 위대한 수학자이면서 모든 시민들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공화주의자다. 그러나 사리사욕에 눈이 멀거나 제 앞가림 하느라 바쁜 대다수의 시민들에게 그의 헌신은 딴 세상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때 중심을 잡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조금 천천히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갈 수 있었으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을테지만, 신은 그에게 모든 행복을 주시지 않았나 보다. 그의 젊음이 한 순간에 사라지는 순간이 오고야 만다. 그리고 이 책의 나머지 부분은 그가 이룩한 위대한 수학이론을 설명한다. 이해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으나 끝까지 천천히 읽어보도록 하자. 혹시 천재의 영감으로 내 뇌의 새 세상이 열릴지도 모르니까. 아벨과 갈루아의 명복을 빈다. 위대하고도 미미했던 천재들에게 사랑과 동정을 바친다.


"(세번째 편지) 해석학에서 나는 새로운 내용들을 발견했어. (중략) 오귀스트, 이 주제들이 내가 지금까지 연구한 주제들 전부는 아니야. (중략) 내게는 시간이 없어. 또 내 아이디어도 충분히 숙성되지 못한 상태야. 이 분야는 너무도 광범위해." (226쪽)


"(두번째 편지) 타협의 가능성을 모두 타진했지만 결국 이런 사소한 일을 두고 내 의지에 반해 결투를 했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십시오. 조국에 내 이름을 남길 만큼 오래 살지 못하는 운명이니 여러분이 나를 기억해 주기 바랍니다." (225쪽)


"(첫번째 편지) 침착하게 남의 말을 경청하는 능력이 없는 자들에게 진실을 말해 준 점을 저는 후회합니다. (중략) 저의 생존 이유는 시민을 위한 봉사였습니다. 저를 죽이는 자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그들은 자신의 믿음에 따라 행동할 것입니다." (224쪽)


"울지 마, 20살 나이에 죽으려면 있는 용기 없는 용기 다 짜내야하니까." (228쪽)



- 에바리스트 갈루아, 한 수학천재를 위한 레퀴엠 / 마리오 리비오 지음 / 심재관 옮김 / 살림 Ma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