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네 조사가 생겨서 급작스레 모든 일정이 변경되어 어제 밤에 다시 농원으로 내려왔다. 아침 6시 반에 일어나서 산소밭의 참깨를 베러갔다. 아직 푸른 기운이 많이 남아있어서 잘 여물었는지 알 수 없으나 대부분의 농가들이 참깨를 전부 베었으니 우리도 수확을 해야 한다.
눈을 부릅뜨고 약간 불어버린 떡국으로 아침을 먹었다. 복숭아도 한 접시 먹고, 유디핀 한 정에 커피 믹스까지 마시고 출동이다. 오랜 만에 세 사람이 같은 일터로 출정을 한다. 아버님은 함께 일하러 나가시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으신 모양이다. 천막 하나는 밭 한 귀퉁이에 깔고 어머니가 참깨 대를 묶는 작업을 하시고, 마음이에 천막을 깔아서 그 위에 차곡차곡 쌓아서 운반해 오기로 했다.
날이 흐린데다 아침 공기가 그런데로 시원하다. 툭툭 참깨대를 베어서 한 아름씩 모아 놓으면 어깨에 가볍게 메고 가서 어머니의 작업공간으로 옮겨 놓는다. 작업대를 마음이 위에서 할 것이냐 밭에다 할 것이냐를 놓고 설전이 벌어졌다. 언제나 작업 효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는 트럭 위에서 할 것을 주장했지만, 좁은 트럭 위에서 어떻게 묶는 작업을 할 수 있느냐는 어머니의 주장이 훨씬 강력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덕분에 내 작업이 하나 더 늘었다. 어머니가 묶어 놓으신 참깨단을 마음이로 옮겨 놓는 작업까지.
지난 화요일 하얀 참깨들은 우수수 우수수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해서 작업하는 내내 마음이 불안했는데, 오늘 작업하는 검정깨는 덜 여물어서인지 거의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떨어지는 것을 전부 모아도 양은 얼마 되지 않는데, 떨어지는 소리는 텐트에 소나기 쏟아지는 소리처럼 들린다. 겉보기만 요란하고 실속이 없는 것을 깨떨어지는 소리 같다고 한다.
기운이 남아 도는 작업 초반에는 깨도 베고, 풀도 뽑아 가면서 여유있게 깻단을 날랐다. 총 열 두 줄 중 네 줄을 끝내고 났더니 눈에 들어오는 풀도 그냥 지나치게 된다. 마지막 네 줄이 남았을 때는 다리가 후들거려서 30cm 높이의 이랑도 넘기가 힘들다. 게다가 절반 정도 작업을 했을 때 허리에 가벼운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이 때 제대로 통증을 관리하지 못하면 일도 못하고 드러 누워야 한다. 가볍게 허리를 돌려주고 두드려 주고 허리 근육에 신경을 곤두 세우며 작업을 하려고 하니 더욱 힘이 들었다. 시원하게 가져 온 물을 한 통이나 다 마셔 버렸으니 온몸이 땀으로 젖어 버렸다. 얼굴과 목을 타고 내리는 땀은 간질간질 장난을 치면서 내려간다. 그렇지만 지쳐버린 몸이 장난에 맞장구를 치지 못한다.
거의 세 시간 만에 하우스로 옮기는 작업까지 마칠 수 있었다. 두 분은 이렇게 일을 빨리 끝낼 수 있어서 좋다고 하시며 냉장고에서 막걸리를 꺼내다 새참을 드시자고 하신다. 많은 것을 가져야 행복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 힘을 합쳐 즐겁게 일을 끝내며 막걸리 한 사발로 더위를 식힐 수 있는 시간을 자식들과 가질 수 있는 것이 행복이다. 가까운 곳에 농장을 마련한 것은 정말로 잘한 일이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이 남아 있을지 알 수 없지만, 티격태격 마음을 잘 맞추지도 못하지만, 함께 일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농부들의 가정이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점심은 마을에서 말복을 맞이해서 닭백숙을 준비했다. 양말공장 사장님이 한턱 내신다고 한다. 꼬들꼬들하게 잘 삶아진 닭고기로 한끼 잘 먹었다. 작은 회관이지만 한 가득 모여서 식사도 하고 소주도 한 잔씩 나눌 수 있어서 좋다. 깊은 이야기는 나눌 수 없었지만, 요즈음 일이 많은 낚시터와 복숭아밭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위로해 가면서 짧은 시간이지만 여름을 잘 보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푸욱 쉬었다가 여섯 시가 다 되어 밭에 나가서 풀을 메었다. 부직포 아래의 흙은 딱딱한 바위 같다. 중간중간 잠깐씩 내린 비로는 흙을 제대로 적셔주지 못한 모양이다. 농사를 시작한 지 15년 만에 이렇게 풀이 없는 밭을 운영해 보는 것은 처음이다. 뒷짐 지고 슬슬 돌아다니며 풀을 뽑아내었다. 호미질이 부드럽게 되어 있는 대파밭을 제외하고는 풀의 모습이 매우 드물다. 장마비도 많이 내리지 않아서 흙도 쓸려 내려오지 않았다.
일을 끝내고 샤워를 하고 서 있자니 바람이 몹시 시원해졌다. 그런데, 집안으로만 들어가면 30도 내외의 후끈한 열기가 에어컨을 켜지 않으면 견딜 수 없게 한다. 맞바람이 제대로 돌지 않아서인지 실내 온도가 너무 높다.
매국노 이완용을 단죄하기 위해 스무살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친 이재명 열사의 짧은 이야기를 읽었다. 미국 유학까지 다녀 온 수재가 을사오적의 처단을 위해 칼쓰는 훈련을 해야 했던 안타까운 역사. 다시는 약한 국가가 되지 않도록 해야 젊은이들의 희생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제일 중요한 것은 역사 기억하기와 부정부패의 척결이다.
흉한 일을 했다고 지적하는 판사에게 "흉한 일은 알고, 의는 모르느냐"며 일갈한 젊은 이재명 열사의 기백에 머리가 수그러진다. 을사오적 처단을 위한 12명의 결사대 중에서 이재명 열사를 비롯한 11분은 이완용 처단(명이 길었는지 큰 수술을 받고 살아났다) 이후에 모두 체포되어 운명을 달리했고, 이동수 열사만이 10여 년 동안을 잠적해서 암중모색하다가 다시 한 번 기회를 노렸으나 역시 실패하고 희생되었다고 한다. 이재명, 이동수 열사를 비롯한 열 두분의 명복을 빈다. 친일파가 발본색원되어 심판받는 날은 오지 않는다. 그들을 처단하여 의를 세우려 한 고귀한 사람들의 정신과 행동을 본받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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