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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벼꽃은 보이지 않아도 구수하고, 손은 저절로 빨라진다_160804

농부들의 축적된 농사기술은 알게 모르게 세심하다. 대략 비슷한 흐름이다. 수박을 크게 키우려면 넓은 공간에 단 하나의 열매만 키우면 된다. 감자꽃을 따주어서 감자알을 굵게 한다. 콩이 어렸을 때 순을 잘라 주어서 가지를 많이 치게 하여 열매를 많이 열리도록 한다 등등.


11시 경에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샤워를 했는데도 열이 오르는지 잠을 빨리 잘 수가 없었다. 새벽까지 뒤척이다가 6시가 조금 넘어 일어나려고 하니 쉽게 몸이 일으켜지지 않는다. 어제 늦게까지 오리를 삶으시느라고 어머니도 잠을 푹 못 주무셨던 모양이다. 그랬거나 어쨌거나 커피 한 잔으로 졸린 몸을 깨우고 산소밭으로 간다. 동네길에 간간이 새벽 공기를 맞으며 운동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고, 낚시터에는 강태공들이 좌대를 채우고 있다.


어제 아침 저녁으로 정리해 둔 들깨밭에는 웃거름을 주고, 참깨들은 이제 그만 자라고 알맹이를 키우라고 꽃을 따준다. 생장점을 따준다. 잘 자란 것은 2미터 가까이 되는데, 그 끝을 잘라주면 더 이상 크지 않는다. 포기 하나하나 세심하게 작업해야 하니 자연히 손이 느리다. 처음에는 가위로 잘라 주다가 일이 너무 더딘 것같아서 손으로 툭툭 잘라 나갔다. 단순 작업이라 속도가 점점 붙는다. 마음이 까불까불하면서 얼른 끝내고 들어가서 쉬자고 손을 재촉한다. 심장이 뛴다. 속도가 제법 오른다. 그러나 너무 속도가 붙으면 호흡이 거칠어진다. 집중력도 흩어져서 멀쩡한 참깨대를 분질러 버리기도 한다. 몸이 견딜 수 있는 적절한 속도를 유지해야 작업 속도도 빠르고, 일의 내용도 충실해 진다.


참깨꽃은 여린 분홍빛인데, 부드럽다. 워낙 많이 피어서 그렇지 귀하게 보라보면 예쁜 꽃이다. 벌들이 많이 붙는데, 향기를 맡아보면 거의 나지 않는다. 꽃이 잘 보이지 않는 벼는 온 몸에서 구수한 향기를 내뿜는데, 기름으로 짜면 고소한 참깨는 그 많은 꽃들 속에 있어도 고소한 향이 나지를 않으니 신기한 일이다.


놀러오신 외숙모까지 합세하여 네 명이서 작업을 하니 척척 진행은 잘 되는데, 아홉시가 가까워 오니 땀이 흐른다. 잠을 제대로 못자고 갈증까지 심해지니 어지럽다. 다 끝내고 싶었지만 몇 줄이나 남기고 철수하기로 했다.


건너 동네 대파밭에서 일손을 보태 달라는 연락이 왔다. 팔순이 넘으신 어르신들에게 일을 부탁해야 하는 농부의 심정을 모르지 않지만 걱정스럽기도 하다. 우리 집 일은 열시 전에 끝내고 다섯 시 이후에나 시작하는데, 한 여름 땡볕에 연로하신 노인들을 일하게 할 것 같아서다. 때를 놓칠 수 없고, 인력회사에서도 미처 사람을 댈 수 없을 정도로 돈을 주고도 부릴 일손은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