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물럭 꾸물럭 6시 40분이 되어서 간신히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 일찍 고추를 씻어서 건조기에 넣은 후 피서를 가기로 했다. 부모님과 동생이 고추를 씻어서 건조기에 넣는 사이에 논의 물꼬를 보러갔다. 향긋한 칡꽃 향기를 맡으며 갔다. 달맞이 꽃들도 활짝 피어 있어서 꽃이 별로 없었던 지난 한 달을 보상해 주는 듯하다. 향기를 맡아 보았지만 별 향기는 나지 않는다. 그래도 노란 꽃이 우뚝 솟아 있으니 보기에 좋았다.
논둑을 걸으며 살펴 보니 제법 많은 풀들이 논가운데서 자라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삭이 올라오고 있는 시점이라 논 안으로는 들어갈 수가 없다. 논가의 풀들과 논둑의 풀 중에서 벼에게 방해를 주는 풀들만 낫으로 슬슬 베어내는 일을 했다. 해가 비치지 않는 곳을 중심으로 일을 할 때는 괜찮았는데, 등짝을 때리기 시작하는 햇볕을 받으며 일을 할 때는 5분도 지나지 않아 땀이 줄줄 흐른다. 그래도 제법 시원해졌다. 허리도 아프고 손도 쉬어줄 겸 4, 5미터 쯤 풀뽑기를 하다가 20미터쯤 걸으며 드렁허리가 파놓은 구멍이 없는지 살펴 보기를 반복했다. 노련하고 숙련된 농부라면 일을 차근차근하게 처리해서 깔끔하게 정리해 놓는데, 산만한 농사꾼은 이리갔다 저리갔다 하느라 논둑은 쥐뜯어 먹은 옥수수처럼 어지럽다. 그래도 반나절씩 이틀동안 일을 끝내고 났더니 솜씨 좋은 이발사가 정리한 머리처럼 잘 정돈되어서 보기에 좋다. 허리를 펴기 위해서는 걸어야 하고, 걷다보면 일은 순서없이 뒤죽박죽이 되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하고 나면 결과는 좋아진다.
새벽 무렵. 뻥사장네 참깨밭으로 나가는 일꾼들이 트럭을 타고 고개넘어 밭으로 가고 있다. 뻥이 하도 쎄서 평당 10만원 하는 논도 30만원을 부르고, 2억이면 될 집을 3억을 부르고, 농사 시기도 제대로 못 맞추면서 온갖 농사 참견은 다한다. 눈을 부라리며 큰 소리를 치면 목소리가 워낙 커서 겁이 덜컥 나는데, 하도 예의없이 굴기에 결기를 세우고 덤벼 들었더니 바로 꼬랑지를 내려 버린다. 누군가로부터 그렇게 키워졌겠지만, 본래 속마음은 여린 사람에 틀림없다. 커다란 허우대에 우렁찬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데도 동네 약골 아줌마에게도 꼼짝을 못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얼마나 부지런하고 욕심이 많은지 임대료가 적은 땅이 나오면 능력이 되거나 말거나 무조건 자신이 차지하고 농사를 짓는다. 그러다보니 농사철에는 항상 인부들과 함께 밥을 먹고 일을 한다.
인부들은 트럭 짐칸에 한 가득 앉아있다. 짐짝처럼 실려가시는데도 마냥 좋으신 모양이다. 중국에서 오신 교포분들이 틀림없다. 뜨거운 땡볕에서도 일 하는 것을 겁내지 않으신다. 10년 정도만 일해서 착실하게 돈을 모으면 고향으로 돌아가서 가게도 하고, 집도 사서 잘 사실 수 있다고 한다. 삽과 낫을 들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나를 보면서 그분들은 인상좋은 웃음을 날리신다.
'젊은 농부양반, 왠만하면 경운기라도 타고 다니시지. 요즘 어느 농부가 그렇게 걸어다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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