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농부는 땡볕에 팥죽같은 땀을 흘리고 말았다. 눈으로 등짝으로 땀줄기가 줄줄 흐르는 고통 속에서 해가 중천에 뜨고 난 뒤에 작업을 시작한 스스로를 탓한다. 중간중간 그늘에서 열이 오른 몸을 식히면서 예초기로 풀을 벤다. 어제보다 확실이 작업 속도는 빠르다. 정농께서 보시더니 예초기 날이 전부 달아서 풀이 제대로 베어지지 않는다고 하신다. 오후에는 날 바꾸고 속도 좀 더 내 보자.
어제 대충 막아 놓은 드렁허리 구멍은 오늘 정농께서 흙주머니를 만들어 꼼꼼하게 마무리를 하신다. 예초 작업을 힘들어 하시니 이런 일을 하시는 것이 마음이 편안하신 모양이다. 예초기를 맨 어깨가 어제 보다 한결 가벼웠지만 밤늦게까지 작업하느라 모기들에게 뜯긴 자리가 여기 저기 매우 가렵다. 시원한 물 한 잔으로 더운 열기를 식힌다.
점심은 막국수집에 가서 시원하게 말아 먹었다. 삼시 세끼 밥을 준비하시는 어머니도 대단하고 별 말 없이 언제나 집에서 식사를 하는 아버지도 참으로 대단하시다. 주변에 이렇다 할 먹거리가 없고, 즐겨 드시는 자장면은 요즘 좋은 라면들이 많이 나와서 추가 조리를 하셔서 드시다 보니 사 먹는 즐거움이 없었다. 그래도 지난 번에 먹은 라조기는 맛이 괜찮았다.
마음이의 에어컨 상태가 좋지 않아서 카센터에 들렀는데, 에어컨 가스가 없어서 그런 것같다고 한다. 나중에 작업하기로 하고 다시 가동을 해 보았더니 시원하다. 삼십분 전에 에어컨을 끈 채로 팬만 돌린 것이 원인일 수도 있겠다. 냉매가 빨리 순환해 오지 못해서 뜨거운 날씨를 식혀주지 못한 모양이다. 이래저래 다른 해보다 유난히 에어컨에 신경을 쓰는 것을 보니 날이 덥기는 더운 모양이다.
논에서는 구수한 냄새가 난다. 누군가 흙에서 구수한 냄새가 난나고 했는데, 지난 5년 동안 농사를 지으면서 흙에서는 역한 냄새만 날 뿐 구수한 냄새는 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벼꽃이 필 무렵의 논에서는 정말로 구수한 냄새가 난다. 논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산에서 내려오는 칡꽃향을 맡으며 돌아온다. 첫 키스의 맛처럼 달콤하다.
샤워를 마치고 앞산을 바라보니 붉은 보름달이 느긋하게 걸려있다. 예쁜 것이 하늘에서 내 영지를 장식하고 있으니 거대한 정원을 가진 대지주의 기분을 느낀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장식 따위는 잊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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