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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나만 농부가 되었다_160714

새벽에 비가 쏟아졌다. 핑계 김에 7시 50분까지 잘 자고 일어났다. 8시 반이 넘어서야 집을 나서서 산소밭으로 갔다. 밭둑을 예초기로 베는데 한 20분 정도 하면 어깨가 아프다. 예초기를 내리고 낫을 들어서 베어진 풀들을 정리했다. 다시 호미로 바꿔들고 콩 주변의 풀을 뽑아내고 북주기를 했다. 갑자기 1984년 여름 이맘때의 일이 생각난다.


농활을 저 멀리 구례로 갔다. 더워서 별로 가고 싶지 않았는데, 다른 일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갔다. 농촌 현황에 대한 5일 정도의 강도 높은 책읽기와 토론을 끝내고 구례 현장으로 투입되었다. 땡볕에 모를 심거나 콩밭을 매는 것이 하루의 일과였다. 아침 6시 전후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바로 일하고, 다시 점심 먹고 바로 일하고, 다시 저녁 먹고 아이들을 돌보고 나서 일과 회의가 끝나야 비로소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런데, 한 사흘쯤 지났을까 밤새도록 토론하는 친구와 선후배들에게 그만 질리고 말았다. 그 유명한 새참논쟁. 먹어야 한다 먹지 말아야 한다로 밤새워 토론을 한다. 고등학교 시절에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을 때도 하루에 적어도 7시간은 잤는데, 봉사활동을 하러 와서 힘든 육체노동을 하고도 하루 3시간을 자기가 힘들었다. 그것도 무슨 나라를 구하는 대단한 의제도 아니라 새참을 먹느냐 마느냐로.


두 개의 주장이 모두 틀린 말이 아니어서 어느 한 쪽이 양보하지 않는 한 끝날 수가 없는 이야기였는데, 그동안 양보해 왔던 후배들이 양보를 하지 않으니 나흘째 밤은 그대로 밤을 세울 태세였다. 양쪽을 말리고 말리다 지쳐서 화가 났다.


"이런, 별 한심한 짓거리도 다 있구나. 잠이나 잘란다."


욕까지 섞어가며 한 바탕 소리를 지르고 잠을 자러 갔다. 제대로 잠을 자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잤다. 다음 날부터 일은 나가되 새참과 관련해서는 하고 싶은 데로 했다. 먹고 싶으면 먹고, 마시고 싶으면 마시고. 정말 죽을 맛이었다. 일과 회의도 참석하지 않고 실컷 잤다. 마음도 불편하고 기운도 나지 않았다.


항상 잘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화를 내고 일어설 것이 아니라 조용히 잠을 자러 다른 방으로 들어갔으면 되었을 것이다. 먹고 싶으면 먹고, 마시고 싶으면 마시고. 사람이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하면 서로 이해하고 화합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잘못이다. 단 한 번도 그런 경험이 없었으면서도 그렇게 믿었다. 그렇게 되지 않을 때마다 화가 났다. 사십 대 즈음에 깨달았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사람을 설득하는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오십줄이 넘어서야 알았다. 누구도 틀리지 않았으니 각자의 길을 평화롭게 가야 한다는 것을. 그 때 그 자리에 참석했던 선후배들은 판검사도 되고, 교수도 되고, 사업가도 되고, 외교관도 되고, 한의사도 되고, 노동자도 되었다. 


나는 농부가 되었다. 그 때 땡볕에서 일할 시간에 에어컨 틀어놓고 책을 보고 글을 쓰며 잠을 잔다. 쉬다가 남는 시간에 일한다. 그래도 곡식은 무럭무럭 잘 자란다, 풀과 함께. 우리 가족 먹을 것은 남겨 준다.


산소 출입구까지 쉬엄쉬엄 예초기를 돌렸다. 길게 자란 풀이 도저히 잘려질 것 같지 않은데도 몇 번을 반복하다보면 어느새 풀이 누워있다. 강렬한 햇볕에 베어진 풀이 금방 말라버리면 제법 길 다운 모습을 되찾을 것이다. 콩에 북을 주고, 풀을 뽑다가 옛생각을 한다. 참 헛된 시간이었다. 다시 대학시절로 갈 수 있으면 좋겠다. 여전히 무엇을 할지 알 수는 없으나 헛된 일은 많이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연애라도 열심히 할 수 있을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