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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집념으로 딴 벌꿀_160715

향나무 아래 그늘이 시원하다. 뜨거운 여름인데도 가을 느낌의 바람이 불어온다. 준비해 간 소주를 따라 제단 위에 올리고 이제부터 산소 벌초를 하겠다고 고한다. 태어나서 처음하는 벌초가 내 조상의 묘가 아니라 밭을 임대해 준 분의 조상이다. 무일농원의 가훈은 "안에서도 잘 하자"이다. 오늘도 그 가훈에 맞는 행동을 하지 못했다. 너그러운 조상들께서 용서해 주시리라 믿으며 다시 한 번 가훈을 되새긴다.


예초기를 돌리면서 마음 한 쪽은 매우 부담스럽다. 벌초할 때면 보도되는 말벌들의 공격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다. 어디로 피해야 할까, 그대로 바닥에 납작 업드리는게 나을까. 가까운 곳에 물은 없을까. 문득 문득 떠오르는 그 생각에 긴장하면서 한뼘 한뼘 벌초를 해 나갔다. 1미터가 넘게 자란 풀들은 예초기의 날에 흔들림이 없어 보인다. 이리저리 날을 휘두르고 나서야 조금씩 일한 흔적이 나타난다. 무덤 하나를 벌초하는데 걸린 시간은 대략 90분 정도다. 이 무덤은 아마도 이밭을 마련하신 분의 안식처일지도 모르겠다. 평화롭게 농사지을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드리고 무사히 수확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기도를 드린다.


일을 마치고 풍물 연습을 하러 향악당에 갔다. 이제 왼손으로도 제법 북을 치게 되었다. 농사일을 하든 풍물을 치든 언제나 오른손이 대부분의 역할을 한다. 얇은 손목으로 제대로 힘도 내지 못하는데다가 왼손의 힘이 갈수록 떨어지는 것같아서 지난해부터 왼손으로 북을 치는 연습을 했다. 얼마나 많은 힘을 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북장단에 적응해 가는 왼손이 기특하다. 올해부터는 쇠치는 연습도 해 봐야겠다. 힘은 덜 들지만 훨씬 다양한 기교를 부려야 하니까 왼손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간식으로 옥수수를 삶아 오셨는데, 냉장고에 소주를 한 병 꺼내다가 조선생님과 나눠 마시려 하니 두 분이 오셔서 참말로 미안해 하신다. 안주거리라도 하나 사 오시겠다는 것을 그러지 마시라고 말렸다. 옥수수를 뜯으며 천천히 마시는 소주도 참 달고 좋았다. 모임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서는 한 사람의 마음이라도 상하게 해서는 안된다. 술 마시는 사람은 달랑 두 세명이지만 그 사람들도 즐겁게 해야 한다는 임원들의 마음 씀씀이가 고맙다.


6시에 간신히 눈을 뜨고 일어나 벌꿀을 땄다. 벌은 늘어나지 않았지만 벌집 12장을 건져 올리셨다. 벌통이 늘거나 말거나 아버지의 노력은 한결같다. 꼭 필요한 일만 도움을 요청하시고 대부분의 일을 혼자 처리하셨다. 벌들의 전멸도 당신의 의지를 꺾어놓지 못했다. 대략 열 통 정도의 꿀은 확보했으니 이리저리 식구들 먹일 것은 마련되었다. 그것만으로도 만족한다. 주시는 데로 열심히 거두고 감사한 마음이다.


전기자전거를 타고 부천으로 올라왔다. 농원에서 70km 거리인 지지대 쉼터 휴게소까지는 마음이를 몰고 와서 나머지 35km를 헤르메스를 타고 이동하는 것으로 퇴근이 완성된다. 대략 3시간 반이 걸리는데, 쉬지 않고 움직이면 3시간이면 주파할 수 있다. 헤르메스에 투자된 돈을 회수하려면 1만 km를 타야 하는데, 내년 2월까지가 원래 목표였다. 그러나 올해 들어 출퇴근 거리가 35km로 줄어듬으로써 2년 만의 투자비 회수는 불가능해졌다. 현재 6,523km. 15주 정도를 꾸준히 타게 되면 8천키로까지는 탈 수 있게 되니까 내년 하반기 정도면 1만 km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여유있게 타자. 안전하게 즐기는 것이 최선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