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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웃는 연습이 덜 되는 농부_160719

천재가 휴가를 나왔다. 함께 소주 한 잔 했으면 좋겠는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불가능하다. 금왕 도서관에 가서 김수영 시인의 책을 찾았는데, 없다. 민음사에서 나온 김수영 전집이 있는데, 도서관 내에서만 볼 수 있다고 한다. 절판된 책이라 보관하는 모양이다. 한울빛에 한 번 가 봐야겠다.


음성에서 돌아오는 길에 간판도 붙어있지 않은 오래된 이발소에 들어갔다. 소여 이발소라고 하는데, 이 낡은 집에서 에어컨도 없이 30년째 이발소가 운영되고 있다. 머리를 자르고, 면도를 하고, 콧수염을 다듬어 주고, 머리까지 감겨 주시고 나서 8천원을 받으신다. 기념으로 사진 촬영을 했다. 앞으로 이곳을 애용할 것같다. 내가 머리를 자르는 동안 택시 기사 한 분이 오셨다가 손님 호출을 받고 가셨고(손님 모셔다 드리고 다시 와서 이발을 하겠단다), 동네분이 한 분 오셔서 연달아 이발을 하셨다. 쓸쓸할 것같은 이발소에, 여자들은 눈길 조차 주지 않을 허름한 이발소에 제법 찾아오는 손님들이 있다. 새벽 나절에 작은 텃밭을 가꾸고, 낮에는 이발소에서 근무하고, 저녁에는 휴식을 취하는 삶으로 자식들을 다 키워 내셨다 한다. 한가로우면서도 할 일을 다 해낸 머리 허연 이발사의 표정이 매우 맑다.







논둑을 베러 갔다. 어제도 두 시간 정도 했는데, 메벼논의 절반도 끝내지를 못했다. 오늘 나머지를 끝내려고 열심히 서둘렀는데, 허벅지까지 자란 벼들을 상하지 않게 해야 해서 작업이 쉽지 않았다. 서서 하기, 앉아서 하기, 한 발로 논둑 밟고 하기 등등 다양한 방법으로 시도해 보았다. 1.5미터 가까운 높이의 논둑 아래단을 작업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결국 세 가지 방법을 다 동원해서 꾸역꾸역 작업을 했다. 그래도 다 끝내지 못했다.


작업을 끝내지 못한 이유는 논둑의 터진 부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드렁허리라는 뱀장어 모양의 민물고기의 서식지 때문이다. 이것들이 논둑에 구멍을 내고 살기 때문에 논물이 그 구멍을 통해 흐르다가 논둑 전체에 작은 구멍이 생기고, 이 구멍으로 장마 때 큰 물이 흐르며, 1미터가 넘는 두께의 논둑이 무너지게 된다. 그러면 농부는 땀죽을 흘리며 논둑을 보수해야 하는데, 망가진 벼들은 차치하고, 오로지 삽으로만 일을 해야 하니 고통스럽다. 그것도 땡볕에서. 다행이 두 군데의 드렁허리 구멍을 발견해 내어 보수작업을 했다. 이 구멍들을 방치했으면 다음 번 장마나 태풍에 아마도 논둑이 크게 무너졌을 것이다.


보수작업은 그리 힘든 일은 아니었는데, 첫 번째 구멍을 작업하던 중에 낡은 삽이 부러져 버려서 시간이 더 걸렸다. 삽자루가 부러지는 순간에 짜증이 솟구침과 동시에 어떻게 해야 할 지를 결정해야 했다. 다시 집에 가서 새 삽을 가져올 것인가 아니면 삽머리만 가지고 작업을 할 것인가. 구멍이 하나 밖에 없을 것이라는 기대로 그냥 작업하기로 했다. 오판이었다. 연달아 또 하나의 구멍을 발견하고 말았다. 두 번째 구멍도 어쩔 수 없이 삽머리로 옹색하게 작업해야 했다. 웃기는 작업이었다. 안그래도 서툰 솜씨인데, 삽자루도 없는 삽을 들고 논둑을 파헤치고 메꾸는 작업을 했으니, 옆에서 누가 보고 있었다면 답답하고 웃겨 보였을 것이다. 결국 작업은 완벽하게 마무리 하지 못하고 구멍만 제거하는 수준에서 임시 방편으로 끝내야 했다. 내일 또 시간이 있으니까.


조선시대의 농민들은 세금과 군역, 요역, 공납, 소작료 등등의 부담 때문에 허리가 부러져라 일해도 식구들을 배불리 먹일 수 없었다. 지금의 나는 세금을 거의 내지 않는다. 적십자 회비나 1년에 한 번 내면 되고, 비료와 퇴비값을 지원받고, 우렁이 구입비도 지원받고, 농사 직불금도 받는다. 국민연금의 절반도 지원받으니 1년에 100만원은 다른 시민들로부터 지원을 받으며 사는 것이다. 농부로서 지금처럼 행복한 시절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농부는 참 좋은 직업이다. 단, 돈 버는 농부가 되기 위해서는 농업 자본가가 되거나 또 다른 길을 걸어야 한다. 돈을 떠나서 살 수 있다면 농부만큼 좋은 직업은 없을 것이다. 무지하게 힘들다는 것을 빼면 말이다. 그래서 좋다는 말이야 나쁘다는 말이야. 자연으로 돌아갈 날이 얼마남지 않은 - 십년이나 이십년 쯤 - 사람들이, 자연과 좀 더 친해져서 두려움 없이 가고 싶을 때, 바로 그 때 농부가 되면 행복할 것이다.


10년 쯤 후에 나는 백발의 이발사처럼 온화한 표정을 갖고 살 수 있을까. 나는 웃는 모습을 보여야 할 손님 조차도 없으니, 웃는 연습이 덜 되는 농부이다. A farmer has made an insufficient effort of making sm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