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새싹처럼 푸르게 늙어가고 싶다_160713

이 글은 허구에 가깝다. 벌써 몇 년 동안 농사이야기를 쓰다 보니 별로 새로운 이야기가 없다. 그래서 최근 들어 기록하는 재미가 없어졌다. 어떻게 할까 하다가 이야기를 지어내기로 했다. 팩션이다. 사실과 허구가 뒤섞여 있으니 대체로 허구라고 받아들이면 좋을 것이다. 무일 박인성.

================================================================================================

산소밭으로 간다. 어영부영 하다가 새벽 한 시가 다 되어 잠이 드는 바람에 목표했던 6시 출근은 실패하고 7시 반이 넘어서야 밭으로 간다. 겨울옷을 입었다. 찜통 더위에 무슨 미친 짓이냐고 할텐데, 어제 작업할 때 모기들에게 회식을 시켜주고 났더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난해까지는 옷을 두 개 겹쳐 입었었는데, 옷을 두 번 입기가 귀찮아서 오늘은 아예 나꼼수 겨울용 후드티와 천재가 입다 버린 두터운 청바지를 입고 밭으로 간다. 새벽이 아닌지라 모기들이 자러 들어가는 바람에 옷입은 효과는 보지 못했다. 가끔 따가운 햇살이 두터운 옷을 뚫지 못해서 주변을 서성이다가 구름에 쫓겨 산등성이 너머 미사일 부대로 도망가 버린다.


포트에 심은 들깨 모종은 전부 옮겨 심었고, 밭 귀퉁이에 만들어 놓은 들깨 모종이 제법 잘 자랐다. 수천께서 바가지에 곱게 뽑아다가 내가 제초를 해 놓은 고랑 위에 심으신다. 나는 풀을 뽑는 파괴 노동을 하고, 수천께서는 생명을 불어넣는 생산 노동을 하고 계신다.


풀을 뽑으며, 덮어 놓은 부직포를 살펴보니 여린 새싹들이 바늘끝 같은 구멍으로 새파란 이파리를 내밀고 있다. 아스팔트를 뚫고 뿌리를 내리는 것은 도시에서도 흔히 볼 수 있지만, 비닐이나 부직포의 미세한 틈으로 자라나는 새싹들을 보는 것은 농사를 지으며 보는 신비로운 모습이다.


새싹을 유도하는 것은 희미한 햇살일 것이다. 0,1mm도 되지 않는 틈새로 빛이 들어가면 주변에 널려 있던 씨앗들이 비에 껍질을 불려서 먼저 뿌리를 내리고 바늘잎을 위로 위로 밀어낸다. 1cm의 원안에 열 개 내외의 씨앗들이 싹을 틔우기 시작하면 그 중 하나는 그 작은 구멍을 통해 햇살 가득한 세상과 만나게 된다. 그렇게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풀들의 노력은 눈물겹게 진행이 되고 한 이랑 마다 한 두 개의 바늘잎을 만나게 되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그리고 얼른 뽑아 버린다.


바늘잎을 뽑아 버리지 않으면, 어린 잎은 충분한 햇살을 받아 점점 잎과 줄기를 키워 내다가 어느 순간 부직포와 비닐을 찢어 버린다. 놀라운 생명력이지만 밭은 사람의 영역이다. 끝까지 살아 남아서 자손을 퍼뜨리기는 어렵다. 헉헉 숨을 몰아 쉬면서 풀들을 뽑아 내는 인간의 손길을 피하지 못한다.


나향욱이라는 교육 공무원이 99%의 사람을 개 돼지 같다 표현했다고 한다. 너무 많아서 하찮게 느껴진 모양이다. 기세 등등했을 그의 위세와는 달리 비많은 개처럼 초라하게  비춰진 모습에서 당황한 모습만 보인다. 중징계를 받는다고 하니 아마도 반성은 할 것이다.


메피스토텔레스는 세상을 파괴하기 위해 노력하려고 했으나 쉽지 않았다고 파우스트에게 고백한다. 그 이유는 존재하는 것들의 무한한 생명력이다. 밭을 가꾸며 나도 풀들도 끊임없이 살기 위해 노력한다. 새싹처럼 푸르게 늙어가고 싶다. 가능하지 않겠는가, 싸우면서 닮는다고 하니 말이다.


" 파우스트 : 네가 크게는 파괴할 수 없으니,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하려는 속셈 아니겠느냐.

  메피스토텔레스 : 물론 아직까지 많은 것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중략) 짐승이고 사람이고 새끼를 마구 낳아 대는 것에는 도저히 손을 쓸 수 없더라니까요. 제가 벌써 얼마나 많이 땅속에 파묻었는지 아십니까! 그런데도 끊임없이 새로운 피가 활기차게 흐른단 말입니다. (중략) 수없이 많은 생명이 싹튼단 말입니다." ( 60쪽 / 파우스트 / 열린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