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는이야기/사는 이야기

꿈 꿀 때 아름답다_160608

아들과 어머니를 생각하면 항상 떠오르는 영상이 있다. 영화에서 본 것인지 내 머리 속에서 만들어진 것인지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작은 개천을 따라 길게 이어진 방죽길을 몸이 무거운 엄마와 네 살쯤 되는 사내아이가 손을 잡고 함께 걷고 있다. 해질 무렵이었는지 개똥벌레가 날기 시작하자 갑자기 아이가 엄마 손을 놓고 벌레를 쫓아 마구 뛰어간다. 엄마는 차마 쫓아가지 못하고 손만 저으며 '조심해, 조심해'를 외친다. 그 모습이 애처롭고 아름답다. 엄마란 그런 존재인 것이다.


내 아내가 엄마였을 때, 그녀의 애처롭고 아름다운 모습을 나는 얼마나 위로하고 사랑해 주었을까. 어린 아들과 들꽃을 구경하며 걷던, 작은 아이를 끌고 시장골목을 바삐 지나는 그녀의 모습이 눈에 선해서 가슴이 아린다. 만일 친구가 없었다면 우리는 맺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 친구는 은퇴를 조금 빨리해서 귀촌을 하고 싶단다. 텃밭은 다섯 평 정도면 충분하고, 산이 좋으니 도시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이라면 좋겠다고 한다. 유유상종이라더니 역시 취미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앞으로 10년 정도는 더 도시에서 일을 할 것이고, 농사에 매달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사람 속에서 사는 것이 피곤해서 사람 없는 곳에서 살고 싶다고 하는데, 아마도 지금 기분일 것이다. 만일 어울릴 사람 없는 곳에 처박혀 산다면 매우 힘겨울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친구들 사이에서 내가 겪은 마음 고생이 시작되는 모양이다. 작은 땅이라도 내 땅을 갖고 싶다는 꿈. 좋은 꿈이다. 그러나 농사짓거나 집 짓고 사는 것이 아니라면 그저 땅을 이용한 재테크에 불과하다. 처음 한 두 해는 정말로 순수한 마음으로 내 땅이라는 느낌이겠지만, 멀리 팽겨쳐두고 있으면 내 것이라도 현금과 다름없는 기분일 것이다. 땅을 소유하겠다는 꿈은 그저 꿈 꿀 때 아름다울 것이다. 아니면 재산의 포트폴리오를 위해 땅에 투자하는 것이라면 좋다.


조용한 곳에서 땅을 밟고 살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는 친구들도 있다. 은퇴하고 나면 찾아오는 사람도 적어지고 나이들면 친구들 만나기도 힘들어져서 자연스럽게 조용히 살게 된다. 굳이 한적한 땅 찾아서 집 짓고 살지 않아도 된다. 철따라 명산계곡을 찾아 다니며 즐기면 그것이 땅을 밟고 사는 일이다. 굳이 머나 먼 시골까지 내려올 필요 없다. 조용하면 외롭고 심심하다.


역시 꿈은 이루어지는 것보다 이루지 못할 때 더욱 아름답다. 그러니 귀촌과 귀농의 꿈일랑, 이루지 말고 그냥 꾸어라. 그것이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