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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사는 이야기

꽃을 사러 가다_160214, 일, C 454

가까이는 태국과 일본, 멀리는 유럽까지 많은 사람들이 꽃 속에서 산다. 나이나 생긴 모습에 관계 없이 다듬어지지 않은 꽃다발을 들고 집으로 가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두꺼운 외투를 입고 걸음도 잘 걷지 못하시는 노부부가 신문지에 둘둘 만 하얗고 노랗고 빨간 꽃송이를 안고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 멋있게 인생을 산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래서 언제나 결심을 한다. 우리 집도 꽃이 끊이지 않는 집이 되어야지. 봄에서 가을까지는 굳이 꽃을 사지 않더라도, 농원 주변에 널려있는 야생화 몇 포기 끊어다가 삭막한 아파트에 꽂아 놓으면 되는 일이다. 그런데, 한 번도 해 보지 못했다. 자전거를 타게 되면 꽃다발을 망가뜨릴 수 있다는 것이 이유가 되기는 하지만, 막상 삶의 현장에 던져졌을 때, 여행지에서 떠나왔을 때, 일상 속에서 꽃을 집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 번 우주신 졸업식에 갔을 때 꽃다발을 두 개 샀다. 하나는 담임 선생님께 드리고 하나는 2학년 때 담임 선생님께 드릴 계획이었으나, 만나지를 못해 집으로 가지고 와서 꽃병에 꽂아 두었다. 열흘 정도 지나니 예쁜 꽃들이 지고 다시 꽃병이 쓸쓸하게 서 있다. 그리미가 남대문 시장에 가서 꽃을 사오자 한다. 어제는 비록 비가 내렸지만 날도 따뜻하고 걸어다닐만 했는데, 방구석에서 뒹글거리다가 시간을 다 보내 버리고 찬바람이 살 속을 파헤치는 오늘 같은 날 하필이면 가자고 한다. 그래도 간다. 꼭 해 보고 싶은 일이었으니.


날이 차가우니 전철을 타는 것은 포기하고 차로 간다. 부천에서 남대문 시장 주차장까지는 차로 50분. 주차비는 10분당 1천원. 기타 비용이 제법 든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매서운 바람에 시베리아의 추위를 한껏 느끼며 찾아간 꽃시장은 정기 휴일이다. 매주 일요일은 정기 휴일이고, 문을 여는 날도 새벽부터 오후 2시경이면 문을 닫는다.


포기를 해야 하는데, 꽃향기가 솔솔 나서 3층의 꽃시장으로 올라가 보았다. 모든 상점에 불은 꺼져 있었는데 문은 닫혀있지 않아서 그냥 가 봤다. 다행이도 몇몇 분이 졸업식 화환을 만들기 위해 작업을 하고 있었다. 꽃 구경을 여유있게 할 수는 없지만 그냥 사 가지고 나올 수는 있었다. 꽃이 피지 않은 백합과 보라색 카네이션, 이름 모를 꽃을 각각 한 다발씩 샀는데, 전부해서 18,000원. 꽃다발 하나 가격도 되지 않는다. 요즘 조화가 많이 나와서 생화가 거의 팔리지 않아 화훼 농가들이 어려움을 겪는다고 하더니 정말 그런 모양이다.


집으로 돌아와 열심히 꽃을 다듬어 두 개의 꽃병에 나눠 꽂아 놓으니 금방 집안이 화려해진다. 돌아오는 길에 IKEA에서 사온 만원짜리 거실등까지 차가운 겨울 밤을 아름답게 장식한다. 한반도의 평화가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 


위성 로켓발사와 개성공단 폐쇄로 이어지는 위기의 한반도에 평화의 꽃이 계속해서 피어 있을지 걱정이다. 대동단결까지는 아니어도 좋다. 평화롭게 서로를 도우며 살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한 번 마음이 어긋나기 시작하니 생판 모르는, 말도 통하지 않는 남들보다, 같은 한민족을 더욱 증오하게 되었다. 단 한 번의 전쟁으로 36년 동안 식민지배로 온 나라를 수탈하고 괴롭힌 악독한 일본인들보다 더.


그러나 증오로는 아무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오직 이해와 사랑과 협력만이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